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암사, 뱀 전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비암사, 뱀 전설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 윤철원
  • 승인 2021.05.15 0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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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 천년고찰 표현이 부족한 비암사 극락보전 보물 지정
동국대생이 발견한 불비상, 그걸 모셨던 절이라는 이름에서 유래설
천년고찰 비암사는 불비상이 나와 사찰의 가치를 알렸으며 전통과 유래를 자랑하는 세종시의 대표적인 명소가 되고 있다.

비암사의 극락보전이 지난 2월 23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119호로 지정되었다. 이로써 세종시에서 출토된 국가지정문화재는 총8점(국보 2점, 보물 5점, 천연기념물 1점)이 되었는데, 그중에서 절반에 해당하는 4점이 비암사에서 출토되었으니 참으로 비암사는 세종시의 대표적인 역사문화 유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암사에 대한 명칭이 역사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숙종실록 1716년 3월 3일자 기사이다. 조선후기 유학자인 최석문이 자신의 스승 윤증과 우암 송시열이 절연하게 된 사연을 아뢴 상소문에 「이유태가 신의 스승(윤증)에게 보낸 글 중에 ‘내가 갑인년(1674) 비암(碑庵)에 있을 때에...’」 라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볼 때 갑인예송이 일어나던 해, 즉 1674년 서인(西人)이었던 초려 이유태는 비암사에 머물면서 우암 송시열, 윤증 등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예송논쟁에 참여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비암(碑庵)이라는 사찰명칭은 적어도 1674년 이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비암사는 언제 창건되었을까? 그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통일신라의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하지만 이것도 믿을 수 없다.

왜냐하면 비암사에서 발견된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 조성된 시기는 673년인 반면에, 도선국사의 출생년도는 827년이기 때문이다. 도선국사가 출생하기 150여 년 전에 불비상이 조성되었으니 그 이전에 이미 사찰이 있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비암사는 불비상 조성연대를 기준으로 본다면 1350여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천년 고찰이라는 표현이 잘못되지 않은 것이다. 그럼에도 숙종실록 이전의 문헌에서 비암사에 대한 기록을 아직도 찾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불비상과 괘불탱화

비암사라는 이름은 불비상(佛碑像)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불비상이란 비석처럼 생긴 바위앞면에 부처님을 새기고, 그 좌우측과 뒷면에 부처님을 조각하게 된 경위와 연대 등을 기록한 것인데, 「부처님을 새긴 비석(불비, 佛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부처님 비석(碑)」을 모신 절(庵)이라는 의미에서 비암(碑庵)절 또는 비암사(碑巖寺)라고 불렸을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서 전해지는 뱀과 관련된 설화는 “비암절”을 부를 때 나타나는 음절축약현상에 따라 “뱜절”로 부르게 되면서 마치 뱀이 비암사와 관련된 것처럼 가공한 이야기로써, 뱀 설화를 비암사의 유래라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현재 청주국립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는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보물 제367호 기축명아미타불비상, 보물 제368호 미륵보살반가사유비상 등 국보급 문화재 3점이 모두 비암사에서 출토된 것이다.

이들 중에서 특별히 관심을 끄는 것은 국보 제106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이다. 청주박물관에서 보관중인 국보로는 이것이 유일한데, 출토지가 세종시 비암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세종시민으로서 자랑과 긍지가 한층 높아지는 것은 왜 일까?

이 불비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1960년이다. 당시 동국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재옥 학생의 제보에 따라 한국불교미술의 권위자였던 지도교수 황수영 박사가 그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면서 세상을 놀라게 하였고 1962년에 모두 국보와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 이전에는 한낱 부처님이 새겨진 기이한 비석들이 비암사 삼층석탑 꼭대기, 즉 석탑 노반에 얹혀 있었던 것인데, 이 불비상들의 가치가 인정받으면서 비암사도 세상의 주목을 받는 위치에 오르게 된 것이다.

보물로 지정된 극락보전

이번에 보물로 지정된 극락보전도 정확한 건립연대가 전해지지는 않고 있다. 다만 건축 수법 등으로 미루어 1600년대 중반에 건립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는데, 1657년에 그려진 「비암사영산회괘불탱화」와 비슷한 시기에 건축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 이유는 극락보전 낙성식에 맞춰 탱화를 제작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2021년(불기2565년)에 천년고찰 비암사의 극락보전이 국가문화재로 지정되는 경사를 맞이하였으니 비암사의 입장에서 보면 다가오는 5월19일 부처님 오신 날이 더욱 뜻깊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진심어린 축하를 드리면서 세종시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으로서 앞으로도 더욱 세종시민의 관심과 사랑을 받으며 잘 보전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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