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님, 차 한잔 주세요"
"서장님, 차 한잔 주세요"
  • 심은석
  • 승인 2015.09.3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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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은석칼럼]우범자는 더불어 사는 우리의 이웃

   심은석 영동경찰서장
산과 들에 가을이 가득하다.
높이 떠오른 파란 하늘에서 금방 물이 쏟아질 듯 눈부신 가을 어느 날, 영동경찰서 광역 유치장에 수용 되었던 사람들이 예고도 없이 서장실에 찾아 왔다. 허름한 복장에 배낭을 메고 무작정 사무실에 와서 고맙다면서 차 한 잔 달라고 하였다. 두 달 전 에 구속 되었던 유치인이었고 유치장 안에서 며칠 전 피자도 나누어 먹으며 알게 된 유치인들이었다. 두 분 모두 전과가 십 수회 된다. 우리 경찰서에 구속된 이유는 절도사건 이었지만 이번 사건은 행위가 경미하여 1심 판결에서 모두 집행 유예를 선고 받고 법정에서 석방된 상태였다.

20년 동안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출소 한지 두 달 만에 다시 절도로 영동경찰서에 구속된 A 모 씨는 자기 얘기를 오랫동안 하였다. 그동안 자기 얘기를 들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서 무척 즐거워했다. 오랫동안 그 사람의 기구한 인생 이야기가 가슴을 저려 왔다. 지금까지 20년을 교도소에서 보내고 이제 46세인데 아무도 자기에게 신경 쓰지 않았는데,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낸 2달 동안 자신이 교정 되었다고 하였다. 그곳에서 인간적인 정을 느끼고 사람대접을 받았다며 고마워했다.

유치장에 있는 동안 6통의 참회와 감사편지를 보내오기도 하였었다. 태어나자마자 고아원에 보내져 지금도 돌보아 줄 가족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주거지 보호 관찰소에 신고 해야 하므로 서울로 간다고 하면서 떠났다. 아무리 쾌적한 유치장이라도 구금에서 석방된 자유의 기쁨을 얼굴에서 보았다. 부디 어디서든지 건강하고 행복하게 훌륭한 사회인으로 살아가길 기원할 뿐이다.

영동경찰서는 전국에서 2개 남아 있는 구치소 대용 감방 역할을 하는 유치장을 관리 하고 있다. 하루 평균 20여명의 유치인들이 수용 되어 있다. 유치인 인권 보호와 처우 개선도 중요 하지만 재판 출석이나 병원 진료에 따른 호송 업무도 큰 부담이다. 작년에는 광역 유치장 평가에서 우수 유치장으로 포상을 받았다. 직원들이 사정이 딱한 유치인들에게 생필품을 사 주거나 인간적인 배려에 정성을 다하고 있다.

며칠 전 서울에서 ‘트렁크 시신’ 사건의 범인이 구속됐다. 그는 30대 여성을 납치해 살해한 뒤 시신을 차량 트렁크에 넣은 채 도피행각을 벌였다. 그는 한 빌라 주차장에서 차에 불을 지르고 시신이 훼손 했다. 전과 22범인 그가 저지른 범죄의 잔인함과 엽기성에 놀랐다. 스무 살 때부터 절도·강도 등의 혐의로 교도소를 들락거리면서 사회와 단절하고 살았다고 한다. 18년 복역동안 면회 한 번 없었고, 그동안 무차별 증오를 키웠다고 한다. 28명을 증오 하면서 작성했다는 메모지를 소지하고 있으며 치밀하고 흉포한 범죄에 경악했다.

 전문가들은 김씨 같은 은둔형 우범자의 범죄 대책이 필요 하다고 한다. 증오와 분노로 일그러진 우범자는 위험하다. 전국에는 4만670여 명의 우범자들이 있지만 이 중 10%가량은 주소가 일정치 않고 소재가 확인 되지 않는다고 한다. 우범자들은 살인이나 성폭력, 방화, 강도, 조폭, 마약 등 재범의 우려가 높은 범죄자들로, 경찰은 재범 위험성에 따라 중점관리 및 첩보수집, 자료보관 등으로 분류·관리하고 있다.
이들이 소재 불명 되면 추적이 힘들다. 우범자에 대한 첩보수집활동 강화와 대상자에 대해 협조의무를 부과하는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국가 인권위는 우범자라 하더라도 개인 정보 수집 활동은 개인의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어 법률로 규정해야 하고 ‘우범자 첩보수집 등에 관한 규칙’은 우범자에 대한 명확한 법규제정을 권하고 있다.

