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기향교 임만수 전교, "향교는 사람됨 가르치는 곳"
연기향교 임만수 전교, "향교는 사람됨 가르치는 곳"
  • 황우진 기자
  • 승인 2019.03.26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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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물질문명에 찌든 현대사회와 개인주의 병폐 치유 위해 향토는 소중한 공간
"공맹사상과 유교철학으로 세종시를 지키고 싶어"...뿌리와 전통을 찾는 향교 정신
임만수 연기향교 전교가 연기향교 역사를 설명하면서 옛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임만수 연기향교 전교가 연기향교 역사를 설명하면서 옛 것의 소중함을 강조하고 있다.

향교는 현대문명의 정신적 뿌리, 도학정신의 터전...

“세종시는 시골과 신도시, 원주민과 이주민, 옛날과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입니다. 역사도 없고 뿌리도 없이 만들어진 다른 도시와는 다릅니다. 수백 년 간 조상들이 물려주신 터전 위에 세워진 소중한 곳입니다.”

세종시 건설이 한창 이루지는 가운데 지난 20일 정신문화를 이어가고 있는 ‘연기향교’ 임만수 전교(75)를 찾아 세종시의 뿌리와 미래에 대해 얘기를 나누었다.

행복도시로 불리는 신도시는 복잡한 아파트와 상가가 밀집되어 있지만 도심을 10분만 벗어나면 금방 시야가 바뀐다. 고향의 푸근한 품처럼 논밭이 눈에 들어오고 푸른 산이 보인다. 이제 시절은 완연한 봄인지라 산수화, 벚꽃, 복사꽃의 아름거림을 비집고 연기면 향교마을이 나타난다.

세종시 연기면 교촌리 연기향교.

옛 선비의 풍채와 기개가 풍기는 임 전교를 만나 첫 질문으로 향교가 하는 일에 대해 물었다.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관립학교인 향교와 사립학교인 서원이 있었습니다. 향교는 지방의 관립학교로 서울의 성균관과 함께 유학교육의 전당이면서 공자와 유학성현들을 모시는 문묘(文廟)의 역할을 담당하였지요. 지금도 봄, 가을에 공자를 비롯한 27현에게 제사를 올리는 ‘석전대제’를 지내고,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삭망례’를 행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관학의 근간을 이루는 향교는 배향(配享)과 강학(講學)공간, 향교의 살림을 맡는 교직사로 부엌.방.대청.광 등으로 구성돼 있다.

배향공간은 공자와 유학성현들에 제를 드리는 곳이고 강학당은 유교경전을 공부하는 강의실이다.

향교에서 추억의 교복을 입고 즐거웠던 학창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향교에서 추억의 교복을 입고 즐거웠던 학창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공맹사상은 방황하는 현대인 정신의 나침판 되어야...

현대사회에서 향교의 교육기능의 역할과 공맹 사상은 어느 정도 영향을 주고 있는지 전교의 의견을 물었다.

“지금 향교에서는 조선시대처럼 사서삼경(四書三經) 등 유학을 전문적으로 가르치지는 않습니다. 우리 향교는 월요일에는 논어, 수요일에는 명심보감, 천자문 정도는 가르치고 있어요. 또 4월부터는 서예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에는 정통유학을 공부한 사람도 없고 그것이 꼭 필요한 학문은 아니더라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데는 옛 성현의 가르침은 현대에도 살아 있다고 봅니다.”

그는 1945년 해방둥이다.

어린 시절 6.25전쟁, 보릿고개를 겪으며 살았기에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한 게 한이 됐다.

“가난 때문에 학교는 형에게 양보하고 농사일을 하며 연기군 남면 진의리에서 16년간 이장 일을 보며 보냈어요. 젊어서는 형처럼 학교공부를 하지 못해 부모님을 속상하게 한 일이 많았습니다.”

옛 추억을 더듬어 회고했다. 고향을 지키며 16년간 성실히 이장 일을 하면서 사회에 봉사한 것이 향촌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 연기향교 전교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지금은 세종시가 과거의 정치적 갈등과 토지수용 과정에서 여러 가지 마찰을 뒤로 하고 행정수도로 건설되어 가고 있지만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고려충신 임난수 장군 19대 후손으로 수 백년 간 조상대대로 살아오던 터전을 내 놓아야 하는 쓰라림과 갈등도 있었다.

60세가 넘은 늦은 나이에 한학에 몰두하게 됐지만 이제는 성현의 뜻을 바로 알고 가르침을 후세에 전수하여 사회를 바로 잡는 일에 인생의 목표를 두고 살고 있다.

임전교는 평소 자신이 즐겨 읽는 맹자의 한 구절을 소개했다.

“맹자님이 말씀하시기를 삶도 내가 원하는 바요, 의도 또한 원하는 바이지만 이 두 가지를 겸하여 얻을 수 없을진대 삶을 버리고 의를 취하겠다.”(孟子曰 生亦我所也 義亦我所浴也 二者 不可得兼 舍生而取義者也)

부안임씨의 후손으로 묘소에 제례를 올리는 임만수전교
부안 임씨 묘소에 제례를 올리는 임만수전교

그는 우리 선인들은 이와 같은 정신수양 공부로 나라가 큰 어려움에 빠졌을 때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초개처럼 목숨을 버렸다고 강조하면서 “안중근 열사나 윤봉길 의사 같은 선열은 유학의 선비정신을 바로 보여 주었다” 고 말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유학의 선비정신과 기개를 다시 한 번 되새기고 강조하는 말이었다. 충효정신이 흐려지고 개인 물질주의가 만연하는 현대사회에서 우리사회를 각성시키고, 민주시민사회를 한 단계 더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유학의 도학정신은 더욱 강조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른바 도학정신 실천을 위해 연기향교는 ‘향교의 사계’라는 프로그램을 개발, 잊혀져가는 문화를 발굴하고 학생들에게 ‘성년식’을 실시하며 사람이 갖춰야 한 예와 유학정신을 가르치고 있다.

“유학은 무조건 옛것을 고집하고 그것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닙니다. 공자 맹자 말씀을 정확히 알고 이해하면 이치에 어긋나는 말과 생각이 하나도 없어요. 앞으로 우리 향교의 역할은 공맹사상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시민정신과 문화생활에 심어주는 거라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연기향교는 4월부터 ‘전통에서 미래를 열다’라는 전통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강한다.

교육내용은 ▲향교의 사계 ▲향교문화대학 ▲세종에서 유학하다 ▲전통의례 등 4개 분야로 향교의 고유기능과 현대문화를 융합하는 문화체험프로그램으로 진행된다.

‘향교의 사계’는 (봄)화전놀이 (여름)향교음악여행 (가을)향교마실 (겨울)전통문화 인문학콘서트 등 계절별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향교문화대학’은 학생과 일반인을 대상으로 천자문, 서예, 전통 차, 다도교실을 진행하며, 외국인을 위한 글로벌 선비교실도 마련된다.

도심 속에서 전통을 계승해 나가는 임 전교의 정신문화운동은 연기 향교라는 작은 공간을 통해 세종시에 퍼져가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연기향교 명륜당 앞에서 한 여름밤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연기향교 명륜당 앞에서 한 여름밤 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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