섭골, 구렁말, 안터 등 일곱마을 안고 있는 '띠재산'
섭골, 구렁말, 안터 등 일곱마을 안고 있는 '띠재산'
  • 윤철원
  • 승인 2020.04.11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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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칼럼] 조치원 신안리 띠재산과 주변마을...'결초보은' 고사 서린 그령 풀 많았던 곳
이제는 홍익대학교가 들어서 구렁말에 그령 풀이 사라졌지만 이 곳은 띠재산이 일곱마을을 거느리고 있는 곳이다.

띠재산은 조치원 신안리를 아우르는 산 이름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 산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아마도 우뚝 솟은 봉우리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올망졸망 닿아 있는 산 능선도 나지막하여 주변의 시선을 끌지 못하기 때문이리라.

그중에서 전통사찰 신광사(新光寺)를 받쳐주는 노적봉(108m)이 눈에 띠기는 하나 주봉이라고 할 수는 없다. 대체로 흙으로 이루어진 육산(肉山)이기에 산세가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인데 띠재산을 가운데 두고 빙 두른 산자락에 마을들과 홍익대학교 세종캠퍼스가 자리를 잡고 있다.

띠재산 주변에 섭골(섶골), 구렁말, 안터, 토골, 머지미, 모시터, 저재골 등 일곱 마을이 있는데 안터와 토골을 제외한 마을지명은 모두 띠재산에서 유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한자로 띠재는 모치(茅峙)나 저치(苧峙)로 표기하는데 띠 풀이 많은 언덕이라는 뜻이다. 아울러 ‘재’는 성(城)의 우리말로서 실제 이산 서편 기슭에서 백제시대 성터 흔적이 발견되었기 때문에 성의 이름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다.

조치원 지역에서는 예로부터 띠풀 즉 억새종류의 거친 풀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조천변의 지명을 살펴보면 띠풀과 연관된 지명을 다수 발견하게 되는데, 예컨대 저치리(苧峙里, 모시터), 저곡(苧谷, 모시울), 모산(茅山), 모치리(茅峙里, 머지미), 노장리(蘆長里, 갈거리) 등이 있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은 ‘띠풀’을 한자로 茅(띠풀 모)라고 써야하는데, 苧(모시 저)라고도 쓴다는 것이다.

이 고장에서 저(苧)가 들어간 지명을 ‘모시’로 해석하면 지명 이해에 상당한 애로를 겪는다. 이 지역 기후·풍토가 모시재배에 적합하지 않을 뿐더러 재배하는 곳도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苧)와 모(茅)가 모두 띠풀을 의미하는 한자로 혼용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결초보은'의 고사를 만들어냈던 그령 풀은 이제 도로변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관습을 이해하고 띠재산 주변마을 명칭을 살펴보면 저재골(苧村), 모시터(苧峙里), 머지미(茅峙里), 섭골(薪洞) 등의 지명이 띠 풀이 많은 지역특성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아챌 수 있다.

그러나 구렁말에 대해서는 띠풀과 연관 짓기가 곤란해진다. 어떤 이는 구렁이가 많아서 구렁말이라는 지명이 붙은 것 아니냐고 하지만 이곳 역시 띠풀과 연관이 있는 지명이다.

1910년대 중반 일제 육지측량부에서 제작한 ‘청주’지도를 살펴보면 조치원 구렁말에 포촌(苞村)이라는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苞(포, 그령풀)자는 풀을 뜻하는 艸(초)자와 음을 나타내는 包(포)자가 합쳐진 형성문자로 ‘그령풀’을 뜻하는 글자이다. 따라서 포촌은 그령풀이 많은 지역을 표현한 지명으로 볼 수 있다.

그령풀은 이 지역에서는 그렁풀, 질갱이풀(길을 갈 때 발목을 휘감는 다는 의미)이라고도 부른다. 그령풀은 모양에 따라 수크령, 암크령으로 나누는데 수크령풀은 마치 핫도그처럼 생겼기 때문에 관상용으로 사랑을 받기도 한다.

여하튼 구렁말은 띠풀의 일종인 그령풀이 많았던 지역으로 추측되며 그 특성에 따라 ‘그렁말’이 ‘구렁말’로 와전된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구렁말도 띠재산에서 유래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한 것이다.

그령풀은 춘추좌씨전에 나오는 고사성어 결초보은(結草報恩)이 탄생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풀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옛날 중국 진(晉)나라에 위무자라는 장군이 있었다. 그에게는 몹시 아끼는 젊은 후처가 있었는데 자식이 없었다. 위무자는 그것을 딱하게 여기고 평소 본처 소생인 아들 위과에게 말하기를 ‘네 서모(庶母)는 너무 젊으니 내가 먼저 죽으면 개가 시키라’고 하다가 막상 병이 깊어 임종을 앞두고는 ‘함께 묻어 달라’는 유언을 하였다. 그러나 위과는 ‘아버지가 정신이 맑았을 때 하시던 말씀에 진심이 있다’는 생각에 유언을 따르지 않고 젊은 서모를 친정으로 돌려보내 개가할 수 있도록 하였다.

한동안 세월이 흐른 후 진(晉)나라는 이웃 진(秦)나라와 전쟁을 하게 되어 위과가 장군으로 출전하게 되었는데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대치 중이던 적 사령관이 말을 타고 달리다가 말과 함께 넘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위과가 달려 나가 사로잡았다. 그 덕에 승전하였는데 그날 밤 꿈에 연로한 노인이 나타나 절을 하며 인사하는 것이 아닌가?

띠재산 주변 지도

위과는 이상하다는 생각에 그 연유를 물었다. 그러자 노인은 “당신이 친정으로 보내 개가를 할 수 있도록 한 여인이 내 딸이오. 나는 죽어서도 그 은혜를 잊을 수 없었는데 당신이 위기에 처한 것을 보고 지난 밤 이곳의 풀을 모두 묶어 말이 달리지 못하도록 하였소. 오늘 비로소 은혜를 갚았습니다.”하고는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나 적장을 사로잡았던 곳을 살펴보니 정말 주변 풀들이 모두 묶여 있었다는 유래를 가진 고사성어가 ‘결초보은(結草報恩)’인데 그때 묶였던 풀들이 그령풀이다.

요즘 구렁말(그렁말)에서 그령풀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홍익대학교가 입지한 이후 원룸촌으로 변하였기 때문인데 대학생들이 활기차게 오가는 모습에 마을은 한층 밝아진 분위기이다. 그령풀에서 기원한 마을 지명에 걸맞게 학생과 주민들 간에 서로 돕는 결초보은의 아름다운 이야기가 피어오르기를 기대해 본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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