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도시 세종, "'더 샵', '자이더시티', '파밀리에', '안단테'... 무슨 말이지?"

행정동·마을이름 한글이면 뭐하나, 외국어 아파트 이름까지… 주소 찾기 혼란 가중 광역단체 최초 진흥 전담조직까지 만들었지만… 한글사랑도시 취지 표방 '무색'

2021-12-06     문지은 기자
세종시

'트리쉐이드 리젠시, S클래스센텀뷰, 리더스포레, 더휴리저브, 파밀리에센트럴….'

올해 세종시에 새로 입주한 새 아파트 이름이다.

안단테, 자이더시티, 리첸시아파밀리에 등 올해 입주자를 모집하는 아파트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글도시를 표방하며 전국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한글진흥 전담조직인 ‘한글사랑위원회’를 구성한 세종시에 아파트 명칭은 모두 외국어 일색이다.

행정동 이름도 한글로 짓고 여기에 한글로 된 마을이름까지 붙이며 한글도시로서 정체성을 만들어가던 노력이 무색해진다.

게다가 살고 있는 곳을 남에게 이야기할 때는 ‘00마을 0단지’라고 하기엔 무언가 허전해 ‘00동 00마을 0단지 000아파트’까지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세종시 나성동 나릿재마을 2단지 리더스포레 아파트’라고 말하는 식이다.

뜻을 알 수 없는 외국어 조합이 더욱 시민을 혼란하게 한다.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서 입주자 모집 공고를 낸 세종시 6-3생활권의 아파트도 ‘안단테’이다. 시민들은 “분양공고를 늦게 내서 안단테냐, 천천히 짓겠다는 의미냐”고 비아냥댔다.

안단테는 ‘느리게 또는 걸음걸이 빠르기로 연주하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로 된 음악 용어이다. 아파트 명칭에 들어간 것을 모두가 의아해 했다.

건설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외국어로 짓는 것은 이미 오래된 유행이다. 대형 건설사들이 '프레이엄'브랜드를 출시하는 한편, 해당지역의 특색을 반영한 별칭(펫네임, pet name)으로 명칭에 차별화를 둔다.

교육을 강조하는 지역의 아파트는 ‘에듀’, 숲이 보이는 아파트엔 ‘포레’, 도심을 강조하면 ‘센트럴’이나 ‘어반’, 전망이 중시되면 ‘뷰’, 강 근처는 '리버', 호숫가에 있는 아파트는 '레이크', 공원 근처이면 '파크', 고층이면 ‘타워’, 높은 곳에 있으면 '힐' 등으로 표시한다.

‘어디에 사느냐’에 따라 계급화하고 특권의식을 갖게 되며 ‘클래스’가 강조되고, 부유함과 특별한 계급을 담은 단어를 조합해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

'첫 번째'를 의미하는 'first'(퍼스트)에 '중요한, 최고의, 뛰어난'이라는 의미를 붙여 '퍼스트프라임'‘부’를 의미하는 ‘rich’(리치)와 ‘지식인을 의미하는 ’intelligensia’(인텔리젠시아)를 결합한 리첸시아, 특별한 지성(eXtra intelligent)에서 X와 I를 따온 자이(Xii), 나무 그늘(Tree shade)을 의미하는 트리쉐이드, 섭정이나 상류사회를 의미하는 리젠시(regency) 등이 아파트 명칭에 들어갔다.

아파트 브랜드 광고에서는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준다’고 하고, 아파트 단지별로 철저히 계급화되는 현실에서 가장 큰 자산인 아파트를 차별화하고 싶은 욕망은 당연하다. 그러나 특별한 브랜드가 꼭 영어나 불어같은 외국어일 필요는 없다.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브랜드화에 처음 성공한 ‘래미안’이나 ‘푸르지오’ ‘어울림’ ‘풍경채’ 같은 우리말도 얼마든지 좋은 상표가 될 수 있다.

도담동 주민 강 모씨는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을 기려 한글사랑도시로 나가는 세종시라면 조례라도 만들어서 도시 안에 있는 모든 아파트 이름을 한글로 붙이게 하든지, 마을이름만 표기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한글 공원이나 한글 구조물을 만드는 것보다 명칭을 한글로 하는 것이 한글도시 정체성을 더 확실하게 하는 것이 아니냐”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