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적인 구황작물, 흉풍작에 따라 기아문제 발생-해결 반복
하지 감자라면 하지철에 나오는 감자다. 요즘이다.
감자는 예전부터 구황작물이라고 했다. 흉년에 배고픔을 구하는 작물이라는 뜻이다.
예전에 6월이면 이 땅의 농민들은 생명을 걸며 가슴 졸이며 기다리던 것이 있었다. 식량이 떨어져 굶주리며 보리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시기를 보릿고개라고 하였는데 보리마저 떨어지면 목을 매고 기다리던 그 다음 작물이었다. 하지 감자였다.
감자를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라고 하는 이유는 짧은 생육기간 때문이다. 감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 쌀농사가 어려운 강원도에서도 많이 심었다. 강원도를 감자바위라고 하는 연유이기도 하다.
감자는 3개월이면 수확이 된다. 4월에 심어 6월 중순이면 먹을 수 있고, 영양분도 풍부하다. 감자를 ‘땅에서 나는 사과’라고도 하는데 그만큼 비타민 B1과 C가 풍부하고 단백질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그러니 구황식품으로서 감자는 최고의 식량원이었던 것이다.
흔히들 구황작물로서 고구마, 옥수수 같은 것도 재배하고 있지만, 고구마는 기온이 따뜻한 남쪽 지방에서 잘 자라고, 옥수수는 지력을 많이 소모시킬 뿐만 아니라, 옥수수만 먹으면 ‘펠라그라’ 라는 병에 걸리기도 한다. 어느 땅에서나 기온에 관계없이 잘 자라는 작물은 역시 감자였다.
유럽에서는 감자가 주식으로 대접받는 나라도 많다.
몇 년 전에 러시아에서 기차여행을 한 적이 있었는데 15시간 정도 달리는 마치 2차대전때 영화 속으로 돌아간 듯한 기차였다. 승객들도 허름한 서민층들이었다. 끼니 때가 되자 러시아 사람들은 무엇으로 식사를 하나 궁금했는데 도시락이라고 보이는 병에서 감자를 몇 알씩 꺼내는 것이었다.
그들의 단촐한 식사에도 놀랐지만, 감자를 주식으로 식사를 하는 것에도 약간 놀랐었다. 알고 보니 제 2차 대전중 구 소련의 레닌그라드가 독일에 2년 6개월 이상 포위되었을 때 소련 국민들이 연명한 것이 감자였다고 한다. 그 후 감자는 러시아의 제2의 주식이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도 예전 빈곤했을 때 하지감자로 끼니를 때우는 것이 다반사였다.
아마도 감자가 없었더라면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온 인류가 기근에 더 시달렸을지 모를 터였다.
헨리 홉하우스(Henry Hobhouse)라는 사람은 ‘역사를 바꾼 씨앗 5가지’라는 책을 썼는데 그 중 하나의 씨앗이 감자였다. 감자로 인해 인류의 역사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감자는 유럽에 처음 전래되었을 때, ‘악마의 식물’이라는 오명을 가지고 있었다. 감자는 1600년대 황금을 찾던 스페인의 피사로가 남미의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자라는 것을 보고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었다.
처음 감자를 본 유럽 사람들은 생긴 것도 못생겼거니와 음습한 땅속에서 줄기에 매달려 나오는 모습이 죽은 시체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감자를 먹으면 나병에 걸린다는 둥, 죽어서 지옥에 간다는 둥 하면서 ‘악마의 식물’로 여겨 돼지에게나 사료로 주었다고 한다.
그러다 기근이 닥치거나 흉년이 되면 감자를 먹을 수 밖에 없었는데, 그때 감자는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슬픈 음식이었던 것이다.
전쟁이라도 나면 모든 작물이 불에 타 피해를 입는데 감자는 땅속에서 피해를 피할 수 있었으니, 전시 때의 감자는 바로 구세주였다.
감자가 일반인에게 확산된 것은 두 인물에게 힘입은 바 컸다고 한다.
프랑스의 감자 전도사라고 불리는 파르망티에(Antoine-Augustin Parmentier)와 프로이센의 유명한 프리드리히 대왕(Friedrich der Große)2세였다.
이 두 사람은 감자의 진가를 알아보았다.
파르망티에는 프랑스의 농업학자였는데 프로이센과 전쟁을 할 때 감옥에 갇혀 1년 동안 감자만을 먹었는데 감옥에서 건강하게 살아나온 파르망티에는 그 후 감자 전도사가 되었다.
각종 감자요리를 개발하여 귀족들에게 선보였는데, 프랑스 감자 요리에 파르망티에라는 이름이 많이 붙어 있는 것은 이런 연유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2세는 감자의 진가를 알아보았지만 감자를 천대하는 백성들을 설득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감자를 귀족들만 먹는 음식이라고 짐짓 홍보하고 일반농민들은 감자를 재배하지 못하도록 선포하고는 낮에는 밭에 경비를 세웠다. 그러자 일반농민들이 몰래 감자를 훔쳐가 먹었고, 이를 눈감아 주면서 감자를 보급시켰다고 한다.
독일요리에 감자가 많이 나오고, 프리드리히 대왕을 ‘감자대왕’이라 부르는 이유이다. ‘감자대왕’의 묘에는 요즘도 참배객들이 감자를 놓고 간다.
감자 때문에 생긴 역사의 변화 중 하이라이트는 아일랜드이다.
