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생의 자리가 부처의 자리, 또, 부처의 자리가..."
"중생의 자리가 부처의 자리, 또, 부처의 자리가..."
  • 황우진 기자
  • 승인 2019.05.10 09: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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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불심정사 법장스님...마을주민과 함께 현대판 홍살문 건립하고 충효사상 고취
황룡리 마을 한 가운데 도량 만들어 법문하면서 주민 위한 일에도 적극 참여하는 스님
현실 참여를 통해 불법을 전하고 있는 '불심정사' 법장스님은 세속을 멀리하지만 불의에는 발벗고 나서고 있다.
현실 참여를 통해 불법을 전하고 있는 '불심정사' 법장스님은 세속을 멀리하지만 불의에는 발벗고 나서고 있다.

세종시 금남면 황룡리 마을 한 가운데 '불심정사'(佛心靜舍)에서 법문을 듣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요. 중생의 자리가 부처의 자리이고 부처의 자리가 중생의 자리입니다.”

불기 2563년 ‘부처님 오신 날’을 사흘 앞두고 불심정사 황법장 스님을 찾았다. ‘불심정사’(佛心靜舍)는 절 ‘사’(寺)대신에 집 ‘사’(舍)를 사용한 게 통념을 뛰어넘었지만 ‘불심으로 마음을 정화하는 곳’으로 해석하면 무난할 듯했다.

“천상천하 높은 자리도 없고, 낮은 자리도 없고 무상한 것이 인생입니다. 저는 일반 스님과는 조금은 다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세종시 금남면 황용리 동네 한 가운데 일반 주택모양의 스님의 절은 부처님 오신 날을 기념하는 연등도 없어 마치 마을 회관같은 느낌이 들었다.

지난 3월 19일 금남면 황용리 마을에서는 ‘홍살문 낙성식’이 있었다. 황룡리 마을에서 홍살문 건립을 주도하고 낙성식 행사까지 거행한 주인공이 바로 이 ‘불심정사’를 지키는 법장스님이었다.

절에 연등이 걸려 있지 않은 까닭을 물으니 연등에는 금전문제가 있고, 자신은 행사보다는 ‘부처님 참 뜻을 깨닫는 수행’이 목적이라며 이유를 설명했다.

홍살문 건립하고 충효사상 고취..."충효예지신은 오늘 날에도 지켜나가야 할 정신"

지난 3월 19일 홍살문 낙성식을 끝내고 이춘희 세종시장과 서금택세종시 의장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홍살문 건립에는 난관이 많았어요. 우선 홍살문이 무엇인지 몰라 주위사람들을 설득하는데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공무원조차 홍살문을 알지못해 행정절차를 거치는데 많은 어려움과 시간이 걸렸어요.”

지난 3월 19일 홍살문 낙성식을 끝내고 이춘희 세종시장과 서금택세종시 의장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3월 19일 홍살문 낙성식을 끝내고 이춘희 세종시장과 서금택세종시 의장이 마을주민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당시 홍살문 낙성식에 참여해서 기사를 쓴 기자로서 그간의 마을사정과 스님이 어떻게 마을홍살문 건축을 주도하게 되었는지 자세한 내막을 들었다.

“우리 마을 홍살문은 충신이나 열녀를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고 마을의 자긍심을 높이고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 정신을 함양하기 위해서 세운 겁니다. 또, 청소년들에게 충효사상을 가르치는 것도 또다른 이유이기도 했죠.”

그는 현대판 홍살문을 건립하게 된 배경을 말하면서 유교와 충효사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게 오늘 날 정신적인 가치관이 되지 못하게 됐다는 안타까움도 배어있었다.

“조선시대 홍살문은 서원이나 관아 앞에 설치하던 붉은 문인데 충신, 열녀, 효자를 배출한 마을이나 가문에 명예를 드높여 왕명으로 설치한 것이지요. 요즘 명예의 전당과 같다고나 할까요.”

황룡리는 이름부터 범상치 않은 느낌이 드는 마을로 입구에 웅장하게 서 있는 현대판 홍살문은 마을사람들의 자긍심과 기상이 느껴진다.

지난 3월 낙성식에는 이춘희 세종시장을 비롯한 지역 기관장과 인사들이 참석하여 황룡리 주민들이 물질만능의 시대에 정신문화 고양을 위해 현대판 홍살문을 세운 뜻을 높이 기리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전생의 연(緣)으로 불제자가 되다...그리고 불도 삼매경에 빠지다

전생의 연으로 불제자가 된 법장스님이 불도삼매경에 심취해있다

황법장스님은 대전 유성 관평동이 고향이다. 어머니가 유발승으로 덕암사를 창건했으니 모태 불가 집안인 셈이다. 어떻게 황룡리에 터를 잡았는지, 출가한 사연은 무엇인지가 궁금했다. 차를 마시면서 천천히 불가얘기를 듣기로 했다.

