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혁명가 예수, 성경 행간에서 만나다
마음의 혁명가 예수, 성경 행간에서 만나다
  • 임영호
  • 승인 2016.11.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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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호칼럼]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의 당대 최고의 예수 설명서 '예수'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
2000여년의 역사 속에서 인간 예수만큼 세상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 무엇이 있기에 매력적일까? 과연 인간 예수는 어떤 분인가? 진지하게 모색하고 경건하게 탐구하고 싶었다. 얼마 전 연세대 김형석 명예교수(1920~)께서 ‘예수’에 대한 책을 펴냈다. 예수는 2000년 전에 존재했던 분이지만, 그 책은 성경 행간에서 숨어있는 예수를 만날 수 있게 했다.

예수는 로마 식민지하의 유대인이었다.
예수가 살던 시대에 로마제국은 유다 민족이 살던 팔레스티나를 점령하고 있었다. 로마 황제로부터 그 지위를 인정받은 헤롯 안티파스왕과 이들을 다스리는 유다지역의 총독 빌라도가 있었다. 갈릴리 주민들은 안티파스왕이 로마황제에 아첨하는 것을 반기지 않았고 오히려 적의와 불만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독실한 유대교 신봉자였던 그들은 배타적인 감정으로 로마의 풍습이나 종교를 업신여겼고, 그 감정은 반로마행동으로 나타났다. 갈릴리 지역이 열심당(熱心党)이라고 불리는 반로마 무장 세력의 온상지가 된 것도 이런 이유이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의 가장 사랑하는 제자였다.
이때, 광야에 예언자 세례자 요한이 나타났다. 그는 하느님 나라가 도래할 날이 가까우니 회개하라고 외쳤고, 세례라고 부르는 특이한 의식을 행했다. 나사렛 예수도 일과 가정을 떠나 이 요한공동체에 들어가려했다. 예수는 예언자 요한의 설교에 마음을 끌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예루살렘의 사제계급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신봉하는 유대교를 못마땅하게 생각하고, 무엇인가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성서에 의하면 예수는 대략 28년 2월 경 요르단 강에서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는다. 요한은 자신이 구세주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구약시대부터 사람들 사이에는 메시아의 출현에 앞서 그의 사자(使者)가 출현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요한은 자신을 일컬어 이 사자라고 했던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과 의회를 지배하고 있는 유대교 주류파인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를 규탄하는 세례자 요한의 목소리에 예수는 공감했다. 예루살렘 귀족사제들로 구성된 사두가이파는 성전을 관리한다는 특권에 매달려 선조로부터 계승한 제의(祭儀)적인 일만을 완고하게 고집할 뿐, 민중으로부터 완전히 유리되어 있었고, 유다 총독과 타협하여 특권을 유지하고 있었다. 바리사이파는 사두가이파보다 민중과 밀착되어 있긴 했지만, 율법해석에 지나치게 매달렸다.

예수가 전하는 하느님은 사랑의 하느님이었다.
예수는 요한의 제자였지만 달랐다. 요한이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아버지의 이미지로, 분노와 심판, 벌의 이미지였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닥쳐올 그 징벌을 피하라고 누가 일러주더냐?
너희는 회개했다는 증거를 행실로써 보여라.”

세례자 요한이 전하는 하느님은 세상의 종말과 심판을 배경으로 분노하고 벌하는 구약의 하느님이었다. 예수는 하느님에게 물었다. “그것이 참다운 하느님의 모습일까?” 그는 나사렛마을의 비참한 서민생활을 알고 있었고 병자나 불구자들의 한탄도 알고 있었다. 하루하루의 양식을 구하기 위해 땀 흘리는 것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하여 어쩔 도리가 없는 사람들의 나약함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서민들이 추구하는 하느님이 분노하고 심판하고 벌하는 존재만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예수가 생각하는 하느님의 이미지는 다른 것이었다. 온화하고 어머니 같은 이미지였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

예수는 요한공동체의 규약을 따르면서 요르단 근처의 산에서 40일 동안 단식과 기도 생활에 임했다. 그는 유다 광야에서 깨달았다. 요한공동체는 사람들에게 회개와 하느님의 분노를 전할뿐 사랑은 없었다. 그는 하느님은 애처로운 삶을 사는 그들에게 사랑을 베풀기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에게 하느님의 이미지는 인간의 비애를 아는 사랑이었다.

예수는 복음을 전하고 소외된 자의 절망을 감싸 안아주었다.
문제는 사랑의 하느님을 어떻게 증명하고, 하느님의 사랑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알리는 가에 있었다. 가혹한 현실에서는 사랑의 하느님보다는 분노의 하느님, 벌하는 하느님을 생각하기 쉽기 때문이다.

