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임구호,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급히 송성리쪽으로 가시오"
친구 임구호, "여기가 어디라고 왔어, 급히 송성리쪽으로 가시오"
  • 윤철원
  • 승인 2021.07.0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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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 세종시의 한국전쟁] 신대리 고아들 보지 못해 안타까워
만나지 못하고 떠나 죄스러운 심정... 한 편의 시로 슬픔 달래며 참회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그만큼 나라를 위한 희생은 숭고한 것이고 두고두고 그 희생을 후대들이 값지게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전쟁' 당시 조치원을 비롯한 연기군 상황은 어떠했을까. 이곳 역시 전쟁의 참혹함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 실상은 '추운실기'에 잘 묘사돼 있다. 6월 전쟁과 관련한 부분을 발췌하고 번역해서 전쟁의 잔혹함을 전해보고자 한다. 여기에 나오는 1인칭 '나'는 추운실기 저자 맹의섭 선생이다. 참고로 지난 1월부터 연기군의 야사를 기록한 '추운실기'를 번역하고 있음을 밝힌다.

한국전쟁에서 폭탄투하를 하는 B-29 폭격기. 사진출처 :다음

▣ 임헌빈군은 나를 도우려할 것이나 주변 사람들의 해코지는 어찌하나!

두 집식구가 웃으면서 아침 식사를 마친 후 점심을 싸들고 나오려고 하는데 황우영군이 “지금 어느 방면으로 가려고 하오?”묻기에 “공주 대교를 건너서 아산방면으로 가려합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그가 하는 말이“친구 임헌빈 군이 남면 인민위원장으로 있고 자위대원들도 당신이 거의 알 만한 사람들이니 그들을 한 번 만나보고 가는 것이 좋겠소.”라고 한다.

나는 경솔하였다. 그러겠다고 했다가 딴 길로 돌아가서 가든지 아니면 바쁘다고 핑계하고 가면 되었을 것을 솔직한 마음으로 “임헌빈 군은 전부터 아주 친했던 친구였으나 오늘 날에는 그가 적군과 함께하고 있으니, 비록 그가 나를 도와주고 싶어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인데 그러면 어떻게 막겠소. 그들을 만나는 것이 좋지 않을 것 같으니 그대로 가겠소.”하였다.

황우영 군이 깜짝 놀라며 “임 형은 기미독립만세운동뿐만 아니라 연기군지역 대동단의 감직으로 활약하던 투사였고 본래 공산분자가 아니라는 것은 맹형도 잘 알면서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시오. 적도들이 난무하는 이때에 누가 능히 그들의 횡포를 막아내겠소. 연기군에는 천홍만림(千洪萬林, 홍씨와 임씨 성이 많다는 의미)의 세거지인데 만림(萬林)으로 불리는 임씨 성이 아니면 그 횡포를 누가 말릴 수 있겠소.

그리고 향교에 모신 각 명현의 위패는 대성전 뒤에 있는 담장 아래에 팽개치듯 쌓아놓고 대성전은 부상병들의 수용소로 사용하고 있어서 마루에 붉은 피가 흥건하고, 남면사무소에 보관된 중요서류는 휴짓조각처럼 내팽개쳐져 있었소. 그런 상황에 앞으로 행정을 보게 되면 그 피해와 손실이 막대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지역의 유지라는 인사로서 어찌 방관할 수 있었겠소.

이와 같은 상태를 임씨 종중 인사들과 몇몇 씨족 대표들이 서로 상의하여 임헌빈 군에게 인민위원장을 위촉하였더니 임군이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겼다가 승낙한 것이요. 그는 인민위원장에 취임하는 즉시 면의 중요서류 즉 호적부, 지적도, 기타 참고서류까지 면 직원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매장하도록 하여 전쟁이 끝나면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소.

그리고 향교의 몇몇 중진인사를 소집하여 인민위원장의 직권으로 인민군 부상자를 다른 수용소로 옮기도록 하는 동시에 명현의 위패를 옛날처럼 다시 복설하였소. 그를 적색분자로만 알고 있으면 그건 오해올시다.”한다.

그 친구의 말을 들으니 임시변통이라도 임헌빈 군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시국의 인심을 어찌 믿을 수가 있을까? 당사자인 임 형은 믿을 수 있다고 하여도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해를 당할까 두려워서 “예, 예”하며 건성으로 대답하고 출발하여 서면 신대리를 거쳐 기룡리로 접어들었다.

▣고아원 아이들이 신대리에 있는 알고도 만나보지 못했다.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걷다보니 점심때가 되었다. 아무리 피난 중이라도 살자고 하는 일이라 배고픈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신대리와 기룡리는 용암리로 가는 길목이었는데 동막골에 이르렀다. 그곳에서 아는 사람을 찾을 형편도 아니어서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우선 땀이나 식힌 후에 아침에 싸온 점심을 먹으려고 하는 중에 친구 임구호 군이 나타났다.

