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해라"...그리고 두시간 후 ??
"철거해라"...그리고 두시간 후 ??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2.03.11 18:22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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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고려소재, 가처분 판결직전 철거 서두른 LH공사

   전기를 끊으려는 시도에 몸싸움으로 저항하는 고려소재 직원들
대한민국은 법치(法治)의 나라가 맞는가.
무식하면 용기가 있어 보이는 것일까.

법원 판결까지 2시간, 그걸 기다리지 못하고 공장 강제 철거에 들어갔다가 낭패를 당했다면 무식과 용기는 일맥상통하는 게 아닐까. 실제 그런 일이 세계 10대 경제대국을 자랑하고 국제사회에서 인권 문제에 훈수를 두는 대한민국 연기군의 한 작은 공장에서 발생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오는 9월 총리실의 세종시 이전과 함께 BRT노선 건설을 마무리해야하는 LH공사 세종시 1본부, 그리고 이전 의사가 분명한데 여건이 되지 못해 불가피하게 공장을 비우지 못하는 고려소재연구소.

이 둘 간에 팽팽한 줄다리기는 힘의 논리가 들어가면서 ‘철거 행정 대집행’이라는 물리적인 충돌로 이어졌다. 그 이면에는 법적인 정당성 여부를 피해자인 고려소재 쪽에서 제기했지만 그게 ‘괘씸죄’에 걸렸던 모양이다.

   주 생산품인 무정전 판넬을 작업장 밖으로 끌고 가는 철거반원
지난 2일, 이미 양측은 한 차례 다툼이 있었다. 역시 행정대집행의 불법을 공장 측은 들고나왔고 LH공사는 법적인 문제는 나중에 책임지겠다며 우선 철거를 해야 한다는 게 충돌의 단초가 되었다. 이날 이후 20일이라는 마지노선이 등장했다. 공장측은 당장 철거에서 20일간 말미를 요구했고 LH공사도 10여일 정도 여유로 화답, 일단락되는 듯했다. 하지만 그 이전 고려소재가 제기했던 행정대집행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 사실이 LH 공사측에 알려지면서 9일 당장 철거를 하겠다는 통보를 받았다. 약속을 어겼다는 것이었다.

문제는 심판 기일. 바로 이날 오전 11시 판결이 예정되어 있었다. LH공사가 바로 판결이 나는 그 날 아침 철거를 위한 대집행을 시행하겠다며 지난 번 보다 훨씬 더 적극적으로 밀고 들어왔다. 2시간 후 법원의 판결이 나오면 가부가 결정될 일인데 서두르는 이유가 뭘까. 그게 궁금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만에 하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면 이 공장은 5월 31일까지 철거가 불가능해진다. 그 판결이 나오기 전에 밀어부치기로 해결하겠다는 것이었다. 요컨대 ‘식물공장’을 만들어 놓아야 이후 사업 추진에 유리하다는 자체 판단이었던 듯했다. 참으로 법을 무색케 하는 조치였다. 그렇다면 역으로 효력정치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그런데 그런 가정이 실제 현실이 되었다.

9일 오전 9시 30분. 연기군 남면 월산리 고려소재 연구소 공장에 도착하니 이미 철거 용역들이 안전모로 무장한 채 공장에 진입해 있었다. 힘으로 대항 할 수 없는 게 공장 측 입장이었으리라. 다만 작업장 안에 직원들이 있을 때는 철거를 하지 못한다는 규정을 들어 몇 몇 직원이 항의성 작업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신규철 회장, 그는 "철거는 불법"이라고 호소했다.

신규철 고려소재 회장은 핸드 마이크를 들고 LH공사 직원, 용역반, 그리고 경찰 쪽을 향해 “이건 명백하게 불법입니다. 대한민국에 이런 법은 없습니다. 법적인 책임은 모두 져야 합니다”라며 절규하다시피 외치고 있었다. 고려소재 기획실장, 역시 보상부장을 따라다니면서 “행정 대집행은 불법”이라며 호소하는 모습이 몇 차례 눈에 띄었다. 작업복을 입은 고려소재 직원들은 삼삼오오 모여 진행상황을 지켜보면서 가끔씩 저항을 하기도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LH공사 간부들도 먼발치에서 이 상황을 보고 있었다.

오전 10시. 철거반이 LH공사 보상부장의 독려에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공장 안으로 들어가는 잠금 장치를 산소용접기로 부셨다. 진입이 임박했다는 신호다. 고려 소재 관계자들은 억장이 무너진다는 표정으로 손 놓고 하소연하는 길 밖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드디어 10시 20분쯤. 한 차례 충돌이 벌어졌다.
공장 뒤 편에 있는 전기 메인 파워를 절단하려는 시도에 고려소재 직원들이 전봇대에 인간 띠를 형성, 접근을 막아버렸다. 그러자 이번에는 전기 절단용 장대를 이용, 정문 쪽 전기 공급선을 차단하려는 과정에서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긴 장대를 빼앗으려는 측과 빼앗기지 않으려는 쪽이 한 데 뒤엉켜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숫자는 적었으나 고려소재 측이 막아냈다.

이 때 경찰이 개입했다. “경고합니다. 이렇게 막으면 안 됩니다. 다시 한 번 경고합니다.”
정당한 법 집행을 왜 힘으로 막느냐는 것이 요지였다. 그게 정당한 것인지는 이 시각까지는 해답이 나오지 않았다. 한차례 지상에서의 시도가 무산되자 이번에는 고가 사다리차를 동원됐다. 지상전에서 공중전으로 옮겨갔다. 고려소재 직원들은 무기력해졌다. 그 시설을 따라잡을 수 있는 게 없었다.

