"엄마 !, 11월 학예회, 친구들 앞에서 하는 거래"
"엄마 !, 11월 학예회, 친구들 앞에서 하는 거래"
  • 배윤정
  • 승인 2021.11.11 16: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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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윤정칼럼] 우리 아이 취미생활,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세 번만 하면..."
무조건 어렵고 멋진 만들기 고르는 둘째, '루돌프 사슴코' 발표 기다려지네
호그와트 성 앞과 뒤. 1학년 학예회 때 발표한 것으로, 정말 오래 걸려서 정성들여 만든 둘째아이의 자랑할 만한 작품입니다.

“엄마, 11월에 학교에서 학예회를 한대. 나는 노래 부르기로 했어. 올해는 영상을 찍어서 발표하면 안 되고, 친구들 앞에서 직접 하는 거래.”

둘째가 학교에 다녀와서 학예회 이야기를 합니다. 학급 친구들 앞에서 내가 잘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으쓱한 마음을 가져보는 학예회 소식에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둘째는 이것저것 시도하는 것은 좋아하는데, 끝까지 끈기 있게 하는 것은 어려워합니다. 아직은 어려서 어쩌면 당연하겠지요. 둘째의 취미생활은 이런 아이의 특징을 잘 드러나서 재미있습니다. 작년과 올해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톡톡 블럭, 스킬 자수, 레고 등 만들기를 많이 했는데, 늘 비슷한 패턴입니다.

만들기를 살 때 둘째는 무조건 어렵고 멋진 것을 고릅니다. 자기가 잘 만들 수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설명서를 보고 열심히 만들어 보지만, 너무 어려운 것을 샀기 때문에 만들기 쉽지않고, 곧 흥미를 잃어버립니다. 빨리 만들라는 엄마의 말에 아이는 “처음에는 재미있었는데 세번만 하면 재미없다”고 대답하다가 혼이 납니다. 결국 만들기 시간을 하루에 30분~1시간정도 정해서 매일매일 해야합니다. 만드는 과정도 쉽지만은 않습니다.

톡톡 블럭은 가족 여행 중에 우연히 샀는데, 작을 블럭들을 액자에 꽃아 그림을 만듭니다. 둘째는 톡톡 블럭의 크기가 2㎜정도인 손에 쥐기도 힘든 작은 것을 골랐습니다. 크기가 큰 것을 권해봤지만, 자기는 할 수 있다는 대답만 돌아옵니다.

며칠 만들다가 잊혀진 작은 조각들은 방안을 굴러다니다가 발에 밟히거나 청소기 속으로 들어가며 하나둘씩 없어집니다. 결국 블럭 조각이 모자라서 일부를 비워두고 완성했습니다. 톡톡 블럭이 없는 부분은 흰색 블럭이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만들어 놓으니 멋지더군요.

스킬 자수는 큰아이가 학교에서 배워왔습니다. 스킬 자수는 제가 어릴 때 했던 기억이 나는데 그물망과 스킬 바늘을 이용해서 털실로 수를 놓아서 깔개나 방석 등을 만듭니다. 손재주가 좋은 큰아이가 멋지게 만들어 할아버지에게 선물했더니, 따라쟁이 둘째가 가만히 있을 수 없지요. 크게 어렵지는 않아 보여 아이가 원하는 토끼 스킬 자수를 사주었습니다.

둘째는 며칠하다가 ‘스킬 자수를 하니까 손이 아프다’며 하기 싫다고 합니다. 그래도 하라는 엄마에게 반항도 해보고, 억지로 들고 앉아서 스킬 바늘로 그물망을 망가뜨리고, 털실을 잃어버리더군요. 우여곡절끝에 한달 정도 걸려 완성을 해서 할아버지께 선물로 드렸습니다.

1학년 학예회 때는 블럭으로 만든 해리포터 호그와트 성과 해변 놀이공원을 소개하는 영상을 발표했습니다. 친구들이 멋지다고 해주고, 나중에 친구가 집에 놀러와 같이 가지고 놀기도 했지요. 레고는 아이들도 좋아하고 완성품도 멋지지만 가격이 정말 비싸서, 몇만 원은 기본이고 큰 것은 10만 원이 훌쩍 넘습니다. 학예회 발표는 큰 맘먹고 비싼 레고를 사주었지만, 요즘 인터넷 쇼핑몰에는 가성비 좋은 저렴한 중국 블럭이 많아 둘째에게 사주곤 합니다.

가격이 저렴하고 완성품이 이뻐보여서 구입한 중국 레고 블럭은 설명서가 허술하고, 잘 맞지 않아 맞추기가 어려운 것도 있었습니다. 또 블럭 조각들이 한꺼번에 포장되어 있어 블럭을 맞추기 전에 찾는게 더 어렵습니다. 완성되는데 짧게는 2주 길게는 한달까지도 시간이 걸리는데 중간에 블럭이 없어지는 일도 당연히 생깁니다. 집에 있는 다른 레고에서 빼 오거나, 여분의 블럭으로 대체하며 매일매일 조금씩 만듭니다. 중국 블럭을 완성하고 나면 실력이 쑥 업그레이드 되더군요.

하나같이 쉽지않은 과정인데 늘 똑같습니다. 취미로 시작했는데, 억지로 해야하는 일이 되었다가, 마지막 완성하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만들기를 끝내고 나면 둘째가 엄마에게 이야기합니다.

“엄마, 내가 중간에는 정말 만들기 싫었는데, 엄마 말 듣고 매일 조금씩 만들기를 잘했어. 내가 이렇게 멋지게 만들다니 너무 좋아. 내가 좀 잘 하잖아. 근데 스킬 자수는 다시는 안 할거야.” 스스로를 칭찬하는 둘째가 귀엽습니다. 이런 모습 때문에 아이의 취미생활이 기다려지나 봅니다.

톡톡블럭 액자
톡톡블럭 액자. 작은 블럭을 끼워서 숲속의 집 모양의 액자를 만들었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서, 과정을 즐기며, 결과에 만족하고 성취감을 느끼면 이상적이겠지요. 그런데 생각해보면 일의 전체 과정을 즐기는 것은 어른인 저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저도 좋아서 시작했지만 끝내지 못하거나, 하다 보면 즐겁지 않아 억지로 한 일도 많거든요.

우리 둘째는 좋아하는 것을 잘 고르고, 과정을 즐기는 방법이 살짝 독특하지만, 결국 끝까지 해내고 즐거워합니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않나요? 물론 더 잘 하는 아이들도 많겠지만, 우리 집 둘째의 자기만의 속도를 존중해 줍니다.

둘째는 올해 2학년 학예회에서는 노래를 부르기로 했습니다. 학예회 발표 노래를 정해오라는 숙제에 별로 고민도 하지않고 “루돌프 사슴코”로 결정해버립니다. 역시 둘째답습니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오긴 해도 11월에 루돌프 사슴코는 좀 뜬금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멋지다고 치켜세워 줍니다.

이번주 금요일이 학예회 발표입니다. 둘째는 내일부터 하루에 열 번 루돌프 사슴코 노래를 연습하기로 엄마와 약속했습니다. 둘째의 2학년 학예회가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배윤정, 주부, 세종시 거주, 대구 가톨릭 의대 졸업, 울산대 석, 박사, 알레르기 내과 전문의, 서울 아산병원 임상 강사, 임상 조교수 근무, 세종임상면역연구소 대표, 블로그 : https://m.blog.naver.com/asanallergy, 이메일 : hohojeo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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