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이 사라진 조치원, 안타까워요"
"추억이 사라진 조치원, 안타까워요"
  • 김중규 기자
  • 승인 2015.08.11 08: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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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30년 만에 '마음의 고향'에서 전시회 가진 민병구 화백

   120호짜리 대작 소나무 앞에서 설명하고 있는 민병구 화백. 화풍은 거칠지만 약간 떨어져서 보면 퍼즐 조각처럼 '거침'이 '섬세함'으로 바뀐다.
“30년 만에 제 마음의 고향, 조치원에서 전시회를 가졌습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만 예전의 아련한 조치원 모습이 너무 바뀌어 아쉬웠습니다.”

지난 8일부터 10일까지 조치원읍 세종문화원 2층에서 개인전을 연 민병구 화백(50)은 30년 전 조치원고(현 세종고)를 다녔던 추억을 되살리면서 전시회 소감을 이렇게 밝혔다.

개인전 마지막 날인 10일 오전 11시에 만난 민 화백은 “스케치를 하는 버릇이 개인전을 여는 밑거름이 되었다” 며 “목수 10년이면 모두 다 장인(匠人)이 된다는 말처럼 저도 그렇게 됐다”고 덧붙였다.

정식으로 그림을 배운 적이 없는 자신의 이력을 빗대서 하는 얘기였다. 그림에 소질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이 30년이 지나 무대 미술을 책임지는 예술가로 만들었다.

지금도 있는 조치원읍에 ‘연묵당’이라는 표구점에서 그의 미술 인생은 시작됐다. 그림에 조예가 있는 표구사 여 사장이 조치원고에 다니는 민 화백의 소질을 발견하고 그림그릴 것을 권유했다.

그게 화백의 길로 들어서는 첫 걸음이 됐다. 인사동 골목을 누비면서 어깨 너머로 들은 유명한 화가를 무조건 찾아 다녔다. 조언도 받고 도움을 받은 곳이 있었지만 그렇지 않는 곳도 더 많았다. 기억에 남는 건 한국화의 대가 남농(南農 )허건 화백을 무조건 찾아갔던 일이다.

“유명하다는 얘기만 듣고 목포행 열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찾아갔더니 남농 선생은 서울로 출타 중이셨죠. 간신히 차비만 구해 갔던 터라 굶으면서 기다렸습니다. 밤 9시까지 기다린 저를 보고 남농선생은 ‘밥은 먹었나’고 묻고 그 자리에서 밥을 챙겨주었습니다. 돈 5천원에다 그림 한 점까지 주시면서 저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게 기억이 새롭죠.”

민 화백은 “남농선생은 스케치를 많이 하라고 일러주셨다” 며 “그 말씀이 저를 어디를 가나 스케치를 하게 만들었고 그게 지금은 소중한 자산이 됐다”고 말했다.

민 화백의 그림에는 스토리 텔링(Story Telling)이 있다. 무대 작업실 창틀에 둥지를 튼 부엉이를 표현한 작품에는 ‘해학’과 ‘놀이’, ‘사랑’이 들어있다. 나비를 가지고 노는 아기 부엉이의 모습과 새끼에게 먹이는 물어다 주는 어미의 끝없는 사랑, 그리고 사마귀를 부리로 쫒기 직전의 모습은 약육강식의 해학이 숨어있었다.

‘사군자 묘법’이라는 그림 그리는 기술(?)을 알려주는 책을 손에 넣은 그는 비닐텐트 속에서 촛불을 켜고 그림을 묘사했다. 밤에는 그렇게 그림 공부를 하고 낮에는 공사판을 전전하면서 생업을 이어갔다. 그렇게 주경야독(晝耕夜讀)한 것이 하나씩 쌓여 그 업계에서 조금씩 알려지면서 대전 모 초등학교에서 무대미술을 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그렇게 큰 돈은 평생 처음 만져보았습니다. ‘아! 나도 통할 수 있구나’하고 자신감을 얻었는데 다음해 또 해달라는 것이었어요. 너무 기뻤죠.”

그 시작은 끝을 창대하게 만들었다. 지금은 전국에서 내노라하는 무대 미술가로 자리 잡은 민 화백은 마음의 고향 조치원에서 전시를 갖고 싶었다. 청주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마치고 조치원고를 다녔다. 조치원 역 주변의 특유의 칙칙하면서 삶이 묻어있는 그 풍경을 좋아해 조치원에 대한 애착이 더 많았다.

   부엉이를 소재로 한 작품은 해학과 사랑, 그리고 놀이가 들어있다. <작품 '가을 문턱에서'>
“도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너무 많은 예전의 건물들이 사라진 게 정말 안타깝습니다. 조치원의 역사를 역(驛)으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역이 없어졌어요. 서울역처럼 새로운 역을 지으려면 옆에다 짓고 그 전의 것을 보존을 했어야 했습니다.”

비단 그 뿐만 아니다. 조치원에 산재해있던 일제 강점기 건물이나 역사성이 있는 지역은 보존을 통해 새롭게 태어나도록 했어야 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이 대목에서 민 화백은 조치원의 문화예술인을 탓하기도 했다.

“무대미술은 고독한 싸움입니다. 시대와 시간, 때를 한 곳에 표현해야 하기 때문이죠. 항상 시간에 쫒기는 작업이어서 특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것도 특징 중 하나죠.”

하루에 1시간 반 정도만 잠을 잔다는 민화백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무대 미술을 하면서 열심히 살고 싶다” 며 소박한 포부를 얘기했다. (연락처) 010-9566-2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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