세례자 요한의 외침은 심판이나 벌, 분노가 암시 되었지만 예수의 메시지는 복음이었다. 예수의 복음(福音)은 문자 그대로 매우 반갑고 기쁜 소식으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다가왔으며 하느님이 사랑하심을 이야기했다.

당시 그의 말에 기울인 사람은 사제나 율법학자가 아니라 호숫가에서 생활하는 어부들이나 그 가족이었다. 그는 호숫가 마을의 버려진 병자나 불구자, 멸시받던 세리나 창녀 같은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위로해주고 병을 고쳐주는 기적도 행했다.

바리사이의 집에서 창녀의 눈물을 보고 위로를 해주었고, 군중 속에 있던 여자가 예수의 옷자락을 만지는 행동에서 그녀의 모든 괴로움을 알았다. 예수는 인간에게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가난과 병이 아니라 가난과 병으로 인한 고독과 절망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의 사랑은 군중들로부터 외면당했다.
예수는 또 하나의 사실도 알았다. 현실에서의 사랑의 무력함이다. 예수는 그것을 고뇌했다. “너희는 기적이나 신기한 사실을 보지 않고서는 믿지 않는다.” 어쩌면 사람들은 예수에게 사랑이 아니라 징표와 기적 밖에 구하지 않았다는 슬픈 결말을 상상하게 된다. 예수는 오직 한 가지, 사랑의 하느님을 이 현실 속에서 증명하는 일 밖에 생각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그를 엘리야 같은 인물, 혹은 로마를 팔레스타인에서 몰아내는 민족주의자, 시몬·베드로·유다와 같은 열심 당원처럼 무력행위를 옹호해주는 사람, 여자나 노인, 병자들에게 능력을 보여 치료해주는 성자(聖子)로 생각하였다. 예수께서는 지상의 메시아로 떠받드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나의 나라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산상설교에서의 예수의 말씀은 군중들을 실망시켰다.
과월 절이라는 민족적인 감정이 고조되는 축제를 며칠 앞두고 산상설교에서 산에 모인 수많은 군중에게 말했다. “하느님 종의 사명은 가난한 사람, 슬퍼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병든 사람을 위로하는 것이다”라고 말하고, 원수를 사랑하는 것, 보답을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 용서하는 것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로서 할일이 아닌가라고 말하며 인간으로써 할 수 없는 사랑을 호소하였다.

군중들은 동요했고 환멸 했다. 욕을 해댔고 분노의 절규를 하는 이도 있었다. 자신들의 민족적인 절규에 대해 이렇게 대답을 들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에 대한 민중들의 환멸과 이반은 이 날부터 시작되었다. 제자들조차도 동요했다. 호숫가 마을에도 냉랭한 공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남자, 무력한 남자라며 조롱하고 비웃었다. 어디에도 다윗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유다인의 왕이라는 칭호도, 메시아라는 칭호도 없었다. 사실 사랑은 직접적인 어떤 도움이 되지 않는 무력하기 때문이다.

정국은 불안했고, 군중들은 봉기를 두려워했다.
예수가 잡혀서 처형될 즈음, 빌라도의 후원자 세야누스가 티베리우스 황제와의 싸움에서 패하여 로마에서 체포되는 중요한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건은 유다 총독 빌라도와 유다의회에 심각한 영향을 초래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까봐 불안해했다. 그들은 유다에서 봉기가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으로부터 빌었다. 때마침 이 시기에 바라빠라는 자가 반로마봉기를 일으켰다. 그 봉기는 바로 진압되었고 바라빠는 체포되어 예루살렘으로 압송되었다.

상황은 1년 전과 같았다. 과월 절을 앞두고 순례자들은 예수를 민족지도자로 떠받들고 자신들의 기대를 그에게 걸었다. 유대인의 대사제들은 예수를 내세워 봉기하지 않을까 두려워했고 이 불미스러운 사태가 일어나 로마군인 들이 와서 온 민족을 멸망시키는 것보다 한사람이 백성을 대신하여 죽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예수의 성전에 대한 중대한 사건이 발단이 되었다.
예수가 예루살렘에 온지 3일째 되는 수요일, 상인 추방사건이 일어났다. 예수는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고 있던 사람들에게 나가라고 했다. 환전상의 탁자와 비둘기 장사의 의자를 뒤엎고, 이곳은 기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예수는 성전보다는 한층 성스러운 것이 있다고 느꼈다. ‘그것은 사랑이다’라는 점을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였다.

