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의 내공쌓인 유적, 무술 영웅 떠올라"
"장인의 내공쌓인 유적, 무술 영웅 떠올라"
  • 김장수 유성태극권전수관장
  • 승인 2014.07.02 10:40
  • 댓글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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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무인들, 중국무술 고향가다 <3>용문석굴, "예술성 높고 정교해"

 용문석굴의 대표적인 중심지인 봉선사에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불상을 바라보고 있다. 
낙양이 있는 중국 하남성은 원래 중국의 중심지로 고대부터 중원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하남성은 5천년의 역사가 흐르는 곳이다. 공식적으로 인정된 역사만 해도 3천년이나 된단다. 그중에서 하남성의 성도인 정주는 삼국지에서 읽었던 조조의 위(魏)나라가 위치한 곳이고 무림의 고수들이 나오는 중원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이런 유구한 역사를 가진 도시이기에, 거리마다 모두 유적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지금도 하남성 사람들은 대륙의 중심지인 중원 땅에 사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하남성에서는 중국어로 “맞다”는 표현을 뛔이(對:맞다, 옳다)라고 하지 않고 쭝(中:맞다)이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정주에서 서쪽으로 140km정도 떨어진 지점에는 낙양이란 곳이 있다. 낙양은 삼국지의 무대이기도 하고, 측천무후가 남은 여생을 보낸 곳으로도 유명하다. 1세기 이후 불교의 중심지였다고도 하며, 예술의 도시로서 전국시대의 노자와 당나라의 두보, 이백, 백낙천 등 수많은 문인과 예술인이 활동했던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낙양은 모란꽃으로 유명한데, 중국인들은 모란을 '꽃 중의 꽃'으로 꼽을 만큼 좋아하는데, 그중에서도 낙양의 모란꽃이 가장 사랑받고 있다 한다. 그래서 낙양을 목단성(牧丹城)이라고도 부른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용문석굴 표지석 앞에서 잠시 감회에 젖은 김장수 관장
낙양에 있는 용문석굴은 이하(伊河)강 양 사이의 동쪽에 있는 것을 동문석굴이라 하고 서쪽에 있는 것을 용문석굴이라고 한다. 따라서 용문석굴은 용문산에 있고 동문석굴은 향산 쪽에 있다.

용문산과 향산은 약 1.5km정도이며 암벽에 2,300여 개의 석굴과 벽감(壁龕)이 조성되어있다. 북위 때부터 조성된 석굴이 30%정도이며, 당나라 때 석굴이 60%, 그 이후에 조성된 석굴이 10% 정도가 된다고 한다. 용문석굴은 특히 대동(大同)의 운강석굴(雲崗石窟)과 돈황 막고굴(敦煌 莫高窟)과 함께 중국의 3대 석굴로 꼽힌다. 이곳 용문석굴은 예술성이 높고 정교하며 아름다운 조각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2000년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용문석굴의 불상들은 무려 1.5km에 걸쳐 빽빽하게 자리하고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었고, 언뜻 보기엔 큰 벌집처럼 보이기도 했다. 북위 시대인 5세기 말부터 당나라 때인 9세기까지 2300여 개의 석굴이 조성되었다고 하니 실로 대단하다. '웅장하다'는 말은 바로 이런 장관을 두고 쓰는 표현인 듯 싶었다. 저 작은 굴 하나 하나가 장인이 한 땀 한 땀 정으로 때려 만든 굴이라고 하니, 그 정성이 참 대단하다. 그 안에는 불상들이 모셔져 있는데 그 수만 해도 무려 10만7천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손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불상을 볼 수 있다. 불상은 10여 미터가 넘는 것부터, 수 센티미터에 불과한 작은 것까지 다양하다.

 용문석굴의 불상 중 오른쪽은 금강역사상으로 무술 자세를 취하고 있다. 
원래 용문석굴은 북위 때부터 시작된 석굴이다. 고양동 안내문에 太和 十七年 是龍門石窟 开凿最早洞窟(第1443洞窟)이라고 써져있는 이 문구는 ‘처음 굴을 뚫은 시기는 태화17년 (서기 493년)에 용문석굴이 시작된 동굴이다.’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고양동의 내부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양으로 조각되어있으며 용문석굴에서 가장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르게 이번 여행에서 내가 찾았을 때는 내부를 수리하고 있었다.

