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민호칼럼] 오늘 배신하는 자, 내일은 배신당한다
[최민호칼럼] 오늘 배신하는 자, 내일은 배신당한다
  • 최민호
  • 승인 2020.05.22 08: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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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타키투스의 함정...배신과 죽임이 반복된 '황소의 난'
정부, 회사, 개인 신뢰 얻는 노력 필요...공신력잃으면 '거짓'으로 받아들여
로마의 최고지도자인 집정관으로 뛰어난 역사가였던 타키투스는 "시민들에게 배신감을 준 황제는 반드시 시민들로부터 배신당한다"고 말했다.

인간의 역사를 배신의 역사로 본다면 틀린 관점일까?

배신으로 인해 역사는 창조되었다고 하는 역설을 가끔 생각해본다.

예수가 가롯 유다에게 배신당하지 않았다면 십자가의 처형도, 나아가 기독교라는 종교도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이성계가 고려를 배신하지 않았다면 조선이라는 나라가 생길 리 없고, 이완용이 조선을 배신하지 않았다면 치욕스런 일제도 없었을지 모르지 않는가.

배신의 결과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배신으로 인해 변화와 진보라는 또 다른 세상이 태어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이 무엇을 초래하든 ‘배신은 배신을 낳는다’는 철칙에는 달라지는 것이 없을 것 같다.

법정스님은 ‘인연이라는 것의 가장 큰 피해는 진실 없는 자에게 진실을 쏟아부은 댓가’라고 하였다.

어느 인연 속에서 내가 남을 배신하였기 때문에 오늘 날 내가 배신당하고 사는지도 모를 일이리라. 배신당한 아픔을 남에게 탓할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중국의 당나라가 망국의 증상을 나타내고 질서가 형편없이 무너지자,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 중 큰 규모의 ‘황소의 난’이 있었는데 황소에게는 신임하는 가까운 부장으로 주 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자기를 키워준 황소를 배신하고 당나라에 투항하여 절도사라는 벼슬을 얻어 오히려 황소를 파멸시키고 말았다.

당나라의 충신으로 변신한 주 온은 주전충이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당나라에 오로지 충성해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는 당나라의 병권을 쥐고 국정을 농단하다 급기야 당나라를 배신하고 당나라의 황제를 죽이고 ‘후량국’이라는 나라를 세운다.

후량국의 황제가 된 주 온은 온갖 호사와 포악을 자행하다, 5년이 지나지 않아 자기 아들 주우규의 칼을 맞고 죽고 만다. 아들 또한 아버지를 배신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를 죽이고 황제가 된 아들은 1년이 지나지 않아 동생에게 피살되고 만다.

형을 죽이고 천하를 차지한 주우정은 얼마 지나지 않아 ‘후당’이라는 나라를 세운 이존욱이라는 사람에게 죽임을 당한다. 결국 후량국은 망하고 말았다. 실로 숨가쁜 배신과 배신의 연속이었다.

인간들은 이렇게 배신을 거듭하며 핏빛으로 물들은 역사라는 베를 짜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 배신한 자 내일 배신당한다.’

남을 배신하고 자신은 배신당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면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일 것이다.

타키투스는 로마의 최고지도자인 집정관이자 문학가이자 뛰어난 역사가였다. 타키투스는 그가 저술한 『타키투스의 역사』에서

“황제가 한 번 사람들의 원한의 대상이 되면 그가 하는 좋은 일과 나쁜 일 모두 시민의 증오를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고 썼다.

시민들에게 배신감을 준 황제는 반드시 시민들에게 배신당한다는 말이다.

이는 훗날 정부가 신뢰를 잃으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는 하나의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 자리를 잡았다.

‘타키투스의 함정(Tacitus Trap)’이라고 말한다.

정부 혹은 한 조직이 공신력을 잃으면 진실을 말하든 거짓을 말하든, 또는 선정을 하든 폭정을 하든 시민들은 모두 거짓과 폭정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렸을 적부터 잘 아는 이솝우화의 늑대와 양치기 소년에서 소년이 결국 늑대에게 잡아먹힌 것은 그가 거듭된 거짓말로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져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는 백성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무진 애를 써야 한다. 비단 정부만이겠는가. 회사도 공공단체도 개인도 모두 마찬가지라고 본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사목위신(徙木爲信)'이라는 말이 있다.

'나무를 옮겨 신뢰를 쌓는다'라는 뜻이다.

중국 진(秦)나라의 '상앙'이라는 대신이 새로운 법을 통해 국가개혁을 꾀하고자 했다. 그러나 백성들은 아무도 신법을 믿지 않아 이 법의 공포를 미루고 있었다. 백성이 신뢰해주지 않는 법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에 상앙은 수도에 있는 시장의 남문에 큰 나무 한그루를 세워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겨 놓는 자에게 황금 10근을 주겠다고 공표했다. 사람들은 이상하게 여기고 아무도 그 나무를 옮기려고 하지 않았다. 상앙은 다시 이 나무를 옮기는 사람에게 황금 50근을 주겠다고 공시했다.

이때 한 사람이 이 나무를 옮겼다. 그러자 상앙은 황금 50근을 바로 주어 속임수가 없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러나 백성들을 믿게 하기 위해서는 한 두 번의 실행으로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일관성이 있고 차별이 없어야 할 것이다. 누구는 지키고 누구는 지키지 않아도 되는 법이란 없는 법이다.

상앙이 신법을 공표한 후 진의 왕태자가 법을 어겼다. 상앙은 지위가 높은 사람들부터 지키지 않으면 법을 지킬 수는 없다라고 강하게 고수하면서 왕태자를 처벌하려 했으나, 왕태자는 임금의 후계자라 직접 형벌을 가할 수 없어서, 그의 스승인 공자건(公子虔)과 공손가(公孫賈)를 처벌하고 얼굴에 죄명을 문신하는 묵형을 가했다.

가롯유다의 배신 장면

힘이 있고, 측근이라는 이유로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법을 만들면 위정자는 곧 ‘타키투스의 함정’에 빠져들기 마련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으리라.

상앙의 이런 일관성 있는 조치로 인해 백성들이 법을 잘 지키게 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나무를 옮긴 사람에게 상을 주어 백성들이 신법을 믿고 따르게 하였다는 이 ‘사목위신’이라는 고사성어는 '사기(史記)'의 '상군열전(商君列傳)'에 유래하고 있다.

‘타키투스의 함정’과 ‘사목위신’.

배신으로 가득 찬 인간사회에 신뢰라는 것이 얼마나 중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동서양의 교훈이다.

우리는 배신의 역사, 배신의 사회, 배신의 시대에 살아왔고 또 살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아무리 배신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도 ‘오늘 배신한 자 내일 배신당한다’는 교훈을 결코 잊지는 말아야겠다.

공자가 경제와 안보와 신뢰 중 가장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가를 묻는 물음에, 가장 먼저 머릴 것이 경제요, 다음이 안보요,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것이 백성의 신뢰라고 한 것은, 백성의 신뢰만 있으면 경제도 안보도 곧 일으킬 수 있지만, 신뢰가 없으면 경제도 안보도 결국은 무너지고 만다는 경고 아니겠는가?

‘오늘 배신을 한 자 내일 배신당한다.’

이 평범한 진리를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

아이스크림!(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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