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는 자식에게 3년간 눈을 못 뗐다
어버이는 자식에게 3년간 눈을 못 뗐다
  • 최민호
  • 승인 2020.05.06 10:16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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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민호의 아이스크림] 흙수저의 어버이날...금수저 아들은 행복할까
이제는 계시지 않는 부모님께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외쳐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행복청장, 소청심사위원장, 그리고 충남부지사를 지낸 최민호 홍익대 초빙교수가 '아이스크림'이란 제목의 칼럼을 '세종의소리'에 연재를 시작한다. '아이스크림'은 최 교수가 소청심사위원장 재직 당시 대전의 인터넷신문 '디트뉴스24'에 연재했던 제목으로 영어 'I Scream', 즉 '나는 주장한다'는 중의어(重意語)다. 이제는 최 교수가 특허(?)를 가질만한 제목으로 매체는 달리하더라도 이 제목은 그대로 가지고 다니면서 글을 쓰고 있다. 앞으로 매월 두차례 정도 중후한 필체로 대중적인 소재를 가지고 '세종의소리' 독자들을 만날 예정이다. 독자들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편집자 씀> 

조선시대 유교문화에서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상을 치렀다.

시묘라 해서 부모님의 묘 옆에 여막을 짓고 살아계실 때와 마찬가지로 조석으로 음식을 드리며 봉양했다. 못 다 한 효도를 다한다는 것이었다.

옛날 선조들이 3년 시묘를 한 건 자식이 태어나서 3년 동안 부모님은 눈을 떼지 못할 만큼 애지중지로 키웠다는 데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사진 출처 : 다음 카페

3년...하지만 그 세월은 너무 긴 것 같았다. 부모님이 두 분이면 6년간 아니겠는가. 어떻게 3년간을 그렇게 산소 옆에서 지낼 수가 있을까.

어느 날 왜 3년인가를 알고 나서 마음이 숙연해졌다.

3년. 그것은 부모님이 3년간을 자식을 위해 그렇게 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자식이 태어나면 3살이 될 때까지 부모는 아이에게서 한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눈을 떼는 순간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게 3년간을 보살펴주시지 않았다면 어느 자식이 온전히 살 수 있었을까.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간 그 은혜를 기리며 보답하는 것이었다. 사실 산소에서 시묘하는 것은 부모님이 자식 키우는 노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요즘 자식들에게 3년 시묘를 하란다면 할 수 있을까? 코웃음을 치고 말 것이다.

독일 속담에 ‘아버지 한 사람은 열 아들을 보살펴도, 열 아들은 아버지 한 분을 보살피지 못 한다’라는 말이 있다.

부모는 어떤 부모도, 자식은 어떤 자식도, 다 비슷한가 보다. 내리사랑인가 보다.

5월8일은 어버이날이다. 어버이날이 되면 잊지 못할 기억이 하나 있다.

해군 해병대 사관후보생 훈련을 받을 때였다. 해군 해병 장교 훈련은 고되기로 유명하다. 석달간 훈련에 보통 몸무게가 10kg씩은 빠졌었다.

5월 어버이날이었다. 그날이 어버이날인지도 모르고 하루가 갔다. 취침점호가 끝나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들려던 참이었다. 갑자기 비상이 걸렸다. 내무반에 들어온 구대장은 구대원들을 깨우더니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면서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모두 “어머니 은혜”노래를 합창하라는 것이었다. ‘나실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하는 그 노래였다.

모두들 누워서 눈을 감고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나실제..’ 하는데 목이 콱 막히는 것이었다.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에 어찌나 눈물이 나는지 이 노래 한 소절을 못 부르고 온 중대원이 목을 놓아 흐느껴 울었다. 힘들고 고될 때 어머니라는 말 한마디가 그렇게 가슴을 먹먹하게 할 수가 없었다.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장 강하다는 해병대도 어머니라는 단어 앞에서는 모두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어버렸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충남 공주시 의당면 가산리에 있는 '시묘산', 3년 동안 자식이 이 산 속에서 시묘를 했다는 전설이 있다. 사진 출처 : 다음 카페

어머니 앞에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리고 자식 앞에 어머니보다 더 강한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어머니날’이 ‘어버이날’로 바뀐 것은 1973년이다. 그때까지는 ‘어머니 날’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버지 날’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 아버지날이 따로 있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두 분 다 일심동체 아니신가. 시대에 따라 부모의 역할은 변한다. 예전에는 엄부자친이라 하여 아버지는 엄하고 어머니는 자상한 것이 바람직한 부모님의 상이라고 한 것 같은데, 현대 사회에서는 꼭 그렇지만도 않다. 맞벌이 부부에, 아버지도 육아휴직을 하는 시대다.

가정교육이라고 하면 어머니가 1차 책임이 있고, 아버지는 밖에서 일을 하는 분이라 2차 책임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이미 과거의 일일 뿐이다.

