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 깊어집니다. 무슨 색깔로 그려야 할까요"
"가을이 깊어집니다. 무슨 색깔로 그려야 할까요"
  • 최민호
  • 승인 2020.10.29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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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가을 소고(小考)..."올 가을에는 무엇을 생각해볼까"

 

가을이 깊어갑니다.

흔히들 가을은 천고마비의 계절이니 등화가친의 계절이니 하면서 수확과 휴식을 뜻하는 계절로 여기고 있습니다.

봄 여름의 땀과 수고를 거두는 황금들녘에 서서, 무르익은 오곡백과를 광주리에 가득 담는 수확의 기쁨을 맛보면서, 우리는 비로소 가을의 풍요로움에 만족감을 느낍니다.

한자로 가을을 뜻하는 추(秋)자는 벼(禾)가 불(火)옆에 있는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뜨거운 햇빛에 익은 벼를 거둔다는 의미로 새기면 좋지 않을까요?

벼 메뚜기를 구워먹는다고 해석하는 분도 있습니다만, 어쨌든 수확과 풍요를 뜻하는 의미에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가을에는 맑고 파란 하늘이 더 높아진 것 같고 풍성한 먹이에 말도 살찌는 계절, 한해의 노고를 씻고 등잔불에 책을 가까이 하며 영혼의 양식도 채우는 계절이 또 가을인가 봅니다.

붓이 있어 가을을 그린다면 무슨 색깔로 그려야 좋을까요?

꽃보다 더 화사하게 붉게 물든 나무를 보면, 가을은 울긋불긋한 단풍색으로 우리의 망막에 다가옵니다.

가을은 봄보다도 더 붉고 화려한 색깔로 보입니다만, 동양의 우리 조상들은 가을을 백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백색이라면 겨울의 하얀 눈 색깔이 아닐까요? 우리 조상들은 가을은 백색, 겨울은 검은색으로 표현했습니다.

가을은 한해가 저무는 계절입니다. 마치 서쪽으로 해가 질 때 붉은 황혼이 세상을 물들이듯, 가을은 단풍으로 온 산을 물들이면서 한해를 마무리하는 계절인 것입니다. 백색은 서쪽을 뜻합니다.

나이가 들면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듯이 흰색은 거두어들이고 저물어가는 색깔입니다.

그래서 가을이면 단풍놀이에 마음이 들뜨기도 하지만, 고독과 쓸쓸함과 외로움이 가슴을 적시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춘여사 추사비(春女思 秋士悲).

‘봄의 여인은 사랑에 설레지만, 가을의 남자는 슬픔에 젖는다.’

또 저무는 한해를 보면서 이루어야 할 일을 못 이루고 속절없이 세월을 보내는 남자의 비감한 심정을 나타내는 구절입니다.

가을 여행이나 단풍놀이에 정신이 없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의 풍요로운 결실과 견주어 볼 때 올 한해 무엇을 이루었나 수확의 성적표를 받아들고는 보잘 것 없는 한 해의 성과에 가슴 쓸쓸해지는 회한의 계절이기도 합니다.

고3학생들에게는 이제 수능이 닥쳐오는 계절이기도 합니다만, 한해 농사의 수확을 헤아리면서, 가버린 연인의 뒷모습을 그리며 남몰래 허무감에 빠지는 때가 이 계절이기도 한 것입니다.

우리말에 철부지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무지 세상물정을 모르고 천방지축으로 자기만을 생각하는 바보같은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철부지라는 말은 철을 모른다는 뜻입니다. 지금이 어느 계절인 줄을 모르고 여름에 겨울옷을 입거나, 추운 겨울에 밖에 돌아다니는 사람을 철없는 사람이라고 했겠죠.

자신이 처해 있는 환경이나 처지를 헤아리지 못하고 한 때에 불과한 지금의 시절이 한없이 계속될 것인 양, 철을 분간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철모르는 철부지라고 할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금년 한 해도 그렇게 흘러 어느새 서산에 해가 걸리는 가을의 저녁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올 가을에는 무엇을 생각해 볼까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이라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점의 도서판매량은 1년 중 가장 낮은 시기가 가을이라고 합니다. 모두들 여행과 외출에 정신없이 바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상학적인 기간으로도 4계절 중 가장 짧은 계절이라는 가을.

곧 검은 겨울이 닥쳐 올 이 짧은 백색의 가을에는 무엇을 할까요?

가을갈이(秋耕)이란 말이 있습니다. 다음 해의 농사에 대비하여 가을에 논밭을 미리 갈아 두는 일을 말합니다.

이 가을에 지나간 여름을 생각하면서 추운 겨울이 지나면 다가올 새롭게 시작되는 새로운 한 해를 상상하는 것은 너무 이른 생각일까요?

고단했던 지난 여름의 노고를 위로하고, 거두어들인 풍요를 만끽하면서도, 왠지 쓸쓸하고 허무해지는 이 가을에, 우리는 조용히 뒤를 되돌아보면서 앞을 향해 나갈 스스로를 추슬러보아야 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얀 가을이 무르익어 갑니다.

아이스크림!(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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