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아픔, 사진으로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역사의 아픔, 사진으로 생생하게 고발합니다"
  • 황우진 기자
  • 승인 2019.03.11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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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절규하는 역사의 증인, 사진으로 표현하는 다큐멘터리 작가 김지연
사할린 동포, 북한 꽃제비, 일본 대지진 현장 찾아 살아있는 현장 앵글에 담다
김지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는 동토의 땅 사할린에 강제징용된 동포들을 취재한 사진집 '사할린의 한인들'을 펴냈다.

일본 제국주의 망령...여전히 진행형으로 아픔의 역사가 되고 있다

그들은 왜 지금도 반성하지 못하는가.

'3.1 독립만세운동' 100년을 맞은 올해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우리민족이 겪은 아픈 기억들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일제의 조선침략으로 시작된 한민족 수난, 비극적 역사는 이제 끝난 것인가. 한민족 수난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세종에 살고 있는 한 사진 작가가 그들의 고단했던 삶을 사진으로 조망하고 있다.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씨다.

“쓰라린 과거의 기억들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어요. 우리는 너무 오랜 세월 속에 무감각해져 그저 지난 과거의 일로 잊어버리고 싶어하죠. 그 쓰라림은 지금도 진행형이죠.”

민들레 씨앗처럼 흩어져 버린 한민족 해외동포들. 중국으로 연해주로, 러시아로, 사할린으로, 그들의 비극은 왜, 어떻게 시작되었을가. 또, 고통은 이제 끝이 났을까. 그들은 아직도 비극의 현장에서 동포라는 이름으로 살고 있다. 이 비극의 현장을 찾아 누비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지연씨(49)를 지난 7일 오후 세종시청 까페에서 만나 우리나라 해외동포들에 대한 고난의 역사를 생생하게 전해 들었다.

여성으로 힘든 역사의 현장을 기록하려 들었느지를 맨 먼저 물어보았다. 

“대학을 프랑스 리용 근처 생테티엔에서 사진을 전공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프랑스 유학을 떠나 국내문제나 사회문제에 대해 잘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다큐멘터리 사진을 하게 된 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영화를 보고 난 후였습니다.”

아픔의 역사는 쉽게 공명(共鳴)을 일으키는 모양이다.  서울에서 초․중․고를 졸업하고 프랑스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 사실 국내역사나 사회문제에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귀국 후 변영주 감독이 만든 위안부 할머니를 다룬 영화 '낮은 목소리'를 본 후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1998년 경기도 광주 ‘나눔의집’을 찾아가 할머니들과 같이 잠을 자며 설거지, 청소를 해주면서 할머니들과 친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해 다큐멘터리 사진작가가 되다

“처음에는 사진 찍을 생각은 못했어요. 그저 할머니들이 보고 싶었고 약간이라도 위로가 되어주면 하는 생각에 찾아갔죠. 그런데 처음 친해진 ‘밥두리 할머니’가 너는 누구인데 왜 자꾸 여기에 오느냐고 물었어요. 사진작가라고 했더니 그럼 사진 좀 찍어 보라고 해서 할머니들 사진을 찍어주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됐어요.”

시대에 희생이 된 위안부 할머니들을 앵글 속에 담으면서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과 기억을 함께 했고 이게 동기가 돼 역사의 현장을 누비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라는 새로운 직업을 가졌다. 

김지연 작가는 위안부 할머니를 통해 아픔의 역사와 시대정신을 그려내려고 노력했다. 사진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김순덕할머니가 생전에 그림을 그리는 모습, 김지연작가 제공

“그때 김순덕 할머니 사진을 남겼는데 할머니들은 살아있는 역사의 영혼으로 사진 속에 남기를 원하셨어요. 제가 깊은 감동을 받은 것은 교황님이 할머니들을 미사에 초대해서 하신 말씀이었어요. ‘전쟁위안부로 참을 수 없는 아픔을 겪은 할머니들이 그래도 품위를 잃지 않으셨다’는 말씀이었어요. 이 말씀 한 마디가 할머니들에게 얼마나 큰 안식이 되었겠어요. 그런데 지금 일본지도자들은 어떠한 가요.”

함께 얘기를 나누면서 눈물을 감추기 어려운 살아있는 다큐이야기가 계속해서 이어졌다.

위안부 할머니들과 첫 만남을 가졌던 1998년. 그는 북한에서 중국을 넘나드는 ‘꽃제비’들에 대한 소식을 듣고, 다큐사진 촬영 차 중국 연변 땅으로 향했다. 처음에 만난 아이들은 카메라를 두려워했다.

“그 아이들은 그저 살기 위해 북한과 중국땅을 왕래했어요. 얼굴이 알려지면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어서 사진을 찍을 수 없었어요. 나중에는 함께 먹고 놀면서 얼굴을 가리고 다큐사진을 찍었어요. 그들은 바로 우리아이들이었고 그저 살기위해 구걸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충격을 받았어요."

다큐멘터리 작가 김지연은 분단과 기아현장에서 아이들은 '민들레 홀씨', '통일제비'라는 생각으로 2000년 ‘연변으로 간 아이들’이란 제목으로 사진집을 발표했다.

