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 이씨 후손, 아산 외암마을까지 뻗어갔다
전의 이씨 후손, 아산 외암마을까지 뻗어갔다
  • 임비호
  • 승인 2021.02.23 0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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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비호칼럼] 조천(鳥川)의 인문학 탐사<하>...조천에 터를 잡은 사람들
조치원은 세종대왕 애민정신이 만든 신도시, 허만석 현감 저치제 축성
허만석 현감을 기념하여 지정된 도로명이 중봉리 다리 앞에 있다.
세종 9년 저치제를 쌓은 조치원 현감을 기념하여 지정된 도로명이 중봉리 다리 앞에 있다.

조천은 전의면에서 물길을 모아 전동면을 가로지르다가 조치원과 청주의 행정적 경계선을 이루며 흘러간다. 상류에 있는 전의와 전동은 일정 산들이 많아 구비구비 산들 사이를 흐르고, 조치원은 미호천과 합류하는 낮은 구릉을 이루면서 넓은 충적 평원을 이루고 있다.

지형의 특성은 사람들이 처음으로 공동체를 이뤘던 시기, 경제적인 모습도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전의와 조치원의 지명에 관련된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욱 분명해진다.

전의 지명이 된 전씨와 이씨는 누구일까?

전의 지명은 시대별로 5번이나 바뀌었다. 구지, 금지, 전성, 전기, 전의 순인데 전동면과 소정면이 예전에는 한 고을이었다. 현재의 지명은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전의현이 되어 오늘날까지 천 년 이상 불리어 오고 있다.

계유명전씨아피타불비상
계유명전씨아피타불비상

전의 지명의 유래는 오래전부터 살아왔던 백제 건국 공신인 전섭(全聶-전성 전씨)의 성과 왕건을 도와 공을 세운 이도(李棹-전의 이씨)의 성을 결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전섭(全聶-전성 전씨)은 온조가 백제를 세울 때 10명 공신 중의 한 명이고, 관직을 물러난 뒤에는 세종시 소정면과 인접한 충남 천안시 풍세면에 살았는데 전의면에 있는 전씨들이 그의 후손이다.

전의의 전씨들이 전섭의 후손임은 국보 106호인 계유명전씨아미타삼존석상에서도 알 수 있다.

이것은 계유년에 전씨들이 역대 왕과 부모 7세를 기리기 위해서 사후의 세계를 관장하시는 부처님에게 불공을 드린다는 내용의 석비상이다.

백제가 멸망한 것을 아쉬워하는 백제의 유민들 중 백제의 개국공신인 전섭의 후손들인 전씨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전의 이씨의 시조는 이도라는 분이다. 왕건이 남하 할 때 전의 성주로 나주 전투, 이천과 금강의 도하를 도운 인물이다. 이후 고려개국 2등 공신으로 책봉되고 전산후가 된다. 전산은 전의의 옛 이름이다.

이도가 왕건과 같이 한 전투를 보면 특이하게 육지에서의 싸움보다 강이나 바다와 관련된 전투가 많다.

이도 조상의 묘도 금강 변에 있는 것을 보면 이도는 전의에 근거지를 둔 금강 곰나루를 근거로 한 세력 또는 서해 아산만을 근거로 한 해상세력으로 추정할 수 있다.

더 나아가 곰나루 전설에 있는 곰은 전의 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닌가 추론도 해본다. 충남 아산시 외암 마을은 예안 이씨 집성촌인데 전의 이씨에서 갈라져 나온 분파이기에 외암 마을의 원 뿌리는 전의라고도 볼 수 있다.

조치원은 세종대왕의 애민정신이 만든 신도시였다.

조치원 지명의 유래는 얼마 전까지 새내를 음역한 조천이 변했다는 설과, 최치원 관련설로 이야기되었다. 주로 조치원 성립 시기는 일본의 침략 이후의 신도시 건설 과정과 연결되는 것으로 설명되었었다.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 잇는 천안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 그리고 전섭의 단
천안시 풍세면 삼태리에 잇는 천안전씨 시조 단소 및 재실 그리고 전섭의 단

그런데 지난 2012년 발간 된 ‘조치원 읍지’ 발간 이후부터는 세종대왕 시절 허만석 현감의 저치제(苧峙堤) 축성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화 되었다. 동국여지승람’ 연기현 편에는 허만석(세종 9년, 연기현감)이 연기현 북쪽 15리 청주 경계의 하천을 막고 제방을 쌓았다.

이때 청주사람 1,100여 명이 항의하였으나 이를 물리치고 마침내 1,000경이 넘는 논에 물을 댈 수 있는 큰 제방을 축조함으로써 백성의 칭송을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그 제방이 현재 평리 일원 조천 제방으로 비정 되며, 조치원과 관련 있는 최초의 기록이다.

