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무락, 싱싱장터에서 ‘싱싱한 제2막 인생' 꿈꾸다
최무락, 싱싱장터에서 ‘싱싱한 제2막 인생' 꿈꾸다
  • 황우진 기자
  • 승인 2021.02.07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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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로컬푸드 대표 최무락...전국 매출 1위 1000억 달성
'싱싱장터'로 세종대표 브랜드 만들고 퇴직, 최고 보람된 일
공직에서는 남녀노소 힐링의 명소 ‘오봉산 맨발 등산길’ 만들어
최무락 세종로컬푸드(주) 대표가 '세종의소리'를 방문해 자신의 인생여정과 싱싱장터 이야기를 흥미있게 들려주고 있다 

인생 70 고래희(古來稀)라 했던가.

현대사회에 들어 일흔은 그리 많은 나이로 느껴지지 않지만 그래도 일흔이 넘은 나이에 공직을 맡아 일하는 것은 그리 흔한 일은 아니다.

‘싱싱장터’ 하면 세종 사람뿐 아니라 이제 우리나라 로컬푸드의 모델로 여겨지고 있는데, 그 기초를 만든 사람이 바로 칠순이 넘은 최무락(72) 대표이다.

지난 1일 오전 11시 싱싱장터를 방문해 세종시 로컬푸드 현장을 둘러보고 최 대표를 만나 주옥 같은 인생 이야기를 들으며 싱싱장터를 취재를 했다.

“내 인생의 가장 보람된 일이 두 가지 있는데, 한가지는 오봉산 등산길을 만든 일이고 또 하나는 ‘싱싱장터 로컬푸드’라네. 세종시 기초를 닦고 시민들이 맘 놓고 사먹는 먹거리 장터를 만들었으니 이만하면 성공 아닌가.”(미소)

오랫동안 기자를 잘 알고 지내는 최 대표는 밝은 표정 친근한 어조로 이야기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천연기념물 ‘봉산동 향나무’는 고향 어머니의 미소를 띄우고...

그의 고향은 옛 연기면 봉산리. 함께 찾아간 고향 마을에는 천연기념물 ‘봉산동 향나무’가 있었다. 수령 450년을 넘긴 향나무는 웅장한 용의 자태로 그의 귀향을 반기듯 인자한 어머니 같은 미소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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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락 대표의 종갓집 향나무가 귀향을 반기며 자애로운 미소를 띠고 있다

“여기가 내가 태어난 동네이고 종갓집 향나무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네. 중시조님이 심은 향나무인데 효심을 키워주고 마을을 건강하게 지켜주고 계시지.”

향나무의 수령과 위용이 넘치는 자태는 가문과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신으로 믿어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최 대표의 인생 성공은 그리 쉽게 오지 않았다. 모진 인생길을 억센 뚝심 하나로 살아낸 삶이었기에 그의 성공은 더욱더 값지게 느껴진다.

“내가 공직에 첫발을 내디딘 것은 1969년 7월인데, 10남매 장남으로 태어나 스무 살에 연기군 읍사무소에 들어갔고 동생들과 가족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네. 박봉의 공무원을 하면서 동생들과 자식들 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소도 키우고 돼지도 키웠어. 아침저녁으로 똥치우는 일도 직접 했는데 소값 파동으로 동생들과 어려움을 많이 겪었어.”

그의 성실함과 우직함은 공직에서도 빛을 발해, 1998년 연기군 조치원읍장으로 발령을 받았다.

“읍장을 하면서 지금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봉산에 등산로를 개설해서 오봉산이 전국에 알려지고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고 힐링하는 산책공원이 된 것이야. 오봉산 자락은 강화최씨 문중 땅이 많아 내가 아니면 개발 할 수 없었어. 내가 강화최씨라 사용 승락을 받아 맨발등산길을 만들었지.”

오봉산 등산로의 시작은 20여 년 전 최씨가 조치원 읍장을 하던 시절 읍민 단합대회를 개최하면서 시작됐다. 예산 부족과 마을 이장단의 반대로 읍민 체육대회가 무산되고 대신에 4,000여 읍민이 참여한 오봉산 등반대회를 개최하면서 자연스럽게 등산로가 됐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 후 오봉산 등산로는 전국에 알려져 남녀노소 누구라도 부담 없이 찾아오는 세종시의 유명한 등산로 겸 산책로가 되었다.

