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높은 층이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아파트, 높은 층이 좋은 것만은 아니더라"
  • 김준식
  • 승인 2020.03.22 07: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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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식칼럼] 낮은 데로 내려오니 사람과 자연이 보이더라
헛 된 바벨탑에서 내려와 자연을 본받으며 사는 것도 중요

나는 몇 주 전에 10층 아파트에서 살다가 2층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내가 사는 세종시에는 아파트들 사이사이 공간이 꽤 넓고 정원이 잘 꾸며져 있다. 때마침 봄철이라 정원에 있는 매화, 산수유나무들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10층 아파트에서 살 때는 인근 산과 들이 아주 멀리 보이고 정원에 꽃들도 남의 정원에 있는 꽃들처럼 멀리 보였는데 2층으로 내려오니 정원에 나무와 숲, 그리고 거기서 피는 꽃들이 다정한 친구처럼 바로 옆으로 다가온다.

그뿐만 아니라 정원 바닥에 흙도 보이고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봉오리들도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지나가는 이웃 사람들도 보이고 놀이터에서 왁자지껄 노는 동네 아이들도 보인다. 이제야 내가 사람들이 살아가는 마을에서 산다는 느낌이 온다.

70년대부터 우리나라 도시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50년쯤 지난 지금은 아파트에 사는 것이 일상적인 주거문화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어느 날부턴가 그 아파트 높이도 5층 정도에서 30층 40층으로 올라갔고, 그중 로열층은 10층 이상이 되었다. 로열층이라야 집값도 비싸다.

그렇게 아파트 문화가 형성되면서 우리는 이웃을 읽어 버렸고, 땅과 자연으로부터도 멀어져 갔다. 바로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4계절 자연의 변화도 먼발치에서 남의 일처 바라볼 뿐이다. 가끔 자연이 그리울 때면 산책도 해보고, 나들이도 해 보지만 그 시간은 잠깐이고 곧 높은 고층으로 올라와 나 홀로 고독하게 살아 간다.

미국 코넬대학교 연구팀과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 연구팀은 각각 전 세계에서 진행된 고층 아파트가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에 관련된 연구를 망라해 조사했다. 두 기관의 공통적인 결론은 고층 아파트가 개인이나 가족에게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부정적인 효과가 압도적이라는 것이다.

몇몇 연구 결과를 보면 고층에 거주할수록, 또 고층 단지에 살수록 저층에 사는 사람들보다 정신적 질환이 더 많다. 가족 간의 불화 또한 더 높은 빈도로 발생한다. 5층 이상에 사는 사람이 4층 이하에 사는 사람보다 정신적인 이상 증상이 두 배나 더 많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나라의 영구임대아파트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자료의 한계가 있지만, 높은 층에 거주할수록 저층 거주자보다 자살률이 더 높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김영욱. 세종대 건축학과)

인간(호모사피엔스)들은 약 20만 년 동안 자연과 가까이서 살아왔는데 불과 300년 전 산업화 시대부터 자연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심지어는 자연을 파괴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제는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야 하고, 자연과 공존해야 한다. 그렇게 인간성(자연성)을 회복하지 않으면 자연은 자체 회복력을 발휘하여 인간들을 공격하게 된다. 그 형태는 자연재해일 수도 있고 무서운 바이러스 공격일 수도 있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法道自然)라고 하였다. 인간이 아무리 잘나고 과학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자연의 법칙을 넘어설 수는 없다. 그렇다. 인간들은 이제 헛된 바벨탑에서 내려와 자연과 가까이 다가가서 조용히 자연을 본받아야 살길이 열린다.

김준식 세종민주화운동계승사업회 이사장, 지방분권 세종회의 상임대표, 세종 매니페스토 네트워크 자문위원, 다문화사회 이해 강사, 아시안 프렌즈 이사, 한국외국어대학 경제학과,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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