   전압시설을 둘러싼 고려소재 직원들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보다 못해 지난 번 철거 시도 때 안면이 있는 부장에게 기자가 물었다.
“꼭 이렇게 까지 할 필요가 있습니까.”
“저희도 마음이 편지 않습니다.”
“그럼 양측이 협상을 다시해보면 어떨까요. 안 나간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수도 없이 설득을 했습니다. 오늘 철거 못하면 BRT도로 건설을 총리실 이전 때까지 하지 못합니다.”
“오늘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 심의하는 날이 아닙니까. 그걸 보고하는 게 좋지 않나요.”
“오늘 심의만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조건 철거해야 합니다.”

한 직원이 전봇대를 타고 올라가 항의성 시위를 했다.
신회장은 “저거 사진 다 찍어 놓아라. 명백한 불법이다. 한전 마크가 확실하게 나오도록 찍어야 한다”며 직원들에게 연신 고함을 질러댔다. 그 외침은 너무 공허했다. 허공을 향해 토해내는 절규에 가까웠다. 이번에는 흥분한 신회장이 전봇대를 타고 올라갔다. 그는 해병대 출신이었다. 두 사람이 전봇대에 오르자 밑에서 지켜보던 경찰이 안전사고를 염려하면서 “위험하니 내려오라”고 권고했다.

   전기를 끊고 있는 고가사다리에 맞서는 두사람
잠시 후 전기 공급은 끊어졌다.
이를 계기로 대기 중이던 철거반원들이 공장 안으로 진입, 물건을 내오기 시작했다. 주 생산품인 무정전 판넬을 옮기는 도중 회사 측은 “잘못 옮기면 다 불량이 난다”고 경고했지만 제품의 특성을 알지 못하는 용역 입장에서는 작업 속도가 더 중요했다. 콘베이어 벨트가 나오고 반제품이 밖으로 옮겨졌다. 이제 완전 항복이다.

상황 종료였다. 더 이상 현장을 지킬 필요가 없었다. 마침 조치원에서 유한식 전 연기군수의 세종시장 출마를 위한 선거사무실 개소식과 박희부 전 의원을 출마 기자회견이 예정되어 있어 현장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정말 바쁜 오후 시간을 보냈다.

선거 관련 기사를 마감한 오후 5시. 다시 고려소재에 전화를 했다. 매번 통화를 했던 기획실장은 전화가 꺼져있었다. 순간 “아~ 허탈해서 전화를 받지 않는구나”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그리고 다시 신회장과 연결을 했다.  의외로 밝은 목소리였다.

   대기중인 철거 용역들
“저희가 이겼습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판결문 원본이 도착 직전까지도 철거를 했습니다. 지금은 저 쪽에서 빌고 그럽니다.”

차분했지만 절제된 용어를 사용했다. 마이크를 잡고 현장에서 날뛰던(?) 모습과는 정반대였다. 그러면서 조용히 부탁을 했다.
“기사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무슨 얘기인지 직관적으로 알아차렸다. 상황은 판결 시점이 변곡점이 되었다. 그 결정적인 순간 현장에서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오랜 경험으로 비디오처럼 명백하게 그릴 수 있었다. 그 쪽에서 여러 가지 정황을 감안, 기사화되는 걸 막고 싶었던 것이다. 하긴 무리한 철거에 앞장섰던 LH공사 관계자들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됐다. 회사의 구성원이라는 현실적인 상황이 그들을 무리하게 몰아 부쳤을 것이다. 하지만 기사화는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누군가가 기록으로 남겨야 할 현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날 두 번째 찾은 고려소재 연구소 철거현장에서 느낌 점은 이러했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도 아니었고 무식이 용기가 된다는 것이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이 사건의 종지부는 결코 아니다. 고려소재의 이전이 완전한 해결책이다. 그래서 아직은 안심하기에는 이르다.

   애걸하는 공장 관계자, 신규철 회장과 신지원 실장<사진 왼쪽>
   전기 차단을 지켜보는 공장 직원과 LH공사 관계자, 그리고 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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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호 2012-03-23 15:42:58
“저희가 이겼습니다.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졌습니다. 판결문 원본이 도착 직전까지도 철거를 했습니다. 지금은 저 쪽에서 빌고 그럽니다.”
.
.
.
“기사는 나가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의 회장님다운 멋진 응변이었습니다.
현재도 힘들겠지만 정부관계자와 LH측 실무 간부들의 뒷탈을 걱정하는 배려감 역시 탁월합니다.

신규철 회장님, 김영숙 사장님! 힘내시고요... 고려소재 임직원 여러분도 화이팅~~

김이영 2012-03-12 10:26:37
문제가 너무많군요
두시간후면 나올일가지고 뭐가그리급했습니까
인사사고라도났으면 어쩔뻔했어요
나랏일 하는분들 잘들하세요

첫마을 2012-03-12 08:54:27
이대한민국에살고있다는게 서글프다는생각이 듭니다
나라에서 이런식으로 중소기업하는사람들한테
힘으로 몰아부치는군요 결국은 지고서 빌면다되나요

정상기 2012-03-11 20:08:51
이럴 수가... 이럴수가...판결 심의 직전에 철거하는 건 무슨 뜻인가. 그리고 뒤집어지면서 빌고, 이게 뭐하는 짓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