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시의회, 이춘희 시장 ‘거수기’ 전락했나..‘논란’

상임위에서 삭감된 쓰레기통 설치 예산안, 이 시장의 말 한마디에 예결위서 부활

2018-07-31     곽우석 기자

더불어민주당이 싹쓸이 한 세종시의회가 같은 당 소속 이춘희 시장의 ‘거수기(擧手機)’가 됐을까.

3대 시의회 초반부터 이 시장의 말 한마디에 삭감됐던 예산안이 돌연 되살아나는 일이 벌어져, 시의회가 집행부의 친위대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집행부에 대한 감시와 견제 역할이 무뎌지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의회 스스로의 권위마저 무너뜨리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단적인 예가 최근 ‘비알티(BRT) 정류장 쓰레기통 설치’ 예산 심사 과정이다.

시의회 상임위인 행정복지위원회(위원장 채평석)는 지난 24일 ‘추가경정예산안’ 심사 과정에서 ‘다중이용시설 쓰레기통 설치’ 예산 5400만원을 전액 삭감했다.

행복위는 심의에서 "신도시가 '5무 도시'(쓰레기통, 전봇대, 담장, 광고 간판, 노상 주차가 없는 도시)라는 컨셉을 버리게 됐다"면서 "향후 예산 증액의 빌미로도 작용할 것"이라는 이유로 예산안에 칼을 들이댄 것으로 알려졌다.

채평석 위원장은 "집행부에서 쓰레기통 설치에 대해 심도 있게 고민하고 결정한 것으로 판단되지 않았다"며 예산안 삭감 이유를 밝혔다.

문제는 이춘희 시장이 예산안 필요성을 직접 강조하고 나서자 상황이 급변했다는 점이다.

이 시장은 26일 정례브리핑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인구가 늘어남에 따라 쓰레기통을 설치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며 "우선적으로 예산을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근 실시한 모바일정책투표 ‘쓰레기통 설치 찬반 설문조사’에서 시민들 70% 이상이 찬성 의견을 보인 점도 언급했다.

그러자 다음날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위원장 김원식)는 곧바로 화답이나 하듯 예산안 5400만원을 전액 반영시켰다.

그간 별다른 상황이 바뀌지 않았는데도 사라졌던 예산 수천만원이 순식간에 살아난 것이다. 앞서 행복위가 예산안을 삭감한 지 불과 3일여만이다. 이 시장의 발언 등이 가이드라인 역할을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소관 상임위 위원장이자 예결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채평석 의원은 예결위 심사를 마친 뒤 "집행부의 설명을 듣고 보니 강행 의지가 보였고, 쓰레기통에 따른 관리도 철저히 하겠다는 결의도 보였다"며 예산안 반영 이유를 설명했다.

관련 예산안은 31일 본회의에서 의결되어 최종 확정됐다.

예산안이 부활한 표면적 이유로는 집행부의 설득과 의지가 꼽히고 있지만, 쓰레기통 설치가 이 시장의 공약 사업이라는 점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겠느냐 하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이 시장은 지난선거 당시 쓰레기통 설치를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BRT 승강장 등 여러 사람이 이용하는 버스정류장을 중심으로 단계적으로 쓰레기통을 설치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삭감됐던 예산안이 부활한 것은 비단 어제오늘 일은 아니다.

지난해에는 산업건설위원회에서 전액 삭감된 한국불교문화체험관 사업 예산 20억원이 예결특위에서 전액 반영된 일도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에도 상임위에서 예산안이 삭감된 후 이 시장은 “어느 종교에서 추진하든지 시 입장에서 보면 다양한 문화 자산이 확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필요성을 언급했고, 예결위는 곧바로 이 시장의 의중대로 움직였다.

민주당 소속 의원이 압도적인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현 상황이 이 같은 일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게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현재 시의원 18명 중 자유한국당 1명을 제외한 17명이 민주당 소속이다. 지난해에도 민주당이 다수였다.

정치권 관계자는 “토론과 합의를 거치다보면 해당 상임위에서 의결한 내용이 예결위에서 바뀔 수도 있다”면서도 “이 같은 일이 자주 반복되다 보면 의회 스스로가 감시와 견제 역할은 물론 권위마저 내려놓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