허만석 현감은 왜 저치제를 축성했을까? 그 이유는 조선조의 시대 상황을 보면 도움이 된다. 조선은 역성 혁명으로 정권을 잡고, 토지개혁을 통해 민심을 얻어 탄생한 왕조이다.

고려 말 정권을 잡은 이성계 군부와 정도전 같은 신진 사대부들이 개경 한복판에서 기존의 토지 문서를 물태우면서, 일반 백성들도 자기 땅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

토지개혁을 통해 일반 백성들도 꿈이 생긴 것이다. 더 많은 농토는 더 많은 자영농을 만드는 토대가 된다. 유교가 말하는 왕도 정치의 실현인 셈이다. 세종대왕도 이런 시대적 배경에서 즉위하였다.

조치원고등학교 인근 다리에서 본 조천의 모습
조치원고등학교 인근 다리에서 본 조천의 모습

세종대왕의 사명 중 하나는 기존 농지에 합당한 세금의 기준을 세우는 일(공법)과 새로운 토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래야 백성들은 좀 더 나은 윤택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농지는 하천 하류의 범람지가 그 대상지가 된다.

허만석 현감은 세종 9년에 연기에 파견되었다. 파견 당시 이런 시대 사명을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고, 부임하여서도 이를 실천하려 노력하였을 것이다. 그런 결과로 나타난 것이 연기와 청주의 경계에 있는 곳에 새로운 농지를 만드는 저치제 공사다.

농지를 만드는 과정 중에 부산물로 생긴 것이 고수부지 같은 곳이 있었고, 그 곳의 지명이 조치원이 되었다. 이런 지명은 조치원 역이 생기면서 청주 일부와 연기 일부가 합쳐지면서 조치원 행정명이 된 것이다.

결과적으로 세종대왕이 직접적으로 조치원을 만든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애민 정신의 결과로 지금의 조치원 토대가 만들어졌고, 그 위에 지금의 조치원이 생긴 것이다. 하여 조치원은 세종대왕이 애민정신으로 만든 신도시라고 하여도 그르지 않다.

조치원 사람들이 빨래판으로 사용했던 국보 108호 계유명 삼존천불비상(공주박물관에 전시 중)
조치원 사람들이 빨래판으로 사용했던 국보 108호 계유명 삼존천불비상(공주박물관에 전시 중)

불비상은 돌을 비석처럼 다듬어 앞면이나 네 면에 부처를 조각하고, 발원문을 새겨 놓은 불상을 말한다.

중국의 경우 북위시대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하여 수, 당에 이르기까지 널리 되었으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세종시 일대에서 발견되는 것이 거의 독보적이다. 불비상에는 만든 시기와 연유가 기록되어 있어 불교 조각의 편년 기준이 될 뿐 아니라 당시의 시대적 배경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연기 불비상들이 발견되는 과정들이 재미있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처음 발단은 지역 출신 이재욱 선생이 대학교 시설 방학 숙제로 비암사에 있는 불비상을 탁본하여 교수님에게 제출한 것에서 출발한다.

당시 황 교수님은 이를 보고 특이하다 생각하여 탁본을 조사하여보니 삼국시대 내용임을 알게 되었고 지역에 내려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불비상을 조사하였다 한다. 당시 서창리 고려대학교 근처 서광사라는 암자에 가보니 시대가 비슷한 불비상이 있어 발견 유래를 물어보니 조천 인근 빨래터에서 가져왔다고 하였다.

전의 이씨의 한 분판인 예안 이씨 집성촌인 외암마을 홈페지에 나와 있는 마을 전경
전의 이씨의 한 분판인 예안 이씨 집성촌인 외암마을 홈페지에 나와 있는 마을 전경

부처님이 빨래판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을 보고 맘이 아파 서광사 책임자인 보살님이 아들을 시켜 이곳으로 모셨다는 것이다. 이 국보가 빨래판으로 쓰인 장소는 추정컨대 오금소라는 곳 인근이 아닐까 한다.

원래 서면 쌍유리 인근에 본절이 있었고, 이유는 잘 모르지만 패쇄되는 과정에서 일부는 비암사로 가고, 일부는 흩어지게 되었는데 조치원 인근 사찰에도 있다가 수리하는 과정에 국보 108호 계유명 삼존천불비상은 건물의 폐기물과 함께 하천에 버려진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국보를 국보로 볼 수 없었던 우리 선조들의 슬픈 단면이다.

   
 

임비호, 조치원 출생, 국제뇌교육과학대학원 지구경영학 박사과정, 세종 YMCA시민환경분과위원장(현), (전)세종생태도시시민협의회 집행위원장, (전)세종시 환경정책위원, (전)금강청 금강수계자문위원, 푸른세종21실천협의회 사무처장(전), 연기사랑청년회장(전),이메일 : bibo1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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