어느 외국의 초등학교 선생님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 선생님은 자식을 대하는 세상의 어머니는 다 똑같더라고 했다. 아이들 잠 깨우고 도시락 싸주고 숙제검사하고 아이들 때문에 애달캐달 속상해 하고 늘 애태우고...세상의 엄마들은 아이 생각이 머리에 늘 가득 차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다르다는 것이었다. 엄마보다 더 자상한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없느니만 못한 아버지도 많다는 것이다. 딸 바보 아버지가 있는가 하면, 폭군 아버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세상의 엄마는 다 똑같은데, 세상의 아버지는 다 다르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어머니는 상수요, 아버지는 변수라는 것이었다. 수학에서 상수가 일정하다면 답은 변수에 따라 변하듯이, 아이들의 성장도 어머니보다 아버지에 의해 상당한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었다. 결국 아버지가 아이들 교육과 성장을 좌우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 교육은 어머니 책임이라는 전통적인 생각에 찬물을 끼얹는 말이었고, 아버지가 오히려 자식에게 중요한 영향력을 미친다는 것을 아버지들이 깨달아야 한다는 교훈이었다. 또 유명한 일화가 있다.

미국의 다섯 아들을 가진 아버지가 있었다. 그 아버지는 늘 한 아들 때문에 가슴이 먹먹했다. 다른 아들들은 잘 자라는데 오직 한아들만 어눌하고 병약하여 기를 못 펴기 때문이었다. 소아마비에 걸린 그 아들은 늘 짓눌린 지푸라기 같아 아버지를 슬프게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다섯 아들을 불러 다섯 그루의 나무를 주면서 말했다.

'앞으로 1년간 이 나무를 가장 잘 키운 아들에게 해달라는 것을 다 해 주겠다'

1년이 지났다. 아들들이 키운 나무를 검사해보니 나무들 중에 유독 눈에 띄게 튼실하고 잘 자란 나무가 있었다. 바로 가장 비실거리던 그 아들이 주인이었다.

아버지는 약속대로 그 아들에게 무엇이든 말하면 해주겠노라고 했지만, 그 아들은 무엇을 해달라고 할지조차 제대로 말을 못했다. 아버지는 그 아들에게 이렇게 나무를 잘 키우는 것을 보니 너는 앞으로 훌륭한 식물학자가 될 것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버지로부터 명분있는 성원을 받은 그 아들은 용기가 생겼다. 식물학자가 되리라고 결심한 아들은 특별히 한 것도 없는데 잘 자라준 나무가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밤이 되어 아들은 나무를 다시 찾아가 보았다. 그때 숲속에서 어른거리는 키 큰 한 어른의 모습을 발견했다. 물 조리개를 들고 아들의 나무에 물을 주는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그 아들은 훌륭한 식물학자로 성공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그는 제2차 세계대전 미국이 위기를 맞이했을 때 나라를 구하는 사람이 되었다. 대통령이 된 것이다. 바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었다. 누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을까? 아버지였다.

요즘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이 우리의 마음을 또 아프게 한다.

흙수저, 금수저라는 말이다. 부모님의 역량에 따라 자식들의 미래가 결정된다는 냉소적인 말이다. 어려운 부모님 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고생해도 미래가 없다며 젊은이들이 비관적으로 쓰는 말이 흙수저론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과 프랭크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
만해 한용운 선생과 프랭크린 루스벨트 미 대통령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이 흙수저 출신이라는 말을 들을 때만큼 가슴이 아플 때는 없을 것이다. 비겁한 겁쟁이 젊은이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진정한 위대함은 난관을 극복하고 우뚝 서는 것에 있은 것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은 암울한 일제치하에서 조선의 청년들에게 ‘너희들이야말로 조선 역사상 가장 행복한 청년’이라고 말했었다. 왜냐하면, ‘조선의 독립이라는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청년들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도전하여 이룩할 일이 있는 청년이야말로 진정으로 행복한 청년이라는 말이었다.

금수저로 태어난 청년이 진정 행복할까?

어버이 날, 우리는 부모님이 무엇을 주셔서 감사해야 할 것인가?

재산? 두뇌? 인맥? 아니면 좋은 성품? 아니다.

무엇보다도 나를 낳아주셨다는 것이고 길러주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 누구보다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이다. 자식을 위해 뼈라도 깎아 주실 분이 부모라는 분이다. 그래서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고생하신 부모님일수록, 어려운 부모님일수록 더욱 감사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오늘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이미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돌아오는 메아리가 없어도 이렇게 외치고 싶다.

“아버지, 어머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5월8일은 어버이 날이다.

아이 스크림! - I scream!

최민호 제24회 행정고시합격,한국외국어대학 졸업,연세대 행정대학원 석사,단국대 행정학 박사,일본 동경대학 석사,전)충청남도 행정부지사,행자부 소청심사위원장,행복청장,국무총리 비서실장,배재대 석좌교수,홍익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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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복 2020-05-09 16:02:02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청양인 2020-05-08 19:47:08
글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아이스크림 자주 올려주세요.

박희철 2020-05-08 09:14:38
역시 최교수님의 글은 품격이 있군요~
만해선사의 말이 인상적 이고 요즘 젊은이 들에게 꼭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육사생들은 참전을 가장 영예롭게 생각한다고 누군가한테 들었는데
이게 모두 만해선사의 가름침 이었군요
최교수님의 칼럼이 기대됩니다 ~

정재근 2020-05-08 07:11:32
흙수저라는 말이 부모님께는 큰 상처라는 것을 일깨워주셨습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