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준수, 신목, 이맥… 고복저수지 곳곳에는 역사가 있다
한준수, 신목, 이맥… 고복저수지 곳곳에는 역사가 있다
  • 임비호
  • 승인 2021.09.26 0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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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 한준수 연기군수, 관권선거 부정 폭로한 민락정
상고사 붐 가져온 '태백일사' 저자 이맥 신도비와 무덤 자리해
고복저수지 주변에는 살아숨쉬는 역사가 숨어있다. 사진은 고복저수지 저류지 모습

물가에 가면 사람은 왠지 편안함을 느끼나 보다. 고복 저수지는 1989년 6월에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서 만들어진 저수지였는데 물이 주는 편안함 때문인지 길가에 벚나무를 심기 시작하고, 연기대첩비와 조각 공원을 조성하고, 아이들이 놀 수 있는 수영장을 만들더니 급기야 1991년 세종시 최초의 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더욱이 2008년부터는 자연 친화적인 시민 휴식 및 여가 공간 제공을 위한 생태공원 조성 사업까지 추진되었다.

사람의 정성과 배려로 만들어진 고복자연공원

2020년이 되니 봄이 되면 고복 저수지 가는 길에 심어놓은 벚나무는 눈부시게 하얀 꽃길을 만들고, 여름이면 긴 숲길 터널 끝으로 만들어놓은 여름 풀장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게 하고, 가을이면 나뭇잎 떨어지는 데크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떠오르게 하고, 겨울이면 쨍쨍 얼음 깨지는 소리 틈 사이로 눈 덮인 호반의 세상을 볼 수 있게 한다.

인근의 배꽃 사이에 있던 참나무 향 돼지 갈비집과 물가 허름한 슈퍼 부속 식당으로 시작한 메기매운탕 집은 전국에서 찾아오는 명소가 되었고, 저수지 남사면에 숨어 있던 식당을 개조해 만든 커피숍은 일대를 커피숍 거리로 바꾸어 놓았다.

고복자연공원은 다른 자연공원의 설립과는 좀 다른 과정을 가지고 있다. 다른 자연공원은 기존의 자연 풍광이나 보존될 생물자원이 있어 주로 보호를 목적으로 설립되었다면 고복자연공원은 지자체와 인근의 주민들이 목적 의식적으로 공들여 가꾸어 만들었다는 것이 인정되어 자연공원으로 승격되었다. 다른 자연공원의 주체가 자연이라면 고복자연공원은 주체가 자연과 인간이다.

민락정과 한준수 연기군수의 양심선언

농업용 저수지에서 출발한 고복자연공원은 이제 누가 뭐래도 세종 시민의 휴식과 여가 공간을 제공하는 힐링의 메카가 되었다. 이런 자랑스런 세종의 제1호 자연공원에 지금까지도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역사가 있다.

전 연기군수 한준수가 관권선거를 폭로했던 민락정

먼저 저수지 북쪽 중간 정도에 있는 민락정에 얽힌 사연이다. 민락정에는 지방자치 실현의 도화선이 되었던 1992년 관권선거를 폭로한 한준수 연기군수의 흔적이 있다. 한준수 연기군수는 92년 14대 총선 당시 지역에 청와대 총무수석을 지낸 인사가 출마하게 되었는데, 내무부장관과 도지사가 직접 나서서 군수 이하 이장까지의 행정 조직을 총동원하여 관권선거를 감행했다고 양심선언을 한 사람이다.

양심선언을 하면서 관권선거의 증거가 되는 유권자 성향 분석 명부, 금품매수 실태, 도지사가 선거자금으로 준 수표 사본까지 제시하여서 다시 한번 한국 사회에 관권선거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관건선거를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까지 이루어져야 한다는 여론과 민심이 거세어지어 당시의 노태우 정권도 하는 수 없이 동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마침내 95년 6월에 제1회 전국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지게 된 것이다.

민락정은 한준수 연기군수가 재직 시 향약을 지역에 뿌리내리게 했으면 좋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설립한 곳이다. 이 민락정 입구에 유래비가 있는데 그 하단에 그의 이름이 있다. 유래비를 보면 그의 이름을 훼손한 흔적이 있는데 이는 당시 군민들의 찬반 여론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당연히 큰 성과이지만 정작 당사자인 군민들은 선의의 피해자들도 있었기에 이런 흔적이 남아 있는 것이다.