그는 사방을 돌아 본 후에 사람이 없음을 확인하고는 재빨리 우리 일행을 자기 집 방으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이곳이 어디라고 들어오셨습니까? 근화원 아이들이 이웃 신대리 초등학교에 있는데 맹 읍장께서 반드시 들를 것이라고 종종 조사하고 있으니 화약지고 불에 들어간 격이외다.”한다.

그때 마침 점심이 준비되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나무 아래에 서 있던 것을 보고 급히 준비한 것 같았다. 임 군은 “얼른 점심 드시고 용암리 뒷고개를 넘어 전동 송성리로 탈출해야 안전하니 급히 떠나시지요. 우정으로 말하면 며칠 쉬며 노독이라도 푸시라고 하는 것이 도리인 줄 알겠으나 오히려 해가 되지 않으리라 누가 장담하겠소.“하며 문 밖으로 나가 돌아다니다가 다시 들어와서 내쫓다시피 떠나라고 재촉하였다.

한편으로는 겁도 났으나 한편으로는 감사한 마음뿐이었다. 그렇게 길을 걷기 시작하면서 다시 생각을 해보니 임구호 군의 후한 대접은 물론이고, 내 신상에 대한 매우 중요한 정보를 알려주면서 행선지 코스까지 안내해준 우정에 감사의 눈물이 흘렀다.

용암리의 모퉁이 검단마을을 거쳐 송성리 뒷산에 오르고 나니 임구호 군의 말과 같이 이제는 살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벌써 석양이 되었는데 산중에 인가가 없었다. 그곳에서 더 가면 전의 시장이었다.

포로로 잡힌 인민군. 사진 출처 : 다음

그러나 남은 해로는 도저히 전의 시장까지 갈 수 없었으며 간다고 한들 밤중에 누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럴 만한 집도 없을 뿐 아니라 주막에는 많은 사람들이 드나들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들어갈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그런 고민을 하며 산길을 걷던 중에 어디선가 개 짖는 소리가 났다. 그곳을 찾아가니 우리가 서 있던 바로 아래에 외딴집이었다.

그 집 앞으로 다가갔더니 계곡에서 떨어지는 석간수가 이 돌 저 돌 사이를 꼬불꼬불 흐르며 부서지는 것이 마치 진주처럼 보였고, 뜰 앞에 만발한 봉숭아와 어우러져 마치 선경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다.

주인을 찾아 마당가에서 하룻밤 자고 가겠다고 청하니 거절한다. 여러 번에 걸쳐서 “피난민인데 이 밤중에 어디로 가겠소. 다행히 인가를 만났으니 도와주세요” 하며 애원하니 나중에는 주인도 후의로 대하여 하룻밤 그 집 마당에서 묵었다.

마당에 누우니 땅에서 올라오는 습기와 하늘에서 내리는 찬 이슬이 괴롭힌다. 잠을 청하면서 황우영 친구에게 들은 임헌빈 군의 일과, 임구호 군이 알려준 일 들을 생각하니 시상이 떠올랐다. 또 신대리에 원아들이 있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을 만나지도 못하고 피난하는 것이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시로 회포를 풀어 보았다.

송성리 산골에서 하룻밤

송성산로석양사(松城山路夕陽斜, 송성리 산길에서 해는 기우는데)

심곡행심유일가(深谷行尋有一家, 심심산골 집 한 채 찾아 들었네)

정화석간방리속(庭花石澗方離俗, 뜰의 꽃, 맑은 시내 속세가 아니로다)

의시선장낙차하(疑是仙莊落此谺, 신선의 별장이 이 산골에 떨어 진 것인가)

친구 임구호의 도움에 감사하며

우봉임우일고촌(偶逢林友一孤村, 우연히 친구 임구호를 시골에서 만나니)

인측무인도입문(認側無人導入門, 사람 없나 확인하고 집으로 안내하네)

적도수수심군지(赤徒數數尋君至, 적군이 여러 차례 그대를 찾았으니)

급피원행물근원(急避遠行勿近園, 어서 멀리 피하고 고아들에게 가지 말라네)

고아원아들을 지나치고 탄식하다

원아남북양분리(園兒南北兩分離. 원아들과 남북에서 두 번이나 헤어지니)

번뇌부심위아수(煩惱腐心慰我誰, 번뇌, 근심하는 나를 누가 위로할까)

남별북과죄본의(南別北過罪本意, 남행엔 헤어지고 북행에선 지나치니 죄스러워)

인인난신공유위(隣人難信恐遺危, 이웃도 못 미더워, 위험할까 두렵다)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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