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저 봉사를 일상생활로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그저 봉사를 일상생활로 생각하고 살고 있어요"
  • 황우진 기자
  • 승인 2021.09.20 12: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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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반찬 봉사 45년 영담보살 우재숙씨... '봉사는 용맹정진 수행의 길"
두터운 불심으로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세상의 정 나누기 실천
영담보살 우재숙씨는 봉사를 생활화하면서 세종시에서 이웃과 함께 나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영담보살 우재숙씨는 봉사를 생활화하면서 세종시에서 이웃과 함께 나눔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

지금까지 봉사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을까.

봉사가 일상이 되고 있는 우재숙씨(61)를 '세종인'의 취재 대상으로 선정하고 찾아가는 길에 맨 먼저 던질 질문을 생각했다. 세종에서 봉사왕으로 잘 알려진 그는 불교에 심취, '영담보살'이라는 법명으로 봉사 속에 불심을 담아 전달하고 있었다. 

“봉사라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저 제 일상생활로 생각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반찬을 만들어 나누어 주었으니 특별히 어려울 것도 없었지요.”

"특별히 어려울 것이 없다"는 말은 봉사를 일상생활로 하는 가운데서 나온 말로 들렸다. 늘 하는 봉사인데 힘들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는 얘기였다.

'빵'과 '인생의 가치'를 두고 혼란스런 현대인의 삶속에 나름대로 답을 찾기 위해 봉사를 인생의 천직로 생각하고 실천하는 불보살을 찾아 세종시 근교 사찰 보림사를 16일 아침 일찍 방문했다.

여러 가지 궁금증을 가지고 찾아간 보림사는 세상에 크게 알려진 명승사찰도 아니고, 경치가 좋은 휴향처도 아닌 연서면 봉암리 마을 바로 옆에 있는 그저 평범한 이웃집과 같은 사찰이었다.

세종시 자원봉사센터에서 추천한 분이고, ‘세종시에서 제일 봉사활동을 많이 하는 사람은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으로 던진 질문이었는데 무심한 대답을 듣고 보니, 쓸데없는 질문을 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종시 봉사왕으로 알려진 우재숙 영담보살(61)은 45년 세월 동안 한결 같이 절에서 살면서 이웃들에게 반찬 봉사를 해왔다. 출생은 경기도 안성이나 14세부터 절에서 살기 시작했고, 26세부터 세종시가 되기 전 장기면 조그마한 절에서 반찬 봉사를 시작했다. 그 후 무변스님과 연서면 봉암리로 이사해 보림사를 개창했다.

“이 절은 큰스님과 제가 가시 자갈밭을 일구어 만든 절입니다. 공주에서 조치원을 다니다 이곳이 눈에 띄어 자리를 잡았는데, 처음에는 절이라고 할 것도 없고 그냥 벽돌로 집 한 채 지어놓고 시작했어요. 매년 조금씩 불사를 했고 어려운 이웃들에게 반찬 봉사를 했습니다. 불사와 반찬 봉사가 제 천직이고 제가 한 모든 일입니다. ”

영암보살은 1976년 출가하여 한국불교법사대학 ‘오종법사’ 과정을 수료하고 불자의 길을 걸으며 반찬 봉사를 자신의 직분으로 삼고 있다. 봉사 중에 주로 반찬을 선택하게 된 연유를 물었다.

자그마한 보림사 주방에서 봉사자들이 바쁘게 밑반찬 도시락을 준비하고 있다

“시대는 변해도 먹는 것은 같아요. 입맛은 옛날 그대로이지요. 하지만 지금 시대는 나이가 많아도 옛날 음식을 할 줄 모르는 사람이 많아요. 아이들도 옛날식으로 반찬을 해주는 것이 좋구요.”

영담보살은 1980년 10여 명의 신도들과 봉사단을 조직해 장애인, 조손가정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41년 동안 밑반찬을 만들어 봉사하며 밥상 문화를 꽃피어 왔다. 경로효친과 자비의 정신을 반찬 봉사를 통해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2008년부터 2018년까지 200여 명의 세종경찰서에 근무하는 의경들에게 삼계탕, 김밥, 콩국수, 팥죽, 떡, 과일 등을 수시로 제공해 의경들의 어머니로 알려졌다. 이웃에 대한 자비의 봉사활동이 알려지면서 2013년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고, 2019년 10월 대통령 표창을 수상했다.

“글쎄요. 상은 받았는데 제가 혼자 한 일이 아니어요. 봉사활동에 참여한 분들이 모두 함께 한 일이지요. 그래서 상도 ‘보림사봉사단’ 이름으로 받았어요.”

‘남을 도와줄 때는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 모르게 하라’는 성현의 말씀이 생각났다. ‘이것이 진정으로 봉사하는 마음이구나’ 하는 깨달음이 느껴지는 대목이었다. 보림사에서 반찬 봉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그 대강을 물었다.

“봉사하는 분은 도담동, 연서면, 조치원읍 해서 60여 분 됩니다. 정기적으로 한 달에 2번 밑반찬을 만들어 독거노인이나 불우가정에 전달하고 있어요. 정초에는 떡국을 하고, 여름에는 삼계탕, 가을에는 햅쌀과 김장봉사를 하고, 12월에는 파죽봉사를 하는데 1주일 동안 3가마 파죽을 쑤어요.”

1년 동안 만드는 된장 고추장 만 해도 그 양이 놀라웠다. 된장은 콩 7가마, 고추장은 마른고추 200근을 쓴다니 그 양이 얼마나 되는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보림사 처마 아래에 봉사자들이 마련한 밑반찬 도시락을 쌓아놓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영담보살의 반찬에 대한 철학이나 봉사 정신은 특별히 다른 데가 있었다.

“반찬을 만들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서 서로 정을 나누는 거지요. 지금은 내가 반찬을 해주지만 나도 언젠가 나이 먹고 몸이 아프면 다른 사람이 해주는 반찬을 먹겠지요. 그때 모르는 사람이 해주는 것보다 같이 봉사하던 사람이 해주면 얼마나 좋겠어요.”

우리의 밥상 문화는 다른 민족과 달리 주식에 여러 가지 반찬이 필요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식생활 문화에서 영담보살은 반찬을 만들어 인간사회의 정을 나누고 자비심이 넘치는 보시를 통해 불자로서 자신을 수양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 더 하고 싶은 일에 대해 물었다.

“반찬 봉사는 계속하는데 지금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분들하고 하고 싶은 것은 봉사단 이름도 짓고 참여하는 분들이 봉사도 하지만 자기 집에서 필요한 반찬을 가져가는 제도를 만들고 싶어요. 봉사하는 사람이 몸이 안 좋을 때는 여기서 도움도 받아야지요. 그렇기 위해서는 공용주방이 꼭 필요한데….”

공용주방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물었다.

“여러 명이 함께 일하려면 큰 주방이 있어야 하는데 지금은 저 혼자 쓰는 주방이라서 비가 오면 밖에서 비를 맞아가며 일해야 하고…, 봉사하시는 분들에게도 미안한 마음이 들어요.”

그렇게 많은 음식을 만들어 봉사하는데 주방이 없어 밖에서 일을 한다 하니 참으로 딱한 생각이 들었다. 부처님의 가호로 영담보살에게 또 보림사 반찬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꼭 좋은 주방이 생기를 기원하며 대화를 마쳤다.

영담보살이 기도하고 있는 가운데 강아지도 영담보살의 마음을 아는 듯 평온히 누워 잠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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