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귀국하자던 친구는 싸늘한 주검으로...
함께 귀국하자던 친구는 싸늘한 주검으로...
  • 이종준
  • 승인 2017.06.2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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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호국 보훈의 달 맞은 월남전 참전 용사 세종시민 이종준씨

내 고향은 충청도 청주다. 신록의 향연이 펼쳐지는 계절이면 복사꽃, 능금 꽃이 만발하여 온갖 벌, 나비들이 모여들어 봄의 축제를 여는 시골이다. 여름이면 앞 숲속에서 뻐꾸기가 평화롭게 노래하고, 해질녘이면 집집마다 초가집 굴뚝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밤이면 뒷동산에서 부엉이가 지새워 울어대는 마을에서 보드라운 연둣빛 꿈을 키워가며 자랐다.

바로 이웃동네에는 나와 한날에 태어난 동일 배(同日輩)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서로 아침에 태어났다고 하는 바람에 누가 먼저 태어났는지는 모르지만 늘 사이좋게 지내며 초등학교를 다녔다. 우리는 어린 시절을 복사꽃 피는 언덕에 올라 하모니카를 함께 불며 아름다운 초록빛 꿈을 키우며 다정하게 지냈다. 고등학생이 되자 서로는 멀리 떨어져 있게 되었고, 졸업 후에는 종종 소식을 전하며 지냈던 친구와 우연찮게도 군 입대로 같은 열차를 타고 논산 훈련소로 가게 되었다.

배고프고 고달픈 훈련병이었지만 우리는 같은 내무반에서 함께 생활을 한다는 것이 서로의 위안이 되기도 했다. 건빵을 나누어 먹으며 그간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함께 훈련을 마치고 부대 배치를 받았다. 나는 후방으로, 친구는 강원도 인제 원통을 지나 최전방으로 가게 되어 서로는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군복무중 제대 10개월을 남기고 월남전에 파병되어 월남으로 가는 중, 군함 안에서 동일배의 친구를 또 만났다. 얼마나 반가운지 우리는 서로 끌어안고 누가 볼까봐 소리죽여 울었다. 백마 28연대 도깨비 부대 친구는 10중대 나는 12중대에 배치되었다. 같은 날 세상에 태어나 군 입대도 한날 했고, 월남도 같이 가게 되었으니 이런 인연이 또 어디 있을까?

이역만리 전쟁터 월남 땅에서 함께 있다는 것이 서로에겐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우리는 가끔 만날 때마다 검게 타버린 얼굴을 맞대고, “야! 우리 꼭 살아서 제대하면 복사꽃 피는 고향땅에서 행복하게 살자” 하며 굳게 약속을 하였다.

귀국을 한 달 남기고 그 친구는 치열한 작전에 임하게 되었고, 나는 대대본부 지령실에 근무를 하게 되었다. 근무 중 병사들이 전사하였다는 비보가 계속 날아들자 친구가 걱정이 되어 안절부절 하지 못했다. 전사자 명단이 날아와 확인을 하다가 나는 그만 정신이 혼비백산(魂飛魄散) 되고 말았다.

얼마 후 친구는 싸늘한 시체가 되어 의무실로 옮겨왔으며 나는 그 시신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눈에서는 피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오열하는 가슴속으로 장승곡이 파고들었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전쟁으로 청춘을 불사르다 한줌의 재로 돌아갈 친구야!  어떻게 나 혼자서 돌아가란 말이냐. 울고 울어도 손가락하나 열리지 않는 슬픈 눈시울로 홀로서 저승으로 떠나가는 널 지켜보아야만 하니. 마지막 남긴 말 한마디. 나를 위해 울지 말고 조국을 위해 울어 달랬다던 너. 내 가슴속에 응어리 되어 울음마저 가져간 친구야! 내 핏속엔 더 강한 친구의 혼이 소리치고 있었다.

몸부림치며 통곡하는 나를 뒤로한 채 소리 없이 시체는 화장장으로 떠나갔다. 친구야! 무거운 철모를 쓰고 수류탄을 가슴에 달고, 방탄조끼가 피와 땀이 배도록 정글 속을 헤치다가도. 보름달이 환한 밤이면 고국의 하얀 눈송이들을 그리워하며 별을 헤아렸던 친구야! 파편에 떨어져 나간 피 살점을 움켜쥐고, 몸부림치면서도 무사히 귀국하자던 친구. 야자수 달빛아래서 함께 먹다 남은 만나와 소중하게 간직한 소모품을 정리하다 슬픔에 쌓여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얼마 후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여 국립묘지 합동 영결식에 가족들과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할 말을 잊은 채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쏟으며 서울국립묘지에 도착하였다. 합동영결식이 끝나자 유골이 담긴 상자를 땅에 묻고 잔디를 입히자 친구의 여동생은 “오빠! 오빠!” 외치며 잔디를 손으로 쥐어뜯으며 몸부림치다 의식을 잃고 말았다. 이를 본 가족들은 한 덩어리가 되어 오열하는 모습을 보다 못해 하늘도 서러운지 구슬비도 소리 없이 내렸다.

마지막 너에게 살며시 전하고 싶은 말, 너 여기 누운 곳 이름 모를 골짜기에 밤이슬 내리는 풀숲에 아무도 모르게 우는 달빛도 있으리라.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 시절까지 점심을 모르며 배고픈 서러움을 안고 책과 씨름하던 친구야. 가난의 죄 때문에 많이 배우지도 못하고 전쟁터로 가야만 하였지. 학창시절 마지막 수학여행을 갈 때, 너 하나만을 남기고 우리만 떠나던 날, 너는 교실에서 혼자앉아 하늘나라에 계시는 아버지를 부르며 소리 내어 울던 친구. 저 하늘나라의 전쟁도 없고 배고픈 서러움도 없는 곳으로 편히 가거라. 친구를 땅에 묻고 돌아와 많은 날을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나도 고향을 떠났다.

   이종준

세월은 흘러 40여년이 되었지만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고향의 언덕에는 복사꽃은 만발하고, 봄의 향기 속에 벌, 나비들은 여전히 날아들고 있다. 높은 하늘에 뭉게구름사이로 친구의 얼굴도 살며시 떠오른다. 뒷동산 소쩍새 우는 구슬픈 저 소리로, 내 가슴 어딘지 깊은 곳에도 지난 추억들이 부서져 내린다.

내 하얗게 쉰 머릿속에는 파란 하늘빛아래 친구의 아련한 모습이 샛별처럼 찬란히 빛나고 있다. 고향의 뒷동산에 오르면 친구가 붉은 복사 꽃잎처럼 맑게 웃고 있을 것만 같아 안타까움에 아직도 가슴이 메어진다.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진 친구를 그리면서 그리움을 추억으로 묻으며 영원히 잊혀 지지 않는 그 이름을 불러 본다.

이종준씨는☞

- 청주농업고등학교졸업, 서울중앙대학교중퇴, 공무원으로 32년봉직, 충북대학교 평생교육원 5년수료

- 수상: 녹조근정훈장, 원남참전 화랑무공 훈장, 무궁화봉사왕, 자랑스러운 한국인상(대통령), 모범공무원상(국무총리), 청백리상 (대통령), 친절봉사왕상(국무총리)

- 2008년 문학미디어 수필 등단, <공저>달빛사랑. 41명작품선집. 어머니.
- 한국 국제기드온 청주켐프 전임회장ㆍ세종캠프 회장, 세종마루색소폰앙상불 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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