예수는 성전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지금 너희가 성전을 바라보고 있지만 저 돌들이 어느 하나도 자리에 그대로 얹혀 있지 못하고 다 무너지고 말 날이 올 것이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예수가 세우겠다고 한 성전은 정신적인 의미의 ‘사랑의 성전’으로 건물로서의 성전은 아니다. 성전을 모독하고 멸시하는 것은 유다 율법의 가장 큰 배역행위이고, 사두가이파나 바리사이파 의원들이 덮어둘 수 없는 모욕적인 행동이었다.

 
유다는 예수를 배반하고 제자들은 두려워 도망쳤다.
예수는 목요일 날 최후의 만찬을 했다. 예수의 생애 중 제자들에 대한 사랑이 가장 절정에 이르렀다. 이 만찬석에서 예수는 열한제자의 발을 씻어 주면서 너희도 나를 본받으라고 가르쳤다. 한편으로 예수의 마음은 괴로웠다. 이런 성스러운 자리에 가롯유다가 끼어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예수는 조용히 말했다. 내가 진정으로 말한다. “너희 중에 한사람, 곧 나와 함께 먹고 있는 사람이 나를 배반할 것이다.”

만찬을 끝마친 후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그의 일생 중 가장 고통스러운 순간을 보내면서 기도를 했다. 가야파는 민중이 예수를 저버린 사실을 알고 긴급회의를 소집했다. 예수를 체포해도 폭동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대사제 가야파는 성전 경비원를 게쎄마니로 보냈다. 가롯 유다와 약속한 대로 예수의 어깨에 손을 얹고 입을 맞추자 성전 경비원들이 예수를 체포했다.

이 체포는 싱거웠다. 누구하나 경비원에 둘러싸인 예수를 돕지 않았다. 제자들도 뿔뿔이 도망쳤다. 베드로가 이후 자책감과 굴욕감 때문에 통절히 울었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다만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칼자루를 뽐아 대사제의 종, 말고를 내려쳐 한쪽 귀가 땅에 떨어졌다. 유다도 예수가 사형선고를 받았을 때 그들로부터 받은 은전 서른 닢을 되돌려 주려했으나 가야파가 냉정하게 거부해서 가야파 관저의 뜰에 그 동전들을 내던지고 성 밖으로 나가 스스로 목매달아 죽었다.

정치범으로, 이단자로 유죄를 선고했다.
성서에 의하면 이날 밤중에 재판과 판결이 이루어졌다. 예수를 고발한 죄목은 성전 모욕죄였다. 성전은 야훼하느님의 말씀을 모신 가장 신성한 곳이다. 복음서에 의하면 성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제자들에게 성전은 다 무너지고 예수께서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 말이 문제가 되었다. 그러나 판결을 내리기에는 증거가 부족했다. 다시 죄ᆞ목을 찾았다. “그대가 그리스도인가?” “그렇다”고 말하면 유다인의 왕이라는 의미와 정신적인 구세주라는 의미가 다 포함되어 있어 정치범으로 빌라도에게 고소할 수 있고, 하느님을 모독한 자로 처벌할 수 있는 것이다.

가야파 질문은 교묘했다. 예수는 이를 간파하고 어떤 말을 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신은 ‘구세주’라고 말했다. 가야파는 더 이상 증언은 필요 없다고 하며 유죄를 선고했다.

빌라도는 과월 절 특사로 예수를 염두에 두었다.
과월 절의 전날이라서 빌라도는 오늘과 내일이 무사히 또 조용히 지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빌라도는 예수에게 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신앙적인 시기와 질투심 때문에 종교 실력자들이 제거하려는 속셈임을 알았다. 빌라도는 유다의회 의원에게 말했다. “보다시피 이 사람은 사형에 해당되는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 과월 절의 특례인 특사(特赦)를 그에게 적용하려고 했다. 축제기간 동안에 죄인 하나를 석방할 수 있는 것이다. 빌라도는 이것을 이용하여 예수를 풀어주려고 했다.

군중들은 혁명가 바라빠를 선택했다.
군중들은 무력한 사랑을 설파하는 예수보다 현실적인 혁명가인 바리빠를 석방시키고자 했다. 빌라도는 자신의 후원자인 세야누스가 로마에서 권력을 잃은 후 그 전처럼 방약무인한 태도를 취할 수 없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민족주의 감정이 폭발하기 쉬운 과월 절에 소동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랬다. 바리빠를 지지하는 애국주의자나 열심당원들이 만일 그를 구출하기 위하여 폭동을 일으킨다면 유다 의회와 가야파, 빌라도조차 세력을 잃을지 모른다.

