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불러온 ‘역설’, 소중한 것들의 ‘소환’
코로나19가 불러온 ‘역설’, 소중한 것들의 ‘소환’
  • 이한진
  • 승인 2020.03.28 15: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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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한결초 이한진 교사 “성숙한 시민의식이 코로나를 이긴다”
한결초 이한진 교사

해마다 이맘때면 학교는 봄기운보다 싱그럽고 진한 아이들의 향기로 가득하다. 하지만 2020년은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해 3월이 다가도록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개학 연기가 거듭되면서 아이들과의 첫 만남에 대한 설렘과 긴장도 어느덧 느슨해졌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성실하게 수행하면서 내 사적 영역에서는 평소 규칙적으로 하던 저녁 운동을 중단했고, 글을 쓸 때 줄곧 찾는 집 앞 카페 방문도 당연히 포기했다. 사실 내 일상은 위기가 아니라 단지 소소한 변화에 불과하다.

이와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전 세계가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연일 감염자와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세계 경제도 휘청거리고 있다. 백신 개발이 늦어지면서 자칫 감염되면 생명을 잃은 수도 있다는 공포감이 사람들 사이에 확산되면서 세계 여러 나라가 마스크 사재기 등 다양한 사회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작게는 개인이 크게는 국제적 공조가 이루어지고 있다.

위기 상황에서 대처하는 능력은 그 사회가 가진 역량을 대변한다. 각 기관의 지원 시스템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작동하고, 시민들이 얼마나 바람직한 시민의식을 발휘하느냐가 바로 그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혼자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연대감을 가질 때 극복 가능하다. 개인은 현재의 위기 속에서 자신이 할 일은 무엇이고, 또 그것을 어떻게 실천하는 것이 가장 최선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초등 에피타이저 카페 대문

교사와 학생도 예외가 아니다. 학생은 학생으로서의 배움에 교사는 교사로서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 그런데 아직 만나지도 못한 학생들에게 교사는 무엇을 가르치란 말인가? 가르칠 게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가? 가르침과 배움은 혼자 할 수 일이 아니다.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 정서적 교감이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생각에 갇혀 있던 나는 학생들을 만날 수 없으니 휴업 기간 동안 개학 후의 수업을 더 알차게 준비하는 시간으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교과서를 톺아보며 아이들의 흥미를 높일 수 있는 방안도 탐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TV 뉴스를 접했다. 뉴스에서는 찾는 손님이 없어 문을 닫는 가게도 생기고, 학교가 휴업하면서 수확을 앞둔 농작물의 판로를 찾지 못해 어려움에 처한 농민들의 상황을 전하는 기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생계가 어려워진 상점주나 농민을 돕기 위해서 배달 앱이나 인터넷을 이용한 온라인 구매의 방법으로 상품을 구입해주는 시민들이 있다며 또 한 번 우리나라 사람들의 시민의식을 칭찬하는 이야기도 소개되었다. 나 역시 그 보도를 보며 감탄했고, 한편으로는 우리나라가 IT 강국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

그 때였다. 내 앞에 놓인 IT 교육환경은 학생들이 집에 머무르면서 배움과 쉼을 이어가고 선생님들은 학생들의 적절한 배움과 쉼의 호흡을 돕는 역할은 충분히 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때마침 세종 내의 초등학교 선생님들이 개학 추가 연기에 따라 온라인 학습 지원 카페를 운영한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자발적인 교사의 참여가 절실하다고 하여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온라인 학습 카페 학습 메뉴
온라인 학습 카페 학습 메뉴

비록 온라인 공간이지만 세종의 많은 학생들과 학부모를 만났다. 참여한 선생님들이 학년별로 팀을 이루어 하루 2차시 분량의 학습내용을 제공하였고, 학생들은 학습 후에 댓글로 학습결과물을 올리면, 교사가 피드백을 주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학부모님들도 어린 자녀의 온라인 학습이 가능하도록 챙겨주셨다.

하루 최고 20,000건의 조회를 기록할 정도로 대규모 학습의 장이 펼쳐졌다. 온라인 학습이 이렇게까지 활성화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코로나19로 빚어진 국가 위기 속에서 조금이라도 각자의 본분에 충실하려고 노력한 학생, 학부모, 교사 3주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역설적으로 코로나는 우리가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것들도 함께 불러주었다. 신뢰, 배려, 헌신 등의 가치들을 소환시켰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과 인간에 대한 사랑이 밑바탕에 있었을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온라인 학습 공간은 교사와 학생 사이의 만남과 결속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세종 온라인 학습 지원 활동에 참여한 것에 보람을 느낀다. 행복하다. 분명 우리 아이들과 선생님, 학부모님들의 해피 교육 바이러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카페에 올라온 학부모님과 학생들의 응원에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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