1800년대 유럽으로 감자가 퍼지면서 영국의 식민지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에서는 영국인 지주들의 착취가 극심하여 아일랜드 소작인들은 곡물은 다 상납하고 자신들은 감자만을 먹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감자를 먹으면서 기아문제가 해결되니 오히려 인구가 늘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유럽의 18, 19세기 폭발적인 인구 증가는 감자의 재배 확산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다.
맬더스(Thomas Robert Malthus)의 인구론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아일랜드 인들의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농산물은 산술급수적으로 느는 것이니 곧 식량부족 사태에 직면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다 별안간 감자의 잎마름병이 돌기 시작했다. 삽시간에 퍼진 감자역병 때문에 아일랜드 주민은 굶어 죽기 시작했다. 인구 800만중에 100만명이 굶어 죽었다. 1845에서의 5년 정도의 일이었다. 이때의 기근은 19세기 이후 최악이었다.
견디다 못한 아일랜드인들이 미국과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 시작했다. 이주민들은 그렇지 않아도 허약해져 있던 터라 병에 걸려 항해 중에 또 수많은 사람이 사망하게 된다.
이 시기의 이민선은 ‘떠다니는 관’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캐나다 행 배에 탔던 약 10만 명의 이주민 중에 1만 6000여명이 사망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기근이 워낙 심하니, 계속 이주를 할 수 밖에 없었고, 결과적으로 아일랜드는 1910년경 인구가 800만에서 400만으로 반으로 줄게 된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인구가 늘었고, 미국만 해도 현재 3400여만 명의 아일랜드계 미국인들이 있다고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었던 존 F. 케네디와 포드 자동차를 발명한 헨리 포드가 기근 때문에 아일랜드에서 이주한 사람들의 직계 후손이다. 그리고 미국 대통령 중 22명이 아일랜드계라고 알려져 있다. 버락 오바마도 모계쪽이 아일랜드고 부계는 케냐계다.
세계 최고최대의 강대국 미국의 오늘날의 역사에 감자가 준 영향을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우리나라는 1824년경 중국에서부터 감자가 전파되었다고 한다. 당시 중국 사람이 강원도에서 인삼을 탐내다가 감자를 소개했다고 한다.
감자는 인류의 역사에서 이렇게 빈곤과 기근의 스토리를 안고 자라는 작물이었다. 빈곤과 기근이라 하지만, 기근에는 자연재해에 의한 ‘자연기근’이 있고, 인재(人災)라 할 수 있는 ‘인공기근’도 있다.
인공기근이란 인간들의 욕심과 잘못된 신념, 그리고 정책 때문에 오는 기근을 말한다. 전쟁이 일어나면 상대방 적군이 못 먹도록 농작물을 다 불태운다. 전쟁 자체가 인공기근인 것이다.
지도자들이 정책을 잘못 펴 야기되는 인공기근도 허다하다.
아일랜드의 대기근을 말할 때, 기근의 직접적인 원인은 감자 역병 때문이라 하지만, 그 너머 배경에는 영국인들이 아일랜드 인들에 대한 극심한 수탈이 있었다. 지배층의 수탈이 너무 심해 아일랜드 사람들이 살기 위해 먹을 수 있는 것이란 감자밖에 없었고, 감자만을 식량으로 의존하다 감자역병으로 흉작이 되니 대량기근으로 이어진 것이다.
당시 영국의 곡물법이 주범이었다. 당시의 지주 계층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고자 외국산 밀의 수입을 금지하는 법을 만들어 기근이 와서 곡물이 필요한데도 값싼 밀의 수입이 거부되니, 서민들은 식량이 없어 굶어 죽게 된 것이었다.
아일랜드 대기근이 감자역병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이 많지만, 그 배경에는 당시 지배층의 잘못된 신념, 잘못된 정치와 정책에 의해 가난한 백성들이 기근으로 죽어 간 것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 후 아일랜드는 영국과 독립전쟁을 벌이고, 결국 아일랜드는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리되고 만다. 지금도 아일랜드와 영국과 여러 가지 관계는 매우 복잡하다.
감자로 인한 역사의 은원이 아직까지도 지속된다고 볼 수 있을까.
빈곤과 기근의 구황작물 감자.
감자는 이렇게 슬프고도 고마운 스토리를 가지고 있지만, 감자가 주는 메시지는 울림이 있다.
사마천이 쓴 사기(史記)에 이런 말이 있다.
‘民以食爲天(민이식위천)’.
즉, ‘백성에게는 밥이 하늘’이라는 말이다.
정치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인가.
위정자의 어떤 명분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백성들이 밥을 굶지 않게 하는 것이고, 백성을 굶기는 나라는 하늘이 저버린다는 뜻이 숨어있다.
그런 지도자는 몰락의 길로 빠져든다는 것이다. 백성을 굶기는 위정자나 정부가 무슨 존립의 이유와 정통성이 있겠는가.
인류의 역사를 볼 때, 경제를 이길 수 있는 정치는 없었다. 또한 생명을 뛰어넘는 이념도 없었다.
지금 코로나 19로 인해 국민경제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
흔히 정치인들은 ‘백성이 하늘’이라고 외친다.
그들에게는 백성이 하늘일지 모르지만, 정작 백성들이 하늘로 여기는 것은 밥, 즉 경제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백성이 하늘이라면,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
최민호의 아이스크림! (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