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는 다 끝났다. 너무 늦었으니..."
"얘기는 다 끝났다. 너무 늦었으니..."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2.03.02 13:07
  • 댓글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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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고려소재...밀어부치기식 철거에 매달리는 중소기업

철거를 20일만 늦춰달라는 회사측과 당장 철거해야 한다는 LH공사측과의 간극은 마치 정문의 철문처럼 무거워보였다.
“저희들도 무지하게 나가려고 노력했습니다. 부장님을 오늘 처음 뵌 것도 유감입니다. 같이 협의하자고 해놓고 공장을 가로질러 잘라서 한쪽만 가동하라는 게 말이 됩니까. 중소기업 하는 게 무슨 죄가 됩니까.”

2일 오전 9시 연기군 남면 월산리 월산지방산업단지 6블럭 내 고려소재 대표이사실. 김영숙 대표가 LH공사 김 모개발부장을 앞에 두고 통 사정을 했다. 김 모부장은 그저께 부임했다.

밖은 LH공사에서 철거반을 동원, 한차례 정문 앞에서 가벼운 실랑이가 있었다. 일촉즉발의 살벌한 분위기였다. 안전모로 무장한 철거반이 무력시위를 하는 가운데 LH공사 담당자, 공사를 책임진 대림건설 관계자, 그리고 고려소재 대표와 회장, 기획실장이 머리를 맞대고 앉았다. 벼랑 끝에 몰린 대치에 돌파구를 마련해보자는 의도였다.

“같이 노력해보자고 해놓고 말도 안 되는 안만 가지고 나왔습니다. 공장에는 생산라인이 있는 데 어떻게 가로질러서 반을 뜯어내고 가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다 지나간 일이니 20일만 시간을 주면 저희가 어떻게든 대책을 강구해보겠습니다. 그것도 안 됩니까.”

김 대표의 간절한 호소는 “그동안 법적으로 또는 절차상 문제는 있었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게재가 아닌 만큼 이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해보자”는 것이었다. 현실적인 대안 제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고 ‘20일만 말미’가 회사 측 요구였다.

“아시다시피 공장 이전 예정지인 동면 응암리에 터파기 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그 쪽에 공사가 늦어진 건 LH에 계신 분들도 다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루라도 앞 당겨 보려고 하는데 그게 잘 되지 않았습니다. 대집행을 오늘은 하지 말아주십시오.”

철거 집행 대행문을 낭독하고 있는 LH공사 보상팀
LH 공사 측 관계자가 입을 열었다.

“하다하다 안되니까 대집행을 하게 된 게 아닙니까. 여기를 철거하지 않으면 공사를 할 수 없습니다.”

고려소재는 삼성 반도체 클린 룸에 들어가는 무정전 판넬을 생산하는 업체. 월산 공단 26개 업체 중 16개 회사는 세종시 특별법에 따라 보상 후 이전했고 나머지 10여개 사가 오는 12월까지 비워주기로 되어 있다. 이 중 2일 철거반이 대기 중인 고려소재와 이웃한 Y&T 파워텍이 문제가 되었다.

2005년 세종시 관련법이 제정될 때는 포괄적으로 2012년 말까지 공장을 이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백지 위에 도시계획이 입안되고 기본 설계가 시작되면서 BRT도로가 이 두 공장을 관통하게 되었다. 그게 화근이었다. 나머지 공장은 오는 12월 말까지 정상적인 가동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 때부터 LH공사와 두 공장 간에 공방은 시작되었다. 보상금에 아예 불만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국가사업이라 적극 협조를 하기로 했다. 문제는 이전 부지 매입이 지연되고 늦어지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고려소재 측은 2012년 말까지 다른 공장의 정상 조업을 예로 들면서 “우리가 나가려고 하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으니 조금은 말미를 달라”고 요청했고 9월 국무총리실 입주를 앞둔 LH측은 “더 이상 공사를 지체할 수 없다” 며 이날 철거반을 동원한 것이다. 아무래도 총리실 입주가 정책의 기준이 된 듯했다.

2012년 12월말이라는 시한은 세종시 건설 관련법에도 명시되어 있고 관보, 연기군 공문에서도 충분히 입증이 가능하다. 회사 측에서도 변호사 자문을 구해 그걸 LH공사에 보내기도 했다. 법적으로 강제 철거는 문제가 있다는 해석이었다. 이는 LH공사 관계자들도 알고 있었다.

