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님 살신성인 실천위해 노력”
“공자님 살신성인 실천위해 노력”
  • 신도성 기자
  • 승인 2011.12.27 11:22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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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연기향교 임완수 전교 "젊은이에게 인성교육 꿈"

  태어나서 65년간 원수산 아래 고향마을 쭉 지켜 

  농사지으며 주경야독... 7년째 부친 산소 참배도    

 

                     임완수 연기향교 전교

“앞으로 향교 안에 상설 교육장을 만들어 아이들에게 전통예절을 가르치는 게 꿈입니다.” 

지난 11월 서울 성균관에서 연기향교의 전교(典敎:학교장)로 선임된 임완수 전교(65)는 “조선시대 지방교육기관이었던 향교(鄕校)가 현대에 들어서 동네 유림들에 의해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게 못내 안타깝다”며 “그나마 요즘은 여름과 겨울 방학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사자소학 등 예의범절을 가르치면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이는 연기향교는 연기군 남면 연기리 34번지에 위치해 있다. 현재는 충남향교재단 소유로 충남지정기념물 제123호 건물로서 대성전, 명륜당(강당), 내삼문, 외삼문, 홍살문, 전사청, 경로당, 제기고(창고), 식당 등이 지어져 있다. 

올 겨울 들어 처음으로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남면 연기리의 당산(唐山)성 서남쪽에 위치한 연기향교를 찾은 날은 음력 초하루(12월 25일)로 공자님께 분향례를 올리기 위해 허종행 유도회 연기군 지회장과 임완수 전교와 장의 등 9명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또한 대전에서 한국한문교사 대전연수원 최화복 원장과 윤장한 관리이사, 이현나 교수, 서당 선생 등 9명이 동참해 예를 올렸다. 

 영하의 혹한 속에서도 임완수 연기향교 전교와 장의들이 대성전에서 분향례를 올리고 있다.
 임완수 전교는 원수산 바로 남쪽에 위치한 연기군 남면 진의리에서 출생하여 평생 타지로 주소를 옮긴 적이 없는 그야말로 토박이다. 15세부터 21세까지 인근 마을 양화리 서당을 다니며 천자문과 논어를 공부했던 임 전교는 22세 때 동네 서기를 보기 시작하여 6년간 열심히 업무를 보았고, 그 성실성이 바탕이 되어 1974년에 연기군청에 공무원으로 발탁되어 40년간을 공직에 복무했다.  

95년에 공무원으로 재직하면서 연기향교에 다니기 시작하여 마침내 2011년 11월에 향교의 최고 지도자인 전교의 위치에 올랐다. 

임 전교의 성실함은 사람들이 잘 안다. 임 전교가 아직도 거주하고 있는 진의리 집은 이미 보상이 다 끝나 많은 집들이 떠나버린 상태여서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인근에서는 공사차량이 연신 흙먼지를 휘날리며 굉음을 내고 있다.                                                                                            

  임 전교의 고향집 안방에 걸려 있는 면유화풍 글씨 

조상들이 600여 년을 머물렀던 부안 임씨의 집성촌은 내년이면 사라지게 된다. 미련이랄까 올해 9순을 바라보는 모친과 함께 고향집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임 전교는 “이사는 가야하는데 아직도 망설이고 있다”며 내년에는 떠나야 되는 서운함을 내비쳤다. 일부 노인들은 보상은 받았어도 인근 지역의 땅 값이 너무 올라 대토할 비용이 없고, 그나마 자식들에게 돈을 다 뺏긴 경우가 많아 거처를 쉽게 정하지 못해 고통을 받고 있다.

임 전교는 공사 때문에 수시로 바뀌는 마을길을 다니며 늦은 밤에도 대전으로 한학공부를 다니는 열성파이다. 매일 5시에 기상하여 농사일을 두 시간 정도 하고, 집에서 300미터 거리의 아버지 산소를 등산 겸해 하루도 안 빠지고 참배한다. 2004년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며 7년 째 묘소참배를 해, 주위에서 현대판 효자의 전형이라고 칭송이 자자하다.  