점차 김씨의 관심은 중국동포와 러시아 동포까지 확대됐다.

망한 나라 조선에서 땅을 빼앗기고 울분으로 압록강, 두만강을 건너 잡초 같은 생을 살아낸 사람들, 그들을 알면 알수록 더욱 깊이 빠져 들었다. 그들의 쓰라린 가슴, 격동하는 역사의 현장을 사진으로 남겨한다는 사명감으로 한 컷 한 컷 카메라에 담았다. 이러한 비극의 역사현장들을 모아서 김씨는 2001년에는 ‘노동자에게 국경은 없다’, 2005년 ‘러시아의 한인들’이란 제목의 사진집을 발표했다.

88올림픽 때 방한하여 비로소 자기 조국을 알게 된 구소련의 유명가수 신갈리나와의 인연을 소개했다. 그는 ‘돌아와요 부산항에’라는 노래를 불렀다가 KGB의 조사를 받고, 후에야 그 노래가 한국인의 이별의 애환을 담은 노래라는 걸 알았다.

동일본대지진, 방사능 오염지역 ‘조선학교’에 가다

2011년 3월 일본대지진으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의 한인학교 방사능 측정기, 일본 대지진도 김지연 작가의 취재권역에 들어왔다. <사진 =김지연작가 제공>

김작가의 관심은 계속해서 일본동포 사회로 이어졌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고 그 복구과정에서 재일동포들은 일본정부로부터 차별대우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재일동포들은 상당수가 지금도 무국적 상태인 ‘조선적’으로 있어요.”

조선적(朝鮮籍)은 중국동포인 조선족과도 다르고 조선에 호적이 있다는 뜻이다. 재일동포들은 일본귀화를 거부하고 1910년 한일합방으로 망한 조선의 호적을 유지하고 있어 일본도 아니고, 북한도, 한국도 국적이 없는 무국적 상태로 살아가고 있다.

“이들이 일본인 교육을 거부하고 만든 학교가 바로 조선학교입니다. 다른 외국인 학교는 다 인정하면서 조선학교는 아직도 일본이 학교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방사능으로 오염된 후쿠시마를 방문하여 이들과 아픔을 함께하고 그들의 고난을 다큐사진으로 남겼다. 또한 조선학교 졸업식에도 초대를 받아, 그 기록물을 ‘일본의 조선학교’라는 사진집으로 출판했다. 조선학교는 남북의 이데오르기 틈바구니 속에서 어느 쪽에도 가까이 하려하지 않는다. 재학생11명의 조선학교 졸업식에 김씨가 초청받은 일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

동토의 땅 사할린,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김지연 사진작가가 사할린에서 한인동포들을 사진촬영하고 있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은 2020년 ‘사할린 동포 사진전’이다. 2010년 이미 인사동에서 개인 사진전을 개최한 그는 10년 만에 ‘사할린 주립미술관’에서 사할린 해외동포들의 애환을 담은 역사의 현장을 다큐멘터리 사진전으로 보여줄 예정이다.

“사할린 한인동포들은 아직도 일제 강점기 억압 그대로 살고 있어요. 1945년 한반도가 해방되었지만 일본 패망으로 사할린은 소련땅이 됐고 한국인들은 아직도 송환되지 못하고 있어요. 그들에게는 해방이 없어요. 일본은 패망하고 일본인 유골까지 송환해 갔지만 한국인들은 자국민이 아니라고 사할린에 방치했어요. 노동력이 필요할 때는 내선일체를 부르짖으며 징용으로 끌고 갔지만 끝에는 버리는 것이 일본이어요. 사할린 동포들은 구소련의 노동력 필요로 그대로 억압되었고, 이제 1세대는 몇 분만 남아계세요.”

김작가가 한민족의 ‘디아스포라’ 마지막 작업으로 사할린을 주목한 것은 사할린 동포들이 겪은 망국의 문제는 우리 민족이 겪은 근현대사의 응어리와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는 많이 지워지고 잊힌 역사의 아픔이지만 이들은 아직까지 그대로 간직한 채 살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한민족의 감회는 새롭다. 그러나 그 가해자 일본은 조금의 반성도 없다. 전범자 일본은 21C 문명국가를 자칭하면서 언제까지 그들의 잘못을 국가라는 가면으로 덮으려고 하고 있다. 그걸 김지연 작가가 사진으로 고발하고 있는 셈이다.

사할린 1세대 동포 고 김윤덕할아버지 생전모습<사진 =김지연 작가 제공>

사진은 절규하는 생생한 언어 !

남편을 따라 2년 전에 세종시로 이주했지만 세종시에 대한 애정은 남다르다. 행정수도 세종에서도 많은 시민들이 일제식민지, 그리고 해외동포들의 고난과 역경에 대해 공감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다큐멘터리 작가 김지연은 현재 세종시 문화재단의 예술강사로 있으면서 예술고등학교 등 많은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사진예술을 가르치고 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사진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사진은 나를 표현하는 예술이고, 사회문제에 해결의 실마리를 제시하지요. 사진은 절규하는 하나의 언어입니다.”

그의 대답에는 사할린 코르사코프 항구에서 오지 않는 귀국선을 기다리는 사할린 동포들의 눈물이 배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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