문제는 당장 철거였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까운 셈이었다. LH공사 측에서 법적인 문제는 나중에 책임을 지겠다고 의례적인 답변을 했다. 그러나 지루한 법정 공방은 끝도 알 수 없고 설사 이기더라도 ‘을’의 위치에서는 정신적, 물질적인 피해까지 계산하면 ‘본전’이다.

게다가 대책이 없는 상태에서 철거가 되면 금전적인 손해도 문제지만 삼성 반도체 공장 가동까지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협력업체 입장에서는 여간 난처한 일이 아니다. 이 회사 관계자들이 총 동원돼 설득과 하소연, 그리고 대책을 논의하자고 애원하고 있었다. 그 모양새는 안스러울 정도였다.

“대책회의를 이해 당사자인 우리 회사는 빼놓고 LH에서만 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게 아닙니까. 이 쪽 얘기를 들어보면서 서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았어야 되지 않습니까.”

김영숙 대표의 하소연은 계속 되었다.

“어째든 천막이라도 치고 공장 시설물을 끄집어내겠습니다. 지금 싸워서 될 일입니까. 이게 싸워서 될 일이냐고요. 그러니 20일만 시간을 주세요. 안 나가겠다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이 때 그저께 부임했다는 LH공사 김모 개발부장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약 30여분에 걸친 회사 측 하소연을 들은 직후였다.

“얘기는 다 끝났다. 일이 너무 늦었으니 이 상태에서 더 늦어지면 감내할 수 없다. 그런 일은 봐 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가자.”

LH공사 보상팀과 마주앉은 고려소재 회장과 대표이사.
어이가 없었다.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더라도 너무 매몰찼다. 그 회사에서는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게 근무평가를 잘 받는지 모르나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랬다. 그저께 부임했으면 적어도 이런 일이 왜 발생했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자세가 우선되어야 하지 않았을까.

점령군처럼 행사하는 ‘갑’의 자세는 적어도 기자의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게 우리나라 행정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결론은 다 내놓고 절차만 밟으러 왔다는 얘기가 아닌가. 그것도 그 자리를 맡은 지 이틀 밖에 안 된 책임자가...설사 업무 파악이 다 됐더라도 그건 민원인을 대하는 자세가 절대 아니었다.

적절한 예가 되는지는 모르겠으나 우리가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건 관용(tolerance) 부족 탓이라고 한다. 약자에 대한 강자의 배려, 그게 선, 후진국을 가르는 가치다. 배려는 ‘갑’이 하는 것이다. 이날 “중소기업하는 게 죄냐”며 “철거를 20일만 늦춰 달라”는 ‘을’의 호소에 “가자”라며 직원들과 함께 빠져 나가는 ‘갑’의 모습에서 관용은 찾아볼 수 없었다. 매달렸다가 작은 힘으로 윽박도 질러보는 한 중소기업인이 그렇게 애처로워 보였다. 이게 MB정부가 주창했던 기업을 우대하는 사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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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나브로 2012-03-08 17:49:30
중소기업을 힘으로 억누르는건 시대착오적인 발상이 아닐수없다. 김영숙 대표님 힘내십시오. 정의는 아직 살아있습니다.

관용 2012-03-08 17:45:43
기사 마지막에 있는 관용 한글자가 모든걸 대변해줄수있을듯 하다. lh의 관용이 가장 필요한 시기 아닌가

장군봉 2012-03-07 19:01:24
김영숙 대표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자나요~
LH는 각성하라~ 각성하라 .각성하라.
중소기업 우선이지 총리실이 우선이냐
국민들은 분노한다~ 분노한다. 분노한다
어서빨리 바로잡아 중소기업 우대하자~.

전준상 2012-03-07 18:50:44
기업의 회생이 우선인가 총리실 입주가 우선인가
그것부터 물어보고 싶다 천막을 치고라도 기계를 옮기겠다는
기업 대표의 호소가 20일이라는 시간의 여유를 요구하는 기업 대표의
애원을 매몰차게 거절하는 LH공사의 개발부장 나리
그렇게해서 나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지요 기업이 살아야 국가가 살고 국민이 사는데
총리실 이전이 그리도 증요하던가요? 총리께서 그리 시키시던가요 ?
한번 재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sbchul05 2012-03-07 15:39:33
강자에게는 후하고 약자에게는 강한게 후진국이겠지. 이래서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이 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중조기업이 살아야 이 나라 경제가 탄탄해진다는 것은 말로만 하니 말입니다. lh는 관용을 베풀어 약자에게 배려 좀 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