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 분명한데 기록없다는 이유 '홀대'..."후손의 도리 아냐"
독립운동 분명한데 기록없다는 이유 '홀대'..."후손의 도리 아냐"
  • 윤철원
  • 승인 2019.02.18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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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철원의 세종독립만세운동] 많은 언론 관심, 고맙지만 후손애 대한 예우 제대로 해줘야
잘못된 역사 바로잡아가면서 지역 전통 계승발전하는 계기만들어야...후손 관심 지대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다.

나라를 잃고 10년 동안 실의 빠졌던 우리 겨레가 일제로 부터 독립에 대한 열망을 한 순간에 표출했던 이 사건이야 말로 우리역사에서 국민이 진정한 나라의 주인이라는 것을 대내외에 천명한 첫 장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역사의 물결 속에서 세종시 지역에서는 어떠한 형태로 만세운동이 전개 되었는지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서 ‘세종의 소리’ 지면을 통해 6회에 걸쳐 소개하고자 한다.

연재는 ⓛ한눈에 보는 세종시 지역 3.1운동 ②전의면 ③조치원읍 ④금남,장군면 ⑤연기,연서,전동,소정면 ⑥연동,부강면 ⑦후기 등의 순으로 게재한다./필자 주

지금까지 6회에 걸쳐 세종시 관내 3.1운동에 대하여 소개해 드렸다. 세종시 전역에서 연일연야(連日連夜) 만세시위가 있었다는 기록들이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라고 할 수는 없다. 드러나지 않은 더 많은 사실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러한 자료들을 조사하여 역사에 기록하고 때때로 그분들의 유훈을 되새기는 것이 후손된 자들의 도리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당시 우리 선열들은 만세의 대가는 고통이라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일제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독립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에 표출했다.

그분들이 당한 고난 덕분에 풍요를 누리고 있는 우리는 선열들께 어떠한 예우를 하고 있나? 연재 속에 등장한 인물들은 그 시절 만세운동의 지도자들이다. 국가 유공자로 서훈되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공적이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그분들께 합당한 예우를 생각조차 않고 있는 것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불찰이요 불경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만세시위의 주동자라는 일제의 재판과 수형기록이 있음에도 서훈을 받지 못한 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연서면 봉암리 윤봉균(징역6월 집행유예2년), 전의면 신정리 김재주(징역6월), 남면 보통리 박원칠(징역6월), 송담리 임숙명(태60), 임만수(태60) 선생 등 5명이다.

우선 그 분들만이라도 국가가 스스로 조사하여 서훈하면 안 되는 일인가?

1세대는 한분도 안계시고, 2세대도 이미 많이 작고하셨으며, 3세대들도 이제는 모두 60세 이상 80대의 고령에 접어들었다. 그분들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한다 해서 국가에 어떠한 부담이 생기는지 알 수는 없으나 세계10대 경제대국의 반열에선 대한민국이 그분들을 예우하지 못할 정도로 나라형편이 어렵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또 재판이나 옥고를 치른 기록이 없더라도 지역에서 만세시위에 주도적 역할을 했던 분들에 대해서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본다.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헌신한 노고를 조국과 고향은 결코 잊지 않는다.’는 확신을 3.1운동 100주년에 심어주어야 하지 않을까?

하나 더 살펴 볼 것은 우리지역의 독립운동 기념물 현황이다.

보훈처에 등록된 전국의 독립운동기념물은 910개소이다. 그중에 세종시에 있는 기념물은 의병장 임대수 장군 공적비 1개에 불과하다. 910개소 중에 3.1운동관련 시설물은 전국에 307개소인데 세종시에는 3.1운동 기념물이 하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3.1운동 100주년이 된 지금 그분들의 희생과 고통을 추모할 기념물 하나 세우지 못할 만큼 우리형편이 어려운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나라를 잃고 암울했던 시절, 독립을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는 믿음으로 선열들은 후손을 위해 고난의 길을 택했다. 그리고 그분들이 눈물로 뿌린 씨앗은 100년 후에 소득 3만 불이라는 열매로 맺어졌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선열들께 무엇을 해야 하며, 100년 뒤에는 후손들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기억되어야 할까 ?

“나중에 후손들이 우리가 이렇게 개고생한걸 알까 모르건네∼”

“모르면 호로새끼지∼” 영화 ‘명량’의 대사다.

임진왜란보다 더 서글픈 삶을 살았던 선열들께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옷깃을 여미고 생각해 볼 일이다.

끝으로 이글이 연재되는 동안 독자들께서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를 드린다.

금남면 편에서 소개한 김상설(金商說) 선생의 함자를 김상열(金商說)로 바로 잡아주신 80대 손자 분의 관심과, 조치원 김규열 선생의 후손은 그동안 연기군지 등에 조부님이 김규필로 잘못 기록되어 마음이 언짢았는데 이번에 제대로 소개되었다며 고마운 인사를 해주셨다. 그리고 독립유공자 후손을 비롯한 지역원로 여러분께서 격려의 말씀을 주신데 대하여 지면을 통해 감사를 드린다.

아울러 세종시청 관련부서와 지역 언론인들께서 자료를 요청하는 등 관심을 보여주신데 대해서도 감사를 드린다. 특별히 세종의소리 김중규 대표께서 지면을 할애해 주신데 대하여 더없는 감사드리며 연재를 끝까지 읽어 주신 독자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린다.

이 글을 쓴 윤철원은 세종시 상하수도과장으로 지난 2017년 정년퇴임을 한 조치원 토박이다. 조치원읍장 재직 당시 세종시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전통과 역사에 대한 시민 의식이 부족한 점을 아쉬워하면서 지역문화 연구에 매진했다. 이후 세종시 향토사 연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지역과 관련한 역사를 찾아내 후손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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