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재대 이승만 동상...철거해야 마땅한가?
배재대 이승만 동상...철거해야 마땅한가?
  • 강병호
  • 승인 2019.04.2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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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 칼럼] 동상, 그리고 역사의식..."자해적이고 정치적 결론 전제한 주장 아닌지"

필자가 일하고 있는 배재대학교 우남관 앞에 크지 않은 동상이 있다. 바로 초대 대통령 우남 이승만(雩南 李承晩)의 동상이다.

심심찮게 동상 철거를 외치는 시위대가 오기도 한다. 김용옥 교수가 KBS 1TV ‘도올 아인 오방간다’라는 방송에서 “ 국민세금이 들어가는 국립묘지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파내야 한다”는 발언으로 동상에 관심도 올해 높아진 것 같다.

지난 4월 19일 이승만 동상 철거를 주장하는 좌파 성향 시민단체들과 동상 존치를 주장하는 우파 단체들이 맞불 집회를 벌이는 등 때 아닌 동상 논란이 거세다. 지역 시의회까지 사립대학 내 동상 철거를 결의했다 하니 사뭇 희한한 일이다.

이승만 대통령을 폄훼하는 것이 소위 진보 지식인의 사명이 된지 꽤 오래됐다. ‘민족문제연구소’가 제작하고 배우 권해효가 나래이션 맡은 동영상‘백년전쟁’을 보면 이런 사람이 초대 대통령인 대한민국이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초대 대통령의 모습을 통해 ‘대한민국 건국 자체를 혐오하라’고 만든 동영상 같다는 느낌이 든다.

대통령 이승만을 국부(國父)로 숭상하고 ‘이승만 학당’를 만든 사람들과 “국립묘지에서 파내야 한다”는 사람들이 사생결단 내는 곳이 지금의 한국이다. 어느 편 의 손을 들어주기 전에 한국인의 역사의식에 대해 생각하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다.

한국인들에게는 교조주의적 성리학 문화 유전자(meme)가 강하다. 이 유전자는 절대성을 강조한다. 절대 기준을 세우고 세상은 그 가치를 중심으로 철저히 돌아가야 했다. 조선시대에 유학자들은 주자(朱子) 말씀에서 절대 기준을 찾으려 했다.

배재대 우남관 앞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동상과 우남관
배재대 우남관 앞에 있는 이승만 대통령 동상과 우남관

조광조 (靜菴 趙光祖, 1482~1519)가 그랬고 송시열(尤菴 宋時烈 1607~1689)도 그랬다. 지금도 이 전통을 잘 따르는 곳이 북한이다. 수령은 절대적이고 무오류(無誤謬)라는 생각의 뿌리는 성리학적 세계관이다. 하지만 한국만 세상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승만 전 대통령을 극단적으로 좋아하고 싫어하기 전에 세계사, 동아시아 역사와 수평비교가 필요하다.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마오쩌둥(毛澤東)이 벌인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으로 3,000만 명이 아사하고 광란의 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 때문에 죽은 사람만 공식적으로 34,800명이다(사실 그보다 훨씬 많다). 덩샤오핑(鄧小平)도 문혁의 가장 큰 피해자였다.

그는 문혁기간 중 하방되어 삶의 밑바닥을 맛보았고 아들 등박방(鄧朴方)은 홍위병에게 탄압받아 평생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 되었다. 하지만 덩샤오핑은 마오쩌둥의 공(功)은 과(過)를 넘는다고 말했다.

미국 건국의 아버지(Founding fathers of the United States) 중 잘 알려진 조지 워싱턴(George Washington)과 토마스 제퍼슨(Thomas Jefferson)은 수백 명의 노예를 거느린 농장 (Plantation) 주인이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인들이 이들을 노예 농장주로 폄훼하는 것을 들을 바 없다.

6.25 전쟁을 일으켜 137만을 죽음으로 몰고 가고 소위 ‘고난의 행군’에서 적어도 33만을 굶겨 죽인 김일성은 어떤가? 이승만 비판하는 사람들이 김일성을 비판하는 경우는 거의 보지 못했다. 이른바 ‘내재적 접근법’을 내세워 이해하려 무진 애를 쓴다.

역사학자 E. H. Carr는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다”라고 주장했다.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과도하고 현재 중심적 폄하는 결국 ‘대한민국은 뿌리부터 잘못된 나라이기 때문 정통성이 박약하다’는 자해적이고 정치적 결론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닌지 합리적 의심을 갖게 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세운 김일성 동상은 북한에 4만 개고 만수대 언덕에 23m 금박 동상이 있다고 한다. 대한민국의 초대 대통령 동상은 배재대학교에 있는 것이 유일하다. 그나마 철거하자는 주장도 이렇게 강하다.

1945년 해방 후 한반도에서 같이 시작한 두 나라... 백성들의 살림살이와 동상 개수가 묘하게 반비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비 부슬부슬 오는 이 저녁 우남관을 다시 쳐다본다.

강병호, 중앙대 졸업, 중앙대(MBA), 미국 조지아 대학(MS), 영국 더비대학(Ph.D),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대전문화산업진흥원 초대, 2대 원장, 한류문화진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문위원,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E-mail :bhkangbh@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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