오봉산 입구에는 맨발 남장군, 여장군이 있고 최 대표가 직접 구상한 오봉답 안에는 100년 후 열어서 확인할 수 있는 타임캡슐 물품 358점이 들어 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공직의 길은 그런대로 순탄해 신행정수도 사업소장을 거쳐 2007년 7월 1일자로 연기군 부군수에 올랐다.

“신행정수도지원 사업소장 발령 이틀만에 위헌결정이 내려졌어. 사업소가 폐쇄되고 주민들과 상경집회도 벌이고 1년은 참 어수선했는데 다시 1년 후 행정중심복합도시 지원사업소 소장으로 1년 6개월을 근무하고 연기군으로 복귀해 부군수 되었어.”

최 대표는 시간표를 되돌려 사업소 소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주민들의 거센 항의와 반발, 이춘희 세종시장과의 인연’을 회상했다.

그의 인생은 기념비적 성공도 있었으나 계속해서 성공만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2007년 당시 최씨는 이기봉 전 연기군수의 선거법 위반 낙마로 군수 권한대행을 잠시 맡다가 연기군수 출마를 위해 38년간 몸담은 공직을 마감하고 출사표를 던졌다. 당시 충청권은 한나라당, 민주당, 지역 정당인 자유선진당이 난립하여 춘추전국시대를 방불케 하는 혼전 상태의 정치 지형을 형성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모든 게 운인 것 같아... 일장춘몽이지. 군수 출마가 잘 나가다가 한나라당이니 선진당이니... 또 부정행위가 나타나면서 낙선으로 끝나버렸어.”

최 대표는 기자와 십수 년 전 기억의 파편을 맞춰 보면서 ‘싱싱장터 이야기’로 돌아왔다.

‘싱싱장터’. 이제는 세종시민들에게 절대적 사랑을 받는 먹거리 장터로 전통시장처럼 푸근하고 친근한 이미지가 그려지지만 그리 오래된 일은 아니다.

우직함과 순수함이 ‘싱싱장터 1000억 매출’로 이어지다.

“처음 도담점이 개장할 때만 해도 직원들이 보수가 적어 그만두는 사람이 많았어. 농민들은 품질관리를 할 줄 몰랐고...” 계속해서 교육을 시키고 농민들이 자발적으로 열심히 참여해 품목도 많이 늘어났고 그 후 아름점을 개장했다. 이제 2022년과 23년에는 새롬동과 소담동에 3, 4호점을 개장할 예정이라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2015년 이춘희 시장의 로컬푸드 공약사업으로 시작된 싱싱장터는 첫마을 난전장터에서 출발했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출범 5년 만에 누적매출 1000억원을 달성하는 성과를 내었고, 회원이 첫해보다 7배 이상 증가해 4만7,000여 명에 이른다.

“소비하는 시민들에게 싱싱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농민들은 소규모 농사로도 많은 수익을 올리는데 ‘누이 좋고 매부 좋은’게 우리 싱싱장터야.”

'내 인생에서 두 번째로 큰 보람을 느끼는 일'이라고 말하는 것이 잘 이해되는 대목이었다.

세종시 로컬푸드는 처음에는 ‘완주로컬푸드’를 벤치마킹하면서 시작했지만 이제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제일로 매출액 1위의 로컬푸드 매장으로 성장했다. 또한 전국 각지에서 벤치마킹 오는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동안 전국 지자체와 농협, 농민 등 싱싱장터를 방문한 사람이 7000여 명이 넘는다는 것이 최 대표의 말이다.

최무락 대표가 싱싱장터 도담동 매장을 찾은 손님들과 지인들을 맞이해 친근한 인사를 나누고 있다.

인터뷰 말미에 “2월 말 퇴직하면 농사를 지어 싱싱장터에 농산물을 내겠다”는 희망찬 계획을 털어 놓았다.

참으로 중요한 함의가 있는 말이었다. 최 대표는 지난 4년간 ‘세종시 로컬푸드 아버지’라고 할 만큼 싱싱장터를 성공시키고 이제는 인생 제2막의 또 다른 무대를 준비하고 있었다.

어떤 농사를 지을 계획인지 물었다. ‘두릅’이라고 대답하며 가볍게 미소 짓는 그의 얼굴에서 ‘古來稀’라는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오봉산 등산로를 만든 사람. 세종시 성공의 기초를 놓은 사람. 로컬푸드를 성공시켜 시민들에게 싱싱한 먹거리를 제공한 사람.

이제 떠나야 하는 인생 스케줄에 아쉬운 마음을 더하며 두릅 농장에서 또 다른 ‘성공신화’를 써 내려가기를 세종시민과 함께 부푼 마음으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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