경찰은 경찰관 직무 집행법등을 근거로 범죄 예방을 위해 가급적 직접 대면을 피하고, 주변 사람을 상대로 탐문이나 비접촉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으나, 자칫하면 주변 사람들에게 관련 사실이 알려져 민원을 야기 할 수 있다. 정확한 정보 수집과 관리에는 한계가 있어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 에 없다. 특히 은둔형 우범자에는 어려움이 많다.

자칫 관리 과정에서 우범자와 주변인의 신상이 알려지면 인권침해 우려가 있다. 물론 범죄인의 교정과 교화행정을 맡은 법무부에 일차적인 우범자 관리 업무가 주어져 있다. 1988년 12월에 제정된 보호관찰법에 따라 특정 우범자는 관리 되고 있다. 법무부에서 전국17개의 보호 관찰소와 40개의 지소를 통해 갱생보호 업무와 가정폭력사범, 성폭력사범 등에 대한 보호관찰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보호관찰을 조건으로 선고유예,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자, 가석방자, 소년법에 따른 보호처분을 받은 자 등을 대상으로, 선도를 통해 건전한 사회 복귀를 촉진하고, 효율적인 범죄예방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 보호 관찰 업무가 증가 하고 전자 팔찌를 훼손하거나 도주하는 사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법무부 산하 교정본부에는 전국 교도소에 4~5만 명의 구속자가 수용 되어 있다. 약 30~40%는 재범이나 전과자라고 한다. 1차적으로 교정 시설에서 완전히 교화 되고 사회 적응 훈련이 되면 바람직 할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교도소를 들락거리며 전과가 쌓이고 범죄 수법의 체득과 고도화로 악화되거나 복역기간 간접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기도 한다.

어느, 닐 서장실에 찾아온 한 남자는 경찰서 유치장에 있는 동안 오히려 사람대접을 받았다며 감사의 표시를 했다. 교정은 작은 곳에서 시작된다.<사진은 영동경찰서 4대악 근절 캠페인 전경>
그래서 경찰과 교정당국이 우범자에 대한 체계적인 보호 관찰 활동과 정보를 공유, 긴밀한 협업이 강력범죄를 예방 할 수 있다. 그리고 지역사회와 사회단체에서 이들에 대한 사회 적응이 이루어지도록 관심과 배려가 필요 하다. 특히 종교 단체의 적극적인 교화 노력이 필요 할 것이다. 많은 수형자들이 사회와 격리된 기간 동안 종교를 받아들이고 교화 되는 것을 보면서 참 된 종교적 사명을 생각하게 된다.

안전과 안심, 생명의 존엄과 행복의 가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무시는 강력범죄 환경을 만든다. 특히 우범자들에 대한 사회적 교화와 배려, 더불어 사는 지혜를 발휘할 때다. 누구든지 천부의 인권과 인간의 존엄성을 가진 인격체이다. 우범자나 범죄인이나 모두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소중한 우리의 이웃이다.

경찰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범죄의 선제적 제압과 예방활동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교정당국과 보호 관찰소와도 긴밀히 협조 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사회 공동체가 우범자에 대한 편견으로 이들의 분노를 키울까 우려 된다. 이웃을 존중 하는 배려와 나눔의 실천이 행복하고 안전한 공동체의 시작임을 믿는다.

<필자 심은석은 초대 세종경찰서장으로 역임하고 현재 영동경찰서장으로 재직 중이다. 공주 출생으로 공주사대부고, 경찰대학 4기로 졸업하고 한남대에서 행정학박사를 취득했다. 지난 7월 시집 '햇살같은 경찰의 꿈'을 출판했고 한국 문학신문 편집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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