민락정에 오르면 고복자연공원의 경치를 보는 것도 일품이지만 한국 민주주의의 새 국면을 만들었던 한준수 군수의 관권선거에 대한 양심선언도 한번 곱씹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고복자연공원에는 한민족 시원문화를 밝힌 『태백일사』의 저자가 잠들어 있다

고복자연공원의 저수지 하단 제방에서 북쪽 도로를 따라 긴 벚나무 숲길을 가다가 보면 고복노인전문병원과 백련화 메기탕 식당이 나온다. 이곳을 지나 내리막길 옆으로 고복저택이라는 카페가 나오는데 그 뒷산이 고성이씨 선산이다. 선산 입구에는 이 길을 지날 때마다 마주치는 신도비가 서 있다.

몰랐을 때에는 누군가의 비석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알고보니 이 신도비가 90년대 상고사 열풍을 몰고 온 환단고기의 중추적인 부분을 차지하는 『태백일사』의 저자인 이맥(李陌·1455-1528) 선생과 관련이 있는 신도비로 그 뒤편에 그의 무덤이 있는 것이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는데 수백번도 더 본 이곳이 이맥 선생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하니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일제강점기 시절 항일운동을 했던 대부분의 독립운동가들이 이맥 선생이 쓴 『태백일사』와 같은 역사 의식을 가지고 있었으며, 우리가 흔히 쓰는 ‘한겨레’ ‘배달민족’ ‘단군의 후손‘이라는 말의 원출처이기도 한 책이다. 신채호 선생의 조선상고사는 이 책의 내용을 좀 더 검증하려고 시도한 것이며, 중국 내몽고 지역에서 출토된 홍산 문화는 이 책의 내용이 사실이었음을 밝혀주는 유적이다.

용암 강다리기 제사를 지내는 신목

이맥 선생은 한민족 시원문화를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민족 정신의 선각자로 추앙받는 분이다. 이런 분이 이곳에 묻혀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많은 사람들에게는 성지와 같은 가치를 주는 장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한민족 상고사에 관심있는 사람들은 이곳을 보기 위해 일부러 찾아올 수 있으며, 세종사람들에게는 한민족의 정신을 온전히 지니고 있다는 자긍심을 줄 수 있는 훌륭한 소재를 제공할 수 있는 곳이다.

아직 안내판조차 없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막상 무덤에 올라가도 묘비석이 이괄의 난 때문에 이름을 써넣을 수 없었기에 안내 없이 찾기가 쉽지 않아 안내판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역사와 문화는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는데 이맥 선생의 묘가 고복 자연공원에 있고, 안내판까지 설치된다면 아마도 고복자연공원은 자연의 풍광뿐 아니라 훌륭한 역사적 가치를 품고 있는 명품 자연 공원으로 한층 더 상향될 수 있을 것이다.

고복자연공원에는 신목(神木)이란 특별한 나무가 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는 신목(神木)을 신령이 나무를 통로로 하여 강림하거나 그곳에 머물러 있다고 믿어지는 나무라고 정의하고 있는데, 마을 공동체가 정월초하루나 대보름 제례를 할 때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우주목(宇宙木) 역할을 하는 나무라고 정의하고 있다. 고복자연공원이 있는 용암리에도 이런 신목(神木)이 오랜 세월 자리를 잡고 있다.

고복자연공원 안에 있는 마을 용암리는 세종시 무형문화제 2호로 지정된 용암강다리기를 보존하고 있는 마을이다. 강다리기는 풍년과 평안을 기원하고자 매년 정월대보름에 시행되는 집단 민속놀이인데 일종의 마을집단 줄다리기이다.

용암 강다리기 시현 중에는 신목에 제를 올리는 순서가 있는데 이를 위해 마을에서는 신목을 잘 보전 해 오고 있는 것이다. 이 신목의 위치는 고복자연공원 남측 끝자락 용암리 마을회관 안쪽에 있다. 이 신목은 고복자연공원을 자연적인 경관만이 아니라 오랜 세월 마을을 이루고 살았던 사람들의 민속문화를 담고 있는 나무이기에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한번 들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태백일사' 저자 이맥 묘와 신도비

고복자연공원이 잘 보전되기 위해서는 주변에 작은 생태공간이 많이 필요하다

농업용 저수지에서 자연공원으로 변화된 고복자연공원은 우리 세종 시민들에게 있어서는 귀중한 생태자원이 아닐 수 없다. 더욱이 마을의 민속문화도 있고, 민족적 의미가 있는 자원도 있기에 그 가치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 귀중한 생태와 문화적 가치가 있는 이 자연공원 지키기 위해서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그중에서도 산림과 수변을 이어주는 전이 생태공간의 보전과 관리는 아주 중요하다. 인근에 논, 작은 둠벙, 저습지대가 다양하게 존재할 때 고복자연공원은 더 생태적인 생명력을 유지,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단지 이용시설의 관점에서보다 상생의 관점으로 이런 부수적인 요소까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
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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