빌라도는 군중에게 물었다. “누구를 놓아주면 좋겠느냐? 바라빠냐, 예수냐?” 군중들은 바라빠라고 응답했다. 두 번째로 물었다. “그리스도라는 예수는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라고 군중들이 대답했다. 빌라도는 예수 처형의 모든 책임을 유대인에게 전가하기 위해서 처형 방법까지 군중에게 물었다.

십자가형은 예수를 종교적 이단자가 아니라 반로마운동을 한 정치범으로 처형하려는 것이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가야파의 계산이다. 정치 혁명가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지만 예수처럼 정치를 무시하고 사랑을 설파한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서에 의하면 유대인의 대사제들은 빌라도에게 가서 ‘유다인의 왕’이라 쓰지 말고 ‘자칭 유다인의 왕’이라고 써 붙여야 한다고 말했다. 빌라도는 “한 번 썼으면 그만이다”고 거절했다. 빌라도는 유다 의회에 대한 불편한 자신의 심기를 드러냈다.

아무런 기적도 없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
4월 한낮, 예수는 두 명의 죄수와 함께 어깨에 십자가를 지고 걸었다. 70kg나 되는 십자가는 그의 야윈 어깨를 파고들었다. 제자들은 신변의 위험을 느끼고 뿔뿔이 흩어졌다. 그들은 예수와 한패로 여겨 고발될까봐 두려워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후 3시, 그는 돌연 새처럼 떨어뜨리고는 있는 머리를 쳐들고 부르짖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십자가에 달린 그를 구원하지 않고, 기적을 베풀지 않는 아버지이신 하느님에 대한 그의 슬픔과 하소연, 절망을 나타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의 이 말에서 절망을 읽었다. 예수는 숨을 거두기까지 아무런 기적도 행하지 않고, 행할 수도 없었고, 하느님 역시 아무런 도움도, 구제의 손길도 베풀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예수는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였다.

사람들이 왜 예수에게 등을 돌렸을까?
갈릴리 사람들은 그를 민족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삼고자 했고, 반 로마운동의 메시아로 떠받들고자 했다. 그들의 기대에 예수는 부응하지 않았고, 도리어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자는 행복하다. 우는 사람은 행복하다”라고 말함으로써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렸다. 사람들은 기적만을 요구하려 했고, 그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때 배신당했다고 생각하며 환멸을 느꼈던 것이다. 그날부터 예수는 능력 있는 자가 아니라 무력한 예수로 바뀌었다.

예수의 시신은 천에 쌓여 한 의원 소유의 바위로 된 무덤에 묻혔다. 막달라 마리아와 제자 요셉의 어머니가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예루살렘 주위에서 몸을 숨기고, 예수 운명을 지켜본 제자들은 예수가 무력하게 죽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 때 고개를 떨어뜨리고 각자 자기 고향으로 되돌아갔다.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의 몸에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아침 해가 뜨자마자 그들이 무덤으로 가보니 커다란 돌이 이미 굴러져 있었다. 무덤 안에는 웬 젊은이가 흰 옷을 입고 오른편에 앉아 있었다. 그는 예수는 다시 살아 나셨고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니 거기서 그 분을 만나라고 말했다. 여자들은 무서워 도망쳤고 두려워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다.

겁쟁이 제자들은 최후의 말씀에 충격을 받았다.
부활은 역사적 사실인가? 겁쟁이였던 제자들이 어떻게 굳건한 사도가 될 수 있었을까? 예수가 어떤 이유로 제자들로부터 신격화 되었을까? 그들은 우리들과 다름이 없었다. 신념이 부족하고 육체적인 공포로 스승도 희생시키는 비겁한 성격이었고 자만심과 세속적 야심이 강한 보통의 인간이었다. 분명히 예수를 저버린 제자들은 통렬한 회한과 굴욕과 수치심을 느꼈을 것이다. 그들은 예수를 저버리고 부인함으로써 체포를 면하고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어쩌면 제자들이 목숨을 부지하는 대가로 예수는 처형된 것이고 제자들을 살리기 위해 희생제물이 된 것이다. 그들은 예수가 자신들을 미워하고 노여워하며 죽을 거라고 상상했다. 예수의 최후의 말은 제자들의 상상을 초월했다.

