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세종보 설명회서 오류 여론조사로 '주민 우롱'
환경부, 세종보 설명회서 오류 여론조사로 '주민 우롱'
  • 곽우석 기자
  • 승인 2019.03.20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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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여론조사 결과 근거자료 제시한 것으로 드러나
설문조사 자료 역시 당국 입맛에 맞는 내용 취사 선택 발표
세종보 전경

정부가 세종보 해체 주민설명회에서 잘못된 여론조사 결과를 근거자료로 제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설문조사 자료 역시 당국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취사 선택해 발표하면서, 주민들을 우롱하고 여론을 왜곡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단(이하 평가단)은 지난 19일 한솔동 복합커뮤니티주민센터에서 '세종보 처리방안 제시안 설명회'를 열고 주민 의견을 청취했다. 지난달 22일 환경부 4대강 조사‧평가 기획위원회(이하 기획위)가 세종보와 공주보, 죽산보 등을 해체하는 방안을 제시한 뒤 주민 반발이 일자 부랴부랴 마련한 자리였다.

평가단은 이날 ‘보 평가 개요 및 평가 결과’, ‘보 처리방안 제시안 및 향후 계획’, ‘궁금증을 풀어드립니다’ 로 구분된 25쪽 짜리 설명 자료를 배포하고 보 해체의 당위성을 집중 부각했다. 경제성 분석, 수질·생태, 이수·치수, 국민과 지역 주민의 인식 조사 등 각 부문에서 진행된 연구결과도 공개하면서 “세종보를 해체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평가단 관계자는 "세종보에 대한 경제성 분석 결과 B/C가 2.92로 높게 나왔다"며 "평가부문별 평가결과 수질 0.521, 생태 0.638, 물이용과 홍수예방 이수 0.497, 치수 0.534 등 개선되는 모습을 보였다"고 설명했다. 평가결과는 평가항목의 지표 값을 0~1.0 척도로 표준화 한 것으로 0.5 이상일 경우 보 수문개방으로 개선됐다는 점을 의미한다.

환경부는 19일 주민설명회에서 '4대강 보 필요성'에 대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52.5%에 달하고, 필요하다는 의견은 11.0%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사진은 환경부가 설명회 당시 발표한 자료)

지난해 말 실시한 '지역 주민의 인식 조사'(여론조사) 결과도 근거로 제시했다. 관계자는 '4대강 보 필요성'에 대해 "불필요하다는 의견이 52.5%에 달하고, 필요하다는 의견은 11.0%에 불과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전혀 다른 ‘허위’인 것으로 밝혀졌다.

기획위는 지난해 12월 여론조사 전문기관에 의뢰해 일반 국민(1000명), 금강·영산강 수계 주민(각각 250명씩 500명), 5개 보 지역 주민(100명씩 500명) 등 총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는데, 결과는 4대강 보 철거에 대해 부정적인 시각이 컸다.

자료에 따르면 '4대강 보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국민들 44.3%가 '필요하다'고 답했고 '불필요하다'는 답변은 36.9%에 그쳤다. 수계 지역 국민도 '필요하다'(42.2%)가 '불필요하다'(37.8%)를 앞질렀으며, 보 지역 국민 역시 '필요하다'(42.9%)가 '불필요하다'(36.8%)를 앞서는 등 오차범위 내에서 우위를 보였다.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이명박 정부 당시 추진됐던 4대강 사업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과는 달리, 보 철거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가 우세했다. 환경부가 이날 발표한 내용과는 전혀 다른 결과인 셈이다.

'보에 대한 인식과 선호 설문 조사 보고서'의 '4대강 보 필요성' 조사 결과, 사진 왼쪽부터 일반 국민, 금강·영산강 수계 주민, 5개 보 지역 주민 응답(자료=환경부)

환경부 관계자는 수치 오류에 대해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지만, 보 철거가 찬반양론이 팽팽한 민감한 현안이라는 점에서 주민들을 속이려 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확산하고 있다.

주민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주민은 "보 철거 반대 여론이 높은 줄 알았지만, 사실은 그게 아니었다"면서 "공식적인 설명회 자리에서 허위 여론조사 결과를 내놓은 것은 주민을 우롱하는 작태 아니냐"고 힐난했다.

다른 한 주민도 “정부가 보 철거 여론이 높다는 것을 내세워 주민 여론을 호도해 설득하려는 것으로 보인다”며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실제 일부 언론들은 환경부의 설명 자료를 그대로 인용해 보도하면서, 사실과 전혀 다른 내용이 기사화되기도 했다.

이날 발표된 설문조사 자료 역시 정부 당국의 입맛에 맞는 내용만을 취사선택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기획위가 실시한 조사가 ‘일반 국민’, ‘금강·영산강 수계 주민’, ‘5개 보 지역 주민’ 등 모두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지만, 불과 100명만을 표본으로 한 ‘세종보 주민’ 조사 결과만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4대강 보 필요성에 대한 5개 보 지역 주민 여론조사 결과(자료=환경부)

보 지역 국민 중 세종보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만을 보면 '불필요하다'(44.1%)가 '필요하다'(37.4%)를 오차범위 내에서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는 표본(100명)이 작아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종합해보면 환경부는 설명회에서 보가 ‘불필요하다’는 정부의 입장에 유리한 자료를 인용하려 하다가, 결정적인 오류를 범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시민은 "최근 일련의 과정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보 해체를 사실상 결정해 놓고 설명회라는 형식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는 것 같다"며 "정부의 결정을 뒷받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설명회에선 세종보 철거 방침에 대한 주민들의 반발이 봇물을 이뤘다. 주민들은 정부의 설명에 "사기 치지 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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