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과학자 장인순, 전의마을도서관 열었다
원로 과학자 장인순, 전의마을도서관 열었다
  • 문지은 기자
  • 승인 2021.05.05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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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연중무휴 운영, 대출기록 남기지 않고 자유롭게 책 대출
어린이 도서관으로 “독서하지 않는 게 문맹”… 책읽는 습관 강조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소 소장이 2021년 어린이날 선물로 세종시 전의면에 '전의마을도서관'을 열어, 원로과학자의 후학을 위한 열정을 읽게 했다.

코로나19로 대부분 행사가 취소된 어린이날, 세종시 전의면 어천길에는 ‘마을도서관’이라는 아주 특별한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산 속 깊은 고려전통기술 공장 건물 2층, 목재로 만든 아치에 ‘전의마을도서관’ 간판이 걸린 공간에는 책 9,000여권이 빼곡하게 꽃혀 있었다.

한 평생 원자력 기술 발전에 몸을 바친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 연구소장(81)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곳이다.

4일 오전 11시 만난 장 소장은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주며 고려전통기술 부설 도서관장 명함을 건넨 뒤 “어서 오세요”라는 말로 반겨주었다. 마을아이들에게 도서관을 선물하겠다는 오랜 꿈을 이룬 원로과학자의 얼굴엔 스스로의 약속을 지켰다는 자부심이 스쳐지나갔다.

이 도서관은 연중무휴에 자유롭게 들러 책을 읽을 수 있고 별도의 대출서식 없이도 책을 빌려갈 수 있다.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치려는 원로 과학자의 마음이 담겨있는 배려다. 

그는 “평생 40여개국을 다니며 느낀 것이 자원이 없어도 잘 사는 나라의 특징은 국민이 책을 많이 읽는 나라라는 것을 깨달았다”며 “그런 연유로 은퇴 후에도 4,000여권의 책을 구입해 읽었다”고 전했다.

스스로 독서광이기도 한 장인순 관장은 틈틈이 읽었던 책 속에서 얻은 교훈적인 글에 스스로 생각을 더해 ‘여든의 서재’라는 이름으로 책을 내기도 했다. 책과 인생을 따로 생각할 수 없는 여든의 여정을 걸어온 노(老)과학자였다.

결국 ‘여든의 서재’ 수익금 5천만원은 전의마을도서관 건립에 몽땅 들어갔고 뜻을 같이하는 지인과 독자들이 십시일반으로 책을 보냈으니 마을 도서관은 노 과학자의 의지와 동료들의 정성이 빚은 아름다운 공간이었다. 

원자력 기술 발전에 한 평생을 헌신해 온 과학자가 조용한 시골마을에 도서관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도 관심을 끌지만 운영 방식 또한 여러모로 이채로웠다. 요컨대 교통접근성이 떨어져 도서관에 못 오는 아이를 위해 택시회사와 협약을 맺어, 버스정류장에서 도서관까지 왕복하는 택시비는 도서관에서 모두 부담하는 것 등이 그러했다. 

‘이 하루는 왜 이렇게 소중한가’라는 화두로 매일 새벽 6시에 집을 나서 전의면으로 출근하고 하루 8시간 독서를 한다. 그걸 정리하고 후학들에게 남겨야 할 조언을 모아 또다른 책을 낼 준비를 하고 있다. 

항상 ‘책과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시력을 지켜 달라’고 기도하는 그는 ‘책은 세상이며 삶이며 우주이다’라는 조선 실학자 이덕무의 글귀를 마음에 새기고 생활하고 있다.

장 관장은 “아이들이 읽는 책을 보며 성장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며 “좋은 책을 선정해 아이들에게 권해 주는 것이 부모의 의무”라고 말해 여든의 나이에 도서관을 만든 이유를 설명했다.

이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국립도서관에 초·중·고교 학생의 필독서를 의뢰해 3,000권의 책을 추천받아 구입했다.

책상도 태극무늬, 원, 삼각형, 사격형 등 다양한 도형으로 비치해 아이들에게 공간 개념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주변엔 꽃과 나무를 심어 자연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환경도 조성했다.

도서관에선 원로 과학자가 직접 아이들에게 수학·과학·글쓰기도 가르칠 예정이다. 초대 회장을 맡았던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따뜻한 과학마을벽돌한장’이라는 전문지식인 단체의 강의도 계획하고 있다. 세간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는 강의이다.

늘 아이들에게는 ‘자기 글을 쓰라’고 가르친다. 자기 글을 쓰다 보면 얼마나 스스로가 부족한 줄 알고 공부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는 “‘시간에 대한 이해’도 현대 물리학을 한 차원 발전시켰다”며 “‘아인슈타인의 시간의 상대성의 원리’ ‘양자역학’ 모두 시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부연하기도 했다.

고려전통기술 2층에 마련된 전의마을도서관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소파와 다양한 모양의 테이블이 놓여져 있었다.

‘작은마을도서관’이라는 나무아치 현판은 빛솔캘리그래피 김도영 씨가 썼다. 왼쪽엔 ‘ㄱㄴㄷㄹ ABCD 왜?’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고, 오른편엔 ‘1 2 3 π ●▲■★ 2121 WHY’라는 기호가 있다. ‘왜?’라는 질문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며 수·양·공간의 학문인 수학과 글쓰는 중요성을 강조하는 듯했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는 ▲국민과 공직자의 정직 ▲독서를 많이 하는 국민 ▲여성의 활발한 사회활동이 필요하다는 그는 “문맹은 책을 읽지 않고 공부를 하지 않는 것”이라는 말로 독서하는 생활을 강조했다. 

원로 과학자의 생애 마지막 꿈이 배어 있는 ‘전의마을도서관’은 대한민국을 선진국으로 발전시킬 작은 벽돌이 되면서 세종의 명물이 될 게 틀림없었다. 

국립도서관에 의뢰해 초중고교 학생의 필독서 3000권을 선정해 구입했다. 어른을 위한 도서 등 다양한 장서가 구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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