“아버지, 저 사람들을 용서하여 주십시오.
그들은 자기가 하는 일을 모르고 있습니다.
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 세 마디 절규는 제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예수는 원한의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제자들은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말 하느님의 아들이었구나.”라고 외쳤다. 자신들의 비열한 배신행위에 대하여 노여움이나 원한을 품지 않았고, 도리어 사랑으로 대할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예수의 비참한 죽음은 제자들에게 부활로 나타났다.
이사야서 53장을 떠올렸다. 그들은 무력한 예수,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예수의 비참한 죽음은 제자들에게 근본적인 가치전환을 촉구했다. 가야파 관저에서 의원들과 사제들 앞에서 예수를 부인한 자책감, 굴욕감, 자기변명은 통곡으로 바뀌었다. 그들은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슬피 울었을 것이다.

예수는 불가사의한 존재였다. 그의 생애는 사랑의 삶이었고, 사랑만으로 살았기 때문에 제자들의 눈에는 무력한 존재로 비쳤다. 예루살렘 근교에 숨어있던 제자들이 무덤이 텅 비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다. 그 사건 때문에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제자들은 부활한 예수보다 항상 자신들과 같이 있으면서 힘써 주시는 주님을 느끼며 깨닫기 시작했다. 예수는 자기대신 성령이 너희를 이끌 거라고 말씀하셨고, 지금 그것이 실증되고 있는 것이다.

과월 절이 지나 50일 된 오순절에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집회를 가졌다. 베드로의 연설을 들은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인정하였고, 새로운 신앙과 삶을 기약했다. 베드로는 자신에 찬 자세로 모든 죄를 회개하고 죄 사함을 받은 뒤 세례를 받고 성령을 받으라고 가르쳤다.

제자들은 순교의 길을 택하고 성령의 역사를 이루었다.
예수와 같이 제자들은 자신들의 죽음이 하늘나라의 건설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들 대부분은 예수의 뒤를 이어 순교의 길을 택했다. 예수와 같이 죽어 예수와 더불어 영원히 살 것을 믿고 있었고, 그것이 하늘나라를 위한 사명임을 깨닫고 있었다. 베드로는 61년경 로마에서 순교했고, 그의 동생 안드레는 그리스의 파트라스에서 굶겨 죽이는 형벌을 감수했다. 시몬이라는 제자는 스아닐에서 예수를 증거하다가 살해당했으며, 바돌로매는 알바나에서 산채로 살갗이 벗겨진 채 십자가형을 당했다. 나이가 많은 요한은 밧모 섬에서 기름 가마에 넣어져 순교했고,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책임자로 있다가 살해당했다. 의심이 많은 제자로 알려졌던 도마도 동쪽으로 전도여행을 떠났다가 관에 넣어진 채 톱으로 켜져 죽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예수의 진정한 부활은 이 비겁하고 무능했던 제자들의 행적과 죽음이 아니었을까? 예수의 생애는 무덤과 더불어 끝나는 것이 아니라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 것이다. 부활은 성령의 역사로 이어졌고 기독교는 오늘날까지 생명의 흐름을 이어온다.

예수의 진정한 가치는 무엇일까? 예수는 마음의 혁명가이다. 우리에게 부끄러움을 가르치고 인간의 욕망 덩어리에 소금을 뿌리기 때문이다. 이전에 통치자나 백성의 눈에 전혀 중요해 보이지 않았던 미덕들을 옹호한 것이다. 성공과 실패를 윤리적이고 비물질적인 방식으로 재규정했다. 가난이 선과 공존할 수 있고, 초라한 직업이 고귀한 영혼과 공존할 수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354~386)는 신국(神國)에서 로마인들이 높이 평가하는, 돈을 모으고, 별장을 짓고, 전쟁에서 이기는 것들은 기독교적 관점에서 하찮은 것이며, 이웃을 사랑하고‘ 겸손과 자선을 실행하고, 하느님에게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기독교적으로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는 열쇠라고 말했다. 세속에서 왕일지라도 천국에서는 하인일 수 있다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희망을 주었다. 예수는 세속적 위계를 비틀고 뒤집어 놓았다.

 
     
 
 
임영호, 대전 출생, 한남대, 서울대 환경대학원 졸업, 총무처 9급 합격, 행정고시 25회,대전시 공보관, 기획관, 감사실장, 대전 동구청장, 18대 국회의원, 코레일 상임 감사위원(현),이메일: imyoung-ho@hanmail.net

이 책 《예수》는 기독교이든 비기독교이든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내용들이지만, 이해하기 쉽게 성경의 행간을 설명하여 당시 상황을 상상할 수 있어 마음에 감흥이 일어난다. 성경이 딱딱하다고 느낀다면 일독을 권한다. 덤으로 철학자인 저자가 성경을 어떻게 이해하나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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