“모친은 저를 잉태하고 태몽에 아기스님을 엎고 있는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가족들은 저를 어려서부터 스님이 될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지요.”

중학교 시절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한학을 배웠고 고교를 졸업하면서 출가를 권유 받았으나 거부하고 평범한 삶을 살았다. 어머니 또한 아들의 출가를 원치 않았다. 그 때까지는 불교와 거리를 둔 생활이었다.

법장스님은 불교의 인연법에 따라 출가를 했고 지금도 그 인연으로 이승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법장스님은 불교의 인연법에 따라 출가를 했고 지금도 그 인연으로 이승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인연법은 틀리지도 않았고 끊어지지도 않았다. 2008년 어머니가 87세로 입적하면서 인생길도 달라졌다.

“모친이 임종직전 불경 기도를 해달라는 말씀이 마음에 걸렸어요. 송림사에서 모친의 49제까지 불경을 독경하면서 자연스레 불교에 입문하여 불제자가 됐습니다. 그 후 송림사 덕운스님아래서 공부를 했고 대한불교총화종 혜각 스님에게서 비구계를 수계 받았습니다.”

인생길은 참으로 알 수 없는 모양이다. 젊어서는 사업가로 ‘동방메디칼’이라는 의료기 업체를 성공시켜 최소한 경제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다.

운명은 역시 운명이었다. 그의 예견된 인생길은 달랐고 불경공부를 하면서 자신에게는 이미 불경이 내재해 있음을 깨달았다.

황룡리에서 스님으로 주민들과 함께하는 삶을 살다

출가 20여년 전부터 황룡리 마을주민으로 살아온 인연의 끈으로 지난 10여 년간 마을개발위원장을 맡아 마을이장과 함께 각종 마을민원을 해결하고 마을발전을 위해 일 해왔다.

법장스님이 마을일에 직접 관여하게 된 계기는 2009년 호남고속철KTX공사와 관련, 마을에 송전탑 민원이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KTX호남고속철 공사로 황룡리에 8개의 고압송전탑을 세우는 계획이 세워졌어요. 마을주민들은 절대불가를 외치며 정부와 오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온전하게 지키는 방법은 송전탑을 지중화 하는 방법뿐인데 지중화사업에는 엄청난 예산이 소요되었고 당시 세종시특별법은 신도시 예정지역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법장스님과 마을주민들은 청와대와 국회, 언론사 등에 송전탑 설치의 부당성을 호소하고 헌법재판소에 ‘세종시특별법’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황룡리 주민들의 염원과 오랜 싸움은 세종시특별법에 대한 대통령 시행규칙을 개정하여 신도시 주변지역 주민들도 평등하게 특별법 적용을 받게 되어 문제가 해결됐다. 2017년 2월 국회산업자원통상위원회는 황룡리 송전탑 지중화를 결정했고 한전중부건설본부와 황룡리주민들의 합의가 도출됐다.

법장스님은 이외에도 난개발로 인한 마을환경훼손, 주거환경피해 등 많은 마을민원을 이장과 함께 해결해 왔다.

10여 년간 지속된 황룡리 마을발전 이야기를 경청하며 황룡리는 풀뿌리 주민자치의 모범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을이장과 법장스님, 마을주민들은 소통과 화합으로 단결하여 혼연일체가 되어 마을 공동체 발전을 위해 힘썼고 그 결과 국가를 상대로 어려운 민원을 해결할 수 있었다.

황룡리 마을주민들과 법장스님이 정월대보름 마을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황룡리 마을주민들과 법장스님이 정월대보름 마을표지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황룡리 ‘현대판 홍살문’은 마을주민들의 주인의식과 민주발전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 가운데 법장스님과 박주현 마을이장이 있었다.

스님과 황룡리 10여 년간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계획에 대해 물었다.

“우리마을 홍살문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크고 웅장한 문입니다. 건립취지가 충효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앞으로 해마다 홍살문충효문화제를 개최할 계획입니다. 올해 ‘제1회홍살문충효문화제’ 개최를 위해 마을에 ‘홍살문충효문화제 추진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스님은 차 한 잔을 마시며 말을 이었다.

“이제 저는 마을문제에는 손을 놓았습니다. 마을문제는 마을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할 것이고 불자의 길을 가고자 합니다.”

물질만능의 늪에 빠져 허덕이는 현대의 삶 속에서 스님의 노력은 산중사찰에서 만나기 어려운 신선한 법문(法文) 같았다.

늦은 나이로 총화종 불제자로 입문, 구도의 길을 가는 스님의 나이가 궁금해서 두세 번 물었다.

“세속을 떠난 몸이 무슨 나이가 있습니까. 인생무상이지요. 무상(無常)의 깊고 깊은 경지를 깨우치는 것이 나이입니다.”

전생의 습(習)으로 부처님 최고 경전인 다라니경을 전파하는 것이 스님의 수행방법이다. 세속의 삶속에서 불교를 현대화하고 구현하는 것이 불자의 깨달음이고, 스님의 구도(求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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