임 전교의 평소 좌우명은 공자님이 말씀하신 ‘살신성인(殺身成仁)’이다. 내 욕심을 버려야 인(仁)을 이룬다는 뜻이다. 남을 해치는 것은 내 욕심 때문에 나만 살려고 하다보니까 저지른다. 내 욕심을 버려야 사회질서에 이바지 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이날 대성전에서의 분향례는 분향과 4배(임금에게 국궁사배)에 이어 고유제를 지내고 연기향교 신임감사 2명에게 성균관장으로부터 전수받은 선임장을 전달했다. 서원에 모신 학자에게는 바로 마주 서서 직배(直拜)로 두 번만 절하면 되지만, 향교에선 문선왕에게 절하기 때문에 옆으로 비켜서서 곡배(曲拜)로 4배를 해야 한다.  

영하의 매서운 날씨에도 공자 영정을 모신 대성전 안에서 문을 활짝 열어놓고 분향례를 올린다. 손발이 시리다.  공자님은 석가모니, 예수, 소크라테스와 함께 인류의 4대 성인이다. 공자님은 원래 지성문선왕(至聖文宣王)이라고 하여 선비에서 왕으로 추존하였다. 중국 송대에는 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聖文宣王)이라고 추가했다. 

   연기향교는 대성전, 명륜당 등 외에[도 부속 건물이 있는 상당히 규모가 큰 곳이다.  

연기향교는 공자 등 5성(聖)과 송나라 4현(賢)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신라 2현 고려 2현 조선 14현)을 모시고 있다. 유림 139명이 춘추석전대제와 월 2회(매월 음력 초하루, 보름) 분향례를 드리고 있다. 또한 충효교육 등 예의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고 올해만 12개 초등학교에서 842명을 대상으로 충효교육을 실시했다.

연기향교는 허종행 유도회 연기군 지회장의 지도를 받으며 김영재 총무, 최달식 교화, 최기현 재산담당 장의와 조치원읍분회, 동면분회, 서면분회, 남면분회, 금남면분회, 여성유도분회 회원 등 139명(장의 30명) 이 회원으로 활동하여 한문교육, 서예교육의 활성화에 나서는 등 주민에 대한 도덕함양에 기여하고 있다.  

임 전교는 “정부에서 지원한다고 하지만 자체교육 시설비로 한문, 예절, 충효교육관 시설로 2,000만 원이 소요되고, 지방문화재 관리와 전통문화 발굴 및 교육, 충효교실 상설화에 따른 교재 작성 등에 연 3,000만 원의 향교 운영비로 필요하다”고 애로사항을 토로했다. 무엇보다 수익금이 전혀 없는 국유지나 다름없는 향교토지에 년 180만원의 재산세를 부과한 것에 대해 전통문화 유지 차원에서 배려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향교를 찾은 한국한문교사대전연수원 일행이 대성전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며 우의를 나눴다.

이날 연기향교를 찾은 대한검정회 한국한문교사 대전연수원 최화복 원장과 교수, 서당 선생들은 점심을 같이 하며 향교와 전통교육의 방법에 대해 서로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임 전교는“평생 고향에 살면서 공자님의 살신성인을 가슴에 품고 살았다”며“우리 고유의 전통 교육장인 향교에 젊은이들이 몰려와서 효도와 어진 성품을 양성하는 인성교육의 장이 되기”를 바랬다.  

임 전교는 3년간의 임기 동안 연기향교의 발전과 변화를 이루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다짐했다. 세종인으로서 앞으로 꿈은 전의향교와 힘을 합쳐 내년에 세종특별자치시의 설치에 따라 향교재단을 설립하는 것이다.

                          연기 향교에는 예복을 입는 착복 순서가 벽에 걸려 있다.  

유교란 무엇인가?

