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와 함께 성장 꿈…첫마을로 이사”
“세종시와 함께 성장 꿈…첫마을로 이사”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7.05.30 14:17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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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안신일 한솔첫마을학교장, 삼둥이 아빠, 보험명장 등으로 두각
   안신일 씨의 꿈은 세종시와 함께 성장하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자신이 다니는 보험회사에서 4년 연속 연도대상을 수상하며 보험전문가로 탄생한 모습.

"앞으로 국토의 중심 행정도시가 될 세종시와 함께 성장하고 싶어 2012년 8월 첫마을 6단지 힐스테이트 아파트에 입주했어요.”

제2의 고향인 세종시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는 40대 리더가 있다. 올해 42세의 나이답지 않게 젊어 보이는 안신일(安信一)씨. 그는 이미 여러 차례 언론에 오른 화제의 인물이다. 3년 전에 세종시 첫마을 최초로 삼둥이(가온, 누리, 마루)의 아빠가 된 그였기에 인생역정이 궁금했다.

전주가 고향인 안신일 씨는 선친 안기덕 씨와 모친 유점례 여사의 1남1녀의 장남으로 태어나 전주에서 초, 중, 고를 나왔다. 하지만 그의 인생역정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힘겨웠다. 남들이 부러워할만큼 잘 살았던 안씨는 초등학교 6학년 어느 날, 부친이 사업이 부도나면서 쓰러지셨고, 중학 3학년 때까지 투병하다가 돌아가셨다.

사글세 보증금만 남긴 가족은 어머니가 시장에 나가 일을 하며 남매를 키웠다. 전주 신흥고에서 가정형편이 어렵다는 이유로 3년간 수업료 감면혜택을 받았던 안씨는 고교 졸업 후에 어떻게든 취업하여 집안을 일으키려고 마음먹었지만 여의치 않자 새로운 도전을 선택했다. 어머니의 고향인 대전으로 92년 이사하여 고교 졸업 후 취업한 직장에서 몇 달 동안 받은 월급으로 1톤 트럭을 구입하여 과일장사에 나섰다. 매일 새벽 대전농수산물 시장에서 싸고 좋은 물건을 사서 골목골목을 다니며 장사를 시작했다.

19세 나이로 안신일은 새벽 4시에 하루를 시작하여 밤 11시까지 과일도 팔고 신발도 팔고 닥치는 대로 팔아 돈을 벌다보니 반지하 사글세 방에서 13평 아파트로, 그리고 25평 빌라전세로 옮기게 됐고 어느새 20대 중반이 되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돈맛을 알고 난 후 욕심을 내다보니 마장이 닥쳐왔다. 1990년대 후반 IMF 등 여러 사건이 있었지만 다단계 바람의 달콤한 유혹에 빠져 모든 것을 잃게 되었다. 정직하게 꾀 안 부리고 전국을 돌며 돈을 벌었던 안씨는 한 순간에 돈을 날리며 30대를 맞이했다. 산에 올라 자살도 생각해보았지만 이대로 끝날 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자고 다짐했다.

다시 시작한 일이 택시운전이었다. 남들이 하루 12시간씩 5일 일하고 하루 쉴 때 그는 하루 20시간씩 6일을 일하고 하루 쉬었다. 악바리처럼 일한 결과, 당시 택시운전사의 보통 월급 120만원보다 많은 250만 원 정도를 벌었다. 그러나 거기까지가 한계였다. 특별한 일이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차에 보험회사에 다니는 손님을 만나게 되었다. 택시운전에서 보험회사 설계사로 입사하면서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 매월 환산실적 120만원, 월 소득 500만원, 억대 연봉의 꿈을 꾸며 사람들을 만나러 다녔다.

   첫마을 최초로 탄생한 가온, 누리, 마루 세 쌍둥이의 돌 무렵의 모습이 대한민국의 미래를 밝히는 듯 하다.

첫 번째 목표인 환산 120만원은 참으로 힘들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다가 연고도 없는 객지에서 어려운 목표였다. 무엇보다 빌딩 경비원아저씨들이 제일 무서웠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죽자고 매달리니까 첫 번째, 두 번째 목표가 1년 만에 달성되었다. 두 번째 목표 달성 이후 회사에서 제공하는 각종 교육을 들을 여유가 생겼고, 평범한 보험영업사원에서 보험전문가로 거듭나면서 2009년 실손변경이라는 결정적 시기를 만나면서 큰 열매를 맺어 억대연봉의 세 번 째 목표도 달성했다. 안신일 씨는 또한 37세의 늦은 나이에 한밭대(산업경영학과)를 졸업하여 대기만성으로 대학졸업장을 따내, 졸업식장에서 어머니가 “한을 풀었다”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안신일 씨는 현대해상에서 우수인증설계사로 인정받는 보험업계의 명장이 되어 2012년부터 2016년까지 5년 연속 연도대상을 수상하는 보험전문가로 거듭나, 지난해 서울의 한 유명출판사에서 ‘명장 안실일과 함께 하는 보험 ABC'라는 책도 발행했다.

