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이 부도나고 국가가 파산한다고?
은행이 부도나고 국가가 파산한다고?
  • 강병호
  • 승인 2019.01.04 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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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호칼럼] 영화 '국가 부도의 날' ... 역사인가, 아니면 판타지인가?

조선시대 임진왜란부터 경종까지 역사 군담소설(軍談小說)이 유행했다. 대표적으로「임진록」, 「임경업전」, 「박씨전」, 「사명당전」, 「김덕령전」 등이 있다.

역사 군담소설이 유행한 이유는 임진왜란부터 병자호란까지 국토를 유린당한 민족의 치욕과 원한을 판타지를 통해 심리적으로 상쇄하려는 백성들의 잠재의식이 깔려있기 때문이었다. 전쟁에서 패했으면 군대를 기르고 무기를 개량하며 국력을 키울 생각 보다는 판타지를 통해 자위하려 했던 것이 우리 조상들이다. 그렇게 재기의 의지와 혁신의 결기가 부족했기에 20세기로 들어가면서 다시 일본에게 국권을 찬탈 당한 것이다.

11월 28일 개봉한 영화 「국가부도의 날」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라는 역사 초유의 사태를 그린 수준은 조선시대 군담소설 류(流)다. 아쉽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의 연출은 최국희 감독이 맡았고 본격 상업영화는 이번이 그에게 처음이다. 주연은 김혜수(한국은행 팀장 한시현 역), 유아인(IMF직전 증권회사를 그만두고 대박을 노리는 윤정학 역), 허준호(IMF로 부도를 겪는 중소기업 사장 갑수 역), 조우진(재정국 차관)이 주연을 맡았다.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김영삼 대통령 시절 정부가 대한민국 경제의 펀더멘탈(Fundamental) 대해 낙관적 전망을 할 때 한국은행 통화정책팀 팀장 ‘한시현(김혜수 분)’은 국가부도의 위기를 먼저 예견하고 대책을 세운다. 그녀는 위기상황을 서둘러 국민에게 알리고 대비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주장을 피력하고 반대에 부딪히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국가부도를 직감한 ‘윤정학’은 잘 다니던 증권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투자자들을 모아 위기를 기회로 하는 역 투자에 성공하며 승승장구하지만 국민의 생존에 무관심한 정부를 보고 절망한다. 이런 상황에서 검은머리 외국인들, 즉 한국인이지만 외국의 이권을 위해 일하는 엘리트들도 있었다.

위기를 통해 새로운 판을 짜야 한다고 주장하는 ‘재정국 차관’은 한시현과 사사건건 대립하고, 비밀리에 입국한 ‘IMF 총재’는 고압적인 태도로 한국 정부를 옥죄며 국가부도의 날까지 긴장감은 높아진다.

대한민국 경제는 문제없다는 정부의 호언장담을 굳게 믿는 서민들은 ‘부도’라는 현실에 스스로 목숨을 끊고 한시현의 오빠‘갑수’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며 극한상황에서도 회사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든 버텨보려 애를 쓴다.

우리 영화판의 흥행공식은 이분법이다. 주로「일본놈」, 「재벌」, 「미국놈」을 까야 성공한다. 최근 영화에서 일본놈은‘군함도’, 재벌은 ‘베테랑’을 기억하면 된다. 영화 「국가부도의 날」에서 그리는 국가 파탄의 원인은 결국 남 탓, 미국(제국주의) 탓이다.

‘한국경제를 말아먹으려는 미국 제국주의 골리앗과 이를 막아내려는 한국의 다윗(김혜수)’, 즉 이분법적 구도의 스토리텔링...이런 프레임은 한국 영화판에서 20·30세대에 잘 먹히는 구조다. 복잡한 현실을 객관식 같이 간단하게 이해하게 한다.

22년 전 IMF사태 근본원인은 YS(故 김영삼 대통령)의 무리한 세계화 추진에 있었다는 것은 전문가들 공통적 견해다. 무리하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했지만 선진국 회원이 되기에는 당시 대한민국은 국제 정치, 경제, 금융에 너무도 어두웠다.

1990년대부터 도미노 현상으로 무너진 구 소련 블록과 전 세계적인 사회주의 퇴조가 국제 경제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왜 당시 동남아 금융위기가 일어나는지 원인의 핵심을 꿰뚫는 사람이 한국에는 없었다. 따라서 영화에서 등장하는 김혜수와 같은 혜안 있는 인재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존재했더라도 YS정부의 어설프고 권위적인‘세계화’일변도의 정책에 제동을 걸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한국이 무리하게 추진한 원화절상, 어설픈 세계화에 의한 단기외채가 우리를 죽인 것이다. 잘라 말해, 정치와 명분이 경제를 죽인 것이다.

어떤 언론에서 당시 미국 루빈 재무장관이 일본 미쓰즈카 히로시 대장상에게 전화를 걸어 한국을 도와주지 말라고. 했다고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마치 미국이 한국경제를 점령하려는 음모가 도사리고 있는 듯한 말이다. 국제 경제체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솔깃하게 다가오는 미 제국주의 음모론일 수 있다.

일본은 1980년 대 이후에 꾸준히 아시아에서 일본 중심의 경제 통화 불록을 형성하려 하였다. 미국은 이를 반대했다. 2차 대전 후 공고히 버텨온 미국 중심 금융통화 체제(IMF, IBRD)를 아시아에서 지키고 싶어 했기 때문이다. 만일 그 때 일본이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으면 한국은 일본 자본으로부터 더 힘든 나날을 보냈을 것이다. 냉혹한 것이 국제 현실이다.

평범한 이야기지만 남 탓이나 하는 집안이나 나라는 제대로 풀리지 않는다. 오늘날에도 정치와 명분이 경제논리를 거꾸로 돌리지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해야 한다. 새로운 IMF사태를 예방하는 길이다.

강병호, 중앙대 졸업, 중앙대(MBA), 미국 조지아 대학(MS), 영국 더비대학(Ph.D),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책임연구원, 삼성전자 수석 연구원, 대전문화산업진흥원 초대, 2대 원장, 한류문화진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자문위원, 배재대 한류문화산업대학원장, E-mail :bhkangbh@pc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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