유교(儒敎)는 고대에 우리민족과 이웃한 중국에서 공자라는 성인이 탄생하면서 전래된 민족 근간의 사상으로 조선시대에는 국교가 되면서 곳곳에 백성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인 향교(鄕校)가 생기게 되었다.
유교는 사람답게 사는 길을 밝히고, 인간 본래의 의미를 찾아서 행복이 넘치는 대동세계 건설을 이상으로 하고 있다.

공자는 인간의 본성이 어질다는 인(仁) 사상을 기초로 하여 인도주의를 주장했다. 인은 사랑의 원리요, 착한 마음씨로서 모든 사람이 하늘로부터 타고난 고유의 인간성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하늘과 당 사이의 만물 가운데서 가장 신령한 존재이고, 가정과 나라 및 세계를 경영하는 중심체이다.  

인간다운 삶은 바로 이 인간성을 밝혀서 지혜롭고 착하고 용기있는 인격을 갖추어 자연법칙에 투철한 하늘과 땅의 도덕을 지키고, 사회질서에 철저한 인생의 윤리를 실천하여 행복한 가정, 밝은 사회,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서 인간의 본뜻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연기향교 입구의 홍살문과 명륜당 정문인 명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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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는 무엇하는 곳인가.

조선시대 교육기관은 서울에 성균관과 사부학당을 세우고, 지방의 군과 현에는 향학으로서 향교가 세워졌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충남에는 감영(監營)이 공주에 있었고, 공주와 홍주 2개소에 목(牧)이 있었으며, 군이 10개소(임천, 한산, 태안, 서천, 면천, 천안, 서산, 온양, 대흥, 덕산), 현이 22개소(홍산, 직산, 정산, 청양, 은진, 회덕, 진잠, 연산, 노성, 부여, 석성, 비인, 남포, 결성, 보령, 해미, 당진, 신창, 전의, 연기, 아산)가 있었다. 

연기군의 경우 연기와 전의에 현이 있었기 때문에, 조선시대에는 2개의 향교(연기향교, 전의향교)가 설치되어 이 고장 자제들을 교육하였다.  

향교는 본래 문묘(文廟)와 향학(鄕學)의 두 가지 소임을 하는 곳으로, 문묘로서 대성전(大成殿)과 향학으로 명륜당(明倫堂)이 고직방(庫直房)이 있어 관리의 역할을 맡았었다. 

조선시대 향교는 국왕으로부터 7결(結) 혹은 5결(結)의 학전(學田)을 받고, 기타 유림의 기부 또는 지방민으로부터 징수한 막대한 기본 재산을 토대로 운영되었다. 관학으로서의 향교는 학생 정원이 목에 90인, 현에 30인의 비율로 규정된 것을 근거로 할 때, 연기군내 향교 학생 수는 모두 60여 명으로 추정된다. 향교에서 가르치는 주요 교과서는 소학과 사서오경이다. 

   연기향교 내 한 구석에는 인근에서 모아온 관찰사 공덕비 등 25기가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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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자 2012-02-01 16:50:58
연기향교 학생들에게 꼭 있어야 될 교육장입니다.
향교,유교에 대해 조금이나마 알게해주셔셔 고맙습니다.

가연 2012-01-21 23:17:56
전통과 예절이 살아 숨쉬는 연기향교가
학생들에게 인성과 인간 본연의 참 모습을 가르치는 역할의 장이 될 것으로 믿습니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명맥을 이어온 지역 유림들에게 감사 드립니다.
좋은 글 감사 합니다.

도암 2012-01-03 23:44:39
책에서 보던 향교에 대한 소개는 고향을 다시한번 생각하는 기회주신점 감사합니다..
사실 향교가 뭐하는지도 몰라는데 너무나 자세하게 소계하여 주셔서 잘았읍니다...
고향에 대한 자긍심이 저절로 생기내요....감사합니다..

최달식 2012-01-01 14:53:23
연기향교를 잘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재 2011-12-28 17:50:18
전교님의 아름다운 뜻과 바램이 이루어지길 기원합니다.님과 같은 분이 계시어 우리의 훌륭한 전통은 살아 숨쉬고 이 사회를 더욱 밝게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