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고에 패한 바둑..기쁘기도, 슬프기도 해요"
"알파고에 패한 바둑..기쁘기도, 슬프기도 해요"
  • 황우진 기자
  • 승인 2018.10.24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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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김진벽 이세돌 바둑학원장..."바둑은 인생의 축소판"
김진벽 '이세돌바둑학원'원장이 바둑책을 보면서 고심의 한 수를 선보이고 있다

‘21세기, 인간과 컴퓨터의 바둑대결’ 바둑애호가들과 전세계인을 경악케한 일이 벌어졌다.

“바둑인들에게는 기쁜 일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컴퓨터가 모든 분야에서 인간을 능가한다고 해도 우리세대에 바둑에서는 사람을 이기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어요.”

점차 빌딩숲으로 변화하고 있는 세종시를 바라보면서 현대도시에서 살아남은 옛것은 무엇이 있을까 생각하다 세종시 아름동에서 ‘이세돌 바둑학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진벽 원장(60)을 지난 15일 만났다. '이세돌'의 이름을 딴 학원 명은 한국기원 청주지부장 시절부터 친분이 있는데다가 이 9단이 저변확대를 위해 프랜차이즈 형태의 바둑학원을 개설토록 허용했기 때문이었다. 

21세기 바둑계 최고의 사건은 단연 슈퍼컴퓨터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 9단의 바둑대결이었다.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전 세계인의 주목을 받으며 생중계됐고 이세돌 프로는 5판중 한판을 이겨 전 세계인들을 놀라게 했다.

충남 공주 유구가 고향인 김 원장은 평생을 바둑돌을 잡고 살아왔다. ‘바둑은 인생의 축소판’이라고 하는데, 김원장에게는 바둑이 인생이고, 인생이 곧 바둑이었다.

김원장이 바둑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고향인 공주 마곡사 근처 시골마을에서 노인들이 바둑 두는 것을 어깨 너머로 본 7세때였다.

“당시에는 특별히 가르치는 곳도, 선생님도 없어서 헌책방에서 바둑책을 구해서 공부했어요. 헌책방을 뒤지다보면 일본바둑고서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옛날 바둑책을 발견하면 진귀한 보물을 찾은 것 같았어요. 지금도 150년 전에 쓰여진 일본 바둑책을 가지고 있지요.”

찻잔을 앞에 두고 바둑이야기는 계속 됐다.

“일본에도 바둑에 얽킨 역사 이야기가 많지만 백제의 개로왕은 너무 좋아했어요. 바둑 때문에 고구려 첩자 승려 도림을 가까이 두었다가 나라를 위기에 빠뜨렸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개로왕이 일본에 선물로 준 바둑판이 지금은 일본 국보로 있답니다.”

김원장의 바둑사랑은 아마도 백제 개로왕보다 더 하지 않을까하는 느낌이었다.

김진벽원장과 이세돌 프로가 머리를 맞대고 알파고와 맞설 전략을 구상하며 수담을 나누고 있다

젖과 꿀이 흐르는 세종땅, 첫마을 찾아...

그는 젊은 시절 청주에서 자리를 잡고 바둑학원을 운영했다. 한때 충북대 도서관에서 일을 하기도 했지만 역시 주업은 바둑이었다. 청주에서 바둑학원을 운영하며 전국 원장바둑대회에서 우승을 하기도 했다. 전국에서 수강생이 제일 많은 바둑학원을 운영할 때도 있었지만, 바둑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새로운 희망을 찾아 세종시로 이주했다.

“2013년 봄 첫마을로 이사 했는데, 그때는 참 어려웠어요. 아는 사람도 없고 바둑배우는 아이들도 없고. 그래서 뭔가 마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생각하다 한솔동 방범대를 창설해 방범활동을 시작했지요.”

한때 그는 한솔동 방범대장으로 통했다.

“당시 세종시는 첫마을 뿐이었는데 고흥에서 할머니와 손녀딸이 세종고 지원을 위해서 왔어요. 숙소를 구하지 못해 경찰서에서 방범대까지 연락이 왔지만, 신도시에는 숙소가 없었지요. 방범대장으로 책무도 있고 해서 할머니와 손녀딸을 우리 집으로 데려왔어요. 하룻밤을 재워 다음날 시험을 잘 쳐서 합격하게 한 일이 있었지요. 참 보람 있었고 기억이 나네요.”