평소 나는 소림사에서 속가 제자로 인정은 받은 후 불교에 관심이 있어 오늘날 인도불교를 비롯해 중국불교와 한국불교의 차이가 무엇인가에 대한 궁금증이 많았다. 그런데 이곳 용문석굴을 보는 순간 인도불교와 중국불교가 이 석굴에서 나눠지는 것을 보았다. 용문석굴에서 제일 유명한 봉선사(奉先寺)가 있는데 봉선사는 서기 672년에 당나라 여황제인 측천무후(測天武候)가 밀가루와 돈 2만냥을 협조했다는 문구가 있으며, 서기 675년에 2년에 걸쳐 봉선사가 완성되었다고 한다. 건너편에는 향산사(香山寺)가 있는데 측천무후는 생전에 향산사 누각에 올라 자기가 시주한 봉선사를 보면서 정치 구상을 하였다고 전해진다. 다시 말해 용문석굴은 고양동(古陽洞)을 비롯하여 봉선사, 측천무후를 빼놓고는 논할 수 없다는 것을 내가 두 번이나 찾아오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강 건너 편 향천사에 바라본 용문석굴의 위용은 한 폭의 우주를 연상케 한다.   
특히 봉선사는 용문석굴의 중앙에 위치해 있으며 불상은 측천무후의 얼굴모형으로 조각했다는 설이 있으며 그 위엄과 웅장함은 감탄사가 절로 나올 정도이다. 바로 이것이 노사나대불이다. 폭 35m의 석굴 안에 대불의 전체 높이는 17.4m에 달하고, 귀의 길이만 1.9m라고 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의 흐름과 역사 속에서 순탄하지 않았음을 말해주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봉선사에 올라 주변을 자세히 보면 벽에 불상조각을 한 지붕까지 만들었으며 스님들이 조각한 그곳 법당에서 향을 피웠던 모습이 있다. 또 암벽 위로는 나무로 고정하려고 뚫은 구멍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내가 볼 때 언제 소실 된지는 알 수 없고 도굴꾼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 문화혁명이라는 전통문화 말살의 틀에서 역시 벗어날 수 없었다고 생각된다. 10년 전에 찾아왔을 때는 위험한 곳도 많이 있었는데 지금은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되었으며 보수 또한 한창 이루어지고 있었다.

옛 수행자들의 정성인가. 용문석굴의 작은 동굴에도 불상은 꼭 들어 서 있었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불상의 머리가 떨어져 나간 흔적이 많이 보인다. 이는 불상머리를 소장하면 복이 온다는 미신 때문이기도 하고, 문화혁명 당시 홍위병에 의해 파손되기도 했다 한다. 참 안타까우면서도 어떻게 칼로 자른 듯 이렇게 머리만 싹 베어갔을까라는 의구심이 들며 그 기술이 놀랍기도 하고 잔인하기도 했다.

예술과 모란꽃이 있어 더욱 아름다운 낙양의 용문석굴에서 석양을 바라보며 먼 옛날 온갖 정성을 기울여 수행을 했던 영웅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굴 안에서 인내하며 처절하게 천년을 넘게 버티고 있는 불상들은 마치 중국의 중심지 중원에서 무공을 연마하며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했던 무술영웅들의 모습, 그 자체였다. 

나는 1991년부터 중국을 다니면서 무술을 배웠다. 생각해보면 엊그제 같은데 벌써 24년이나 되었다. 그때 중국 노사(老師: 무술선생을 대체로 지칭하는 말)와 많은 담소를 나누었다. 중국에는 무술수련생을 어떻게 구분하느냐고 여쭈었더니 중국무술은 1급무사, 2급무사, 3급무사로 구분하며 특별히 더 높은 것을 무영(武英)급으로 구분하다고 하였다. 중국무술영화의 전성기인 80년 중반에 이연걸의 소림사 영화가 나왔었는데 그때에 이연걸이 “무영급” 무술인이었다. 무영의 뜻은 ‘무술의 영웅’ 즉 ‘무술에서 최고’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태권도, 유도 등 등급을 구분할 때처럼 중국의 무술계도 전통적인 것을 쓰지 않고 개혁, 개방 이후 서구식인 유급자, 유단자로 표기하고 있다. 왠지 전통보다는 세계화 추세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어 아쉬울 뿐이다.

  홍위병 난동 등으로 한 때 폐허가 되었던 용문석굴이 잘 정비되어 관광객들이 관람하기에 편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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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람 2014-11-01 22:18:18
좋은 글 !
감사합니다.

fkvkdpf 2014-08-07 05:30:33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쿵! 2014-08-02 12:54:17
많이 배우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hongguohehe 2014-07-21 20:54:05
정주는 정말 역사적인 도시이죠. 그런데 지금은 지난 날의 빛을 많이 잃어가는 것 같애서 많이 아쉬울 뿐입니다. 중국을 많이 다니실 뿐만아니라 정말 중국의 속속까지 모두 알고 있군요.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준윤 2014-07-19 06:01:29
관장님의 폭넓은 무술의 세계와 중국 무림의 비사들을 앞으로 더욱 많이 접하고 싶습니다.
부~~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