제2의 고향인 세종에서 세종인으로 자리잡은 안씨는 2009년에 결혼한 부인 조미선씨(40)와의 사이에서 큰 아들 다솔 군(7)과 세 쌍둥이 가온, 누리, 마루군 등 4형제의 아버지로서 가장으로서 자식을 잘 낳지 않는 대한민국에서 애국자로서 건전한 가정을 영위하고 있다. 삼둥이의 이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지라는 뜻으로 ‘아름답게(가온) 세상(누리)에 중심(마루)이 되어라’고 지었다. 첫마을에 입주하면서 탄생한 삼둥이 가족은 세종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매달 1인당 5천원씩 기부하는 ‘착한 가정’ 세종시 1호로 가입해 삼둥이의 존재 가치를 더욱 부각시켰다.

안신일 씨가 현재 세종시에서 맡고 있는 일은 많다. 한솔동 첫마을6단지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전 대표인 그는 세종시 최초로 마을단위 신문 ‘첫마을 6단지 힐스테이트'를 창간했다. 올해 초 세종 신도시 아파트에서 처음으로 동네 단위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신문 ‘첫마을 6단지 힐스테이트’ 창간호를 세종의 소리에서 작업하여  총 16면, 타블로이드판 3,000부를 발행해 1,388 세대에 배포됐으며 주변 상가, 관공서 등에도 배달해 공동체 문화의 중요성과 이웃에서 벌어지는 일을 알리게 됐다.

아이들에게 창의적인 교육을 실시한 한솔첫마을학교 졸업식이 지난해 12월 열렸다.

안신일 씨는 지난해 12월에는 ‘따뜻한 돌봄, 풍요로운 배움’의 마을교육공동체, ‘한솔 첫마을학교의 교장으로 두 달간의 학사 일정을 마치고 첫마을 6단지 커뮤니티센터에서 77명의 학생의 첫 번 째 졸업식을 치렀다. 첫마을학교는 학원이나 방과 후 학교와 달리 마을에서 어른들이 아이들을 위해 공간을 마련하고 운영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서울, 경기지역 마을학교가 교육청이 중심이 된 것과 달리 마을과 교육청, 학교가 함께했다는 점도 전국에서 유일하다. 1기 마을학교 학생들은 한솔동 5개 학교(참샘초·한솔초·미르초·한솔중·새롬중)에 재학 중인 학생들로 이뤄졌다. 첫마을학교 교사들 역시 마을 주민과 자원봉사자들로 20명이 임명되어 참여했다. 이들은 매주 골프반, 탁구반, 보드 게임반을 열어 재능기부로 수업을 진행했다. 동네 형, 누나, 동생, 마을 주민들이 모여 학교를 꾸려 나갔다.

안씨는 한솔동 주민 대다수가 삶의 질 향상과 이웃 간의 소통을 위한 문화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점에 착안하여 2014년 2월 뜻있는 주민과 함께 한솔동복합커뮤니티센터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추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 결과 400억 원의 세종시 예산이 세워져 올해 실시설계에 들어가 내후년 봄에 센터가 탄생될 예정이다.

좌우명이 ‘지혜롭고 겸손하자! 겸손하며 당당하자!’인 안신일 씨가 가는 곳마다 아이디어가 번쩍인다. 세종시를 사랑하고 세종시와 함께 꿈을 꾸며 동분서주하고 있는 안신일 씨는 에너지가 충만한 사람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힐링을 주고 있다. 안신일, 그는 세종시에서 필요한 활기차고 명랑한 이 시대의 리더였다.

   어머니를 모시고 삼둥이 등 4형제와 온 가족이 작년 추석 명절을 화기애애하게 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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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인 2017-06-05 13:24:00

훌륭한 인생을 사셨군요, 대기만성형 인간승리를 달성할 수있는 분입니다.

한솔인 2017-05-31 11:05:28
재미있는 인생이군요. 열심히 살면 좋은 일이 온ㄷㅏ는 걸 보여주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