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서사 강당 터 찾았다

독락정 주변 나성 역사공원 조성위한 주요 건물 확인으로 '탄력'

2018-03-30     김중규 기자

고려 말 충신 임난수 장군의 충효사상 배움터였던 ‘기호서사’(岐湖書社) 강당터가 확인돼 복원사업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기호서사는 주춧돌과 기단 등이 원형 그대로 발굴돼 부안 임씨 종중에서 요구한 나성리 역사공원이 역사성을 살리면서 제 모습을 찾는데 도움이 될 전망이다.

나성 독락정 내 유적조사 발굴 팀은 29일 오후 2시 세종시 나성동 독락정에서 발굴조사 학술자문회의를 갖고 정면 5칸, 측면 1칸 규모의 조선시대 건물지 발굴을 보고했다.

이 건물터는 기호서사 기록에 나오는 강당지로 추정되며 18-19세기에 건립되어 중수 및 중건한 흔적이 엿보인다고 밝혔다.

부안 임씨 문중 기록에는 1710년에 창건되어 1740년과 1800년에 중수 및 중건된 세덕사, 기호서사가 존재했으며 1854년에 작성된 ‘기호서사도’에는 독락정 왼 편 뒷 켠에 강당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강당을 중심으로 동·서로 나란히 들어서있었던 동재와 서재 건물터는 문헌상에 존재하는 것과는 달리, 이번 발굴 조사에서 흔적을 발견하지 못했다. 시대가 지나면서 유실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게 발굴 팀 의견이었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은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았던 강당터가 이번 발굴에서 드러나 기호서사 복원에 큰 도움이 됐다" 며 "역사성을 살린 기호서사를 만들어 옛 조상들의 정신을 되살리는 도량으로 만들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발굴 팀은 원삼국에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수혈유구(竪穴遺構 : 구덩이 모양의 집 터) 3곳, 지상 건물지 1동, 기와가마 1기 등이 확인돼 금강 변인 독락정 주변에 오래전부터 사람이 살았던 흔적을 발견했다.

특히,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된 기와가마터는 건물지 축조 당시에 필요로 하는 기와를 공급하기 위해 일시적으로 만들었던 곳으로 판단했다.

기호서사는 숙종 36년인 1710년에 인근 고을의 선비들의 기부금으로 건립되어 부안 임씨의 주요 인물이었던 임춘, 임난수, 임목 등을 배향하고 이들의 정신을 기리던 학당이었다.

초창기에는 ‘세덕사’(世德祠)로 명명됐으며 고종 5년인 1868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인해 학당은 없어지고 배향하던 건물만 남아있다.

기호서사 복원 작업은 부안 임씨 종중의 ‘역사공원 조성’을 요구해 지난 12일부터 내달 3일까지 발굴조사 중이며 이날 중간 보고회 성격의 학술 자문회의를 가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