점차 첫마을이 안정화 되면서 바둑강의도 다시 시작했다. 다른 마을이 생기고 초등학교 방과후 바둑교실이 활성화되면서 바둑열정도 점차 되살아났다. 바둑학원 설립을 위해 정들었던 첫마을 떠나 아름동에서 ‘이세돌 바둑학원’을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때쯤 그는 첫마을 방범대장에서 자전거순찰대 대장으로 다시 변신했다.

“세종시는 대중교통도시로서 자전거 교통분담률이 높여야 합니다. 그래서 자전거순찰대를 만들었어요. 경찰과 시민 합동으로 6개동 240명의 대원이 순찰대에 참여했어요. 어쩌다보니 또 순찰대장까지 하게 됐지요. 자전거는 저탄소 녹색환경운동이라 좋았어요.”

김원장은 자전거순찰대 대장으로 시민안전과 청소년선도활동 등의 공로로 2016년 행복청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고, 2017년에는 충남경찰청장으로부터 ‘감사패’도 받았다. 봉사활동을 하면서도 바둑사랑은 계속되었다.

“바둑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재미있지만 도담동, 고운동 주민센터에서 은퇴자들과 한담을 나누며 바둑공부를 하는 것도 아주 재미있어요.”

김원장은 도담동 바둑교실을 소개했다.

“도담동에는 영국에서 오신 분이 바둑을 배우고 있는데, 초단 정도의 실력이어요. 전북대 교수 '엔드류 핀치'라는 분인데 바둑사랑이 보통이 아니어요. 언제 와서 실력 한번 겨루어 봐요.”

엔드류 핀치 교수와 김진벽원장이 반상위에서 동서양의 바둑대결을 펼치고 있다

동양인과 서양인이 함께 바둑으로 깨닫다.

도담동 바둑교실은 은퇴자들의 천국이었다. 바둑 2500년 세월을 한자리에서 보는 듯 했다. 그것도 동서양이 함께 하는 ‘깨달음의 전당’ 같았다.

시와 문학을 좋아하는 그는 가끔씩 시문학 이야기도 섞어가며 ‘동양의 도(道)’ 바둑수업을 흥미롭게 이끌었다. 그러나 그의 본업은 역시 ‘바둑 승부사’였다.

‘인간이 다시 알파고를 이길 수 있겠느냐’는 물음에 그는 "이제 승부는 끝났다"고 답했다. 이세돌이 이긴 것이 일류역사에서 마지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2500년 바둑역사가 끝난 것은 아니고, 이세돌이 컴퓨터를 다운시켰듯이 컴퓨터바둑 역시 계속 진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바둑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바둑수 만 배우는 것이 아닌 ‘인생을 배우자’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바둑에는 '위기십결'(圍棋十訣)이라는 기훈(棋訓)이 있는데, 제1훈(訓)은 '부득탐승'(不得貪勝) 승리를 탐해서는 얻을 수 없다. 제5훈(訓) '사소취대'(捨小就大) 적은 것은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 제10훈(訓) '세고취화'(勢孤取和) 내 형세가 외롭거든 싸우지 말고 화평을 도모하라 등이다. 이런 가르침을 진정으로 깨우치는 것이 바둑의 목표이고, 알파고를 능가하는 바둑인이 되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인성과 여유 있는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강조하면서 앞으로 문맹 퇴치를 위한 야간학교 설립을 꿈꾸고 있었다.

요즘 아이들은 부모들의 욕심으로 너무나 바쁜 나날을 살고 있어 안타깝다는 것이다. 이에 "교육은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정성이 중요하다"고 했다. 평소 인생철학이 ‘사랑으로’라는 김원장은 아이들에게도 바둑과 함께 ‘탈무드’와 ‘사자소학(四字小學)’을 함께 가르친다. 또한, 1,500시간 이상 1365봉사활동을 하며 세종시를 진정으로 ‘사람 사는 세상’으로 만들어 가고 있다.

알파고와 대국 당시 인간만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묘수로 '알파고'에게 한 판을 승리한 이세돌 9단이 김원장에게 당시 상황을 설명하면서 바둑계의 발전을논의하고 있다.

 

이세돌 프로와 김진벽 원장이 아이들과 함께 미래의 바둑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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