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란 기꺼이 연탄 한 장이 되는 것

<마음에 담는 글> 제몸에 불이 옮겨붙으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2012-03-14     세종의소리

         또 다른 말도 많고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 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

         방구들 선들선들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을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 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었네, 나는

 
                                   - 안도현 시 <연탄 한 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