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만드는 게 천직입니다"
"지게 만드는 게 천직입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6.06.15 08: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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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지게 장 조태식씨, "55년째 수 작업으로 전통지게 만들어"

   지게 만드는 일을 천직으로 여기고 있는 조태식씨는 "한 분이라도 찾는 사람이 있으면 계속 만들 예정"이라며 "그동안 지게 쟁이라는 소리를 들으면서 이어온 전통인 만큼 이제는 사회에서 제대로 평가를 해주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전 세계에서 지게는 대한민국 밖에 없습니다. 55년 평생을 한결같이 지게 만 드는 일에 전념해왔고 전통을 지키고 있다는 데 보람을 느낍니다.”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할아버지의 어깨너머로 보았던 지게 만드는 일에 뛰어들었던 조태식씨(65,조치원읍 명리)는 “천직으로 여기고 있다”는 말과 함께 3대를 이어온 일에 만족감을 표시했다.

이제는 생활 도구로써 역할보다는 소품, 또는 전시용과 행사용으로 많이 사용되는 지게를 만들면서 “모든 과정을 손으로 만들어 고유한 제작 방법을 고스란히 지켜오고 있다”고 자랑을 했다.

옛 연기군에서 오지인 전의면 다방리에서 태어난 그는 1962년 금사초등학교 졸업 후 곧바로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아래 두동생의 학업을 위한 장남의 희생이었다. 당시로서는 흔한 일이었다.

할아버지에 이은 아버지의 지게 장수가 13살 어린나이에 물려받은 직업이었다. 지게를 만들고 파는 일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먹고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육체적인 고통을 이겨내게 만들었다.

“지게 5개에다 바소쿠리 10개를 등에 메고 새벽에 출발해서 조치원 목물전(현 축협자리, 나무로 만든 제품을 파는 장터)에 도착해서 자리를 펴면 아침 9시쯤이 됩니다. 그 때부터 파장이 되는 오후 6시까지 지게를 팔고 걸어서 다시 집에 도착하면 컴컴한 밤입니다.”

이런 생활은 연기군 내 닷새 장을 돌아다니는 것은 물론 인근 공주 장까지 봐야 겨우 먹고 살 수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장돌뱅이 생활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오직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참고 참았다.

“한번은 장사를 다하고 집에 오는 길이었습니다. 너무 늦어 금강 주위가 어두워 호롱불로 불을 밝히며 오다가 그만 징검다리를 건너다가 넘어져 다리를 다쳤습니다. 병원비가 없어 아버지께서 나무를 해 다주고 치료비를 대신할 만큼 어려웠습니다.”

그의 지게 만드는 생활은 군 제대 후부터 본격화됐다. 당시만 해도 지게가 농산물을 수확하거나 이동하는 유용한 수단이었기 때문에 장날 매출이 만만치 않았다. 생활이 어느 정도 여유가 있자 가게도 사고 결혼도 했다. 하지만 ‘꽃피는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경운기에다가 트랙터 등 각종 농기계가 나오고 농로가 확장되면서 지게 수요가 급속히 줄어든 게 이유였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시작한 것이 시장을 넓히는 일이었다. 장사가 안되다 보니 지게 만드는 사람도 줄어들어 수익은 감소했지만 시장을 넓어졌다. 조씨가 만드는 지게가 전국 시장에서 팔리게 됐다.

“부여, 논산, 유성 안동, 영주, 풍기, 체천 등 각지에 지게를 비롯해서 싸리 비, 수수 비 등 여러 가지 제품을 공급했습니다. 당시에는 흔하게 있었던 상품이지만 프라스틱 제품이 쏟아지면서 이제는 전통을 지키는 일이 되었습니다.”

조치원에 조광상회를 경영하면서 자신이 만든 제품을 판매하는 조씨는 지금도 틈만 나면 지게를 만들고 있다. 지게에다 짚으로 된 멜빵, 지게 작대기, 바소쿠리까지 만들려면 하루 꼬박 걸린다.

팔리는 곳도 많지 않기 때문에 자동화는 있을 수 없다. 아버지에게서 배운대로 전통방식을 지키면서 손으로 깎고 홈을 파고 짚을 엮어서 만든다.

   조씨가 만든 빗자루와 어린이 용 지게
“예전에는 지게를 만들기 위해 산에서 나무를 베다 벌금을 문 적도 자주 있었습니다. 지금은 간벌한 소나무와 죽은 나무들이 많아 손 쉽게 재료를 구할 수 있습니다. 바소쿠리용 싸리나무는 도로변에 있는 걸 베어주면 오히려 도로관리업체에서 좋아합니다.”

요즘 지게는 주로 방송국 소품용이나 행사장 장식용으로 많이 쓰인다. 민속촌, 박물관, 문화재 행사 등이 주요 고객층이다. 낙동강 전투를 재현하는 장면에 지게에다 피난 보따리를 지고 떠나는 긴 행렬에 조씨의 지게가 사용되기도 했다. 아들 조대운씨(34)가 아버지의 기술을 4대째 대물림하면서 명맥을 이어가게 됐다.

조태식씨는 “지게를 찾는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계속 전통을 고수하면서 만들겠다” 며 “될 수만 있다면 어려움 속에서 전통을 이어가는 저 같은 사람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워 줄 수 있는 향토문화재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연락처) 010-5431-31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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