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에서 못한 생사해탈 이루시죠"

[임효림칼럼]모진 고문 이긴 해정스님 49재를 지내고 나서...

2017-10-03     임효림

ㅡ사십구제에 유행가를ㅡ

해정스님과 절친한 남석 처사, 그는 대학시절 군부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다가 안기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받았습니다.

건장한 채격의 남석이 반 죽은 시체가 되어 집으로 돌아 왔을 때 그의 아버지는 졸도를 했고 그의 어머니는 그에게 똥물을 먹여 살렸습니다. 그런 모진 고문도 이겨낸 그이지만 나이가들면서 고문후유증으로 생긴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쓰러졌습니다.

남석처사는 6월 항쟁 이후는 사찰을 찾아다니며 비승 비속으로 불도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오랜 세월 신난한 고초를 겪어 왔지만, 불도수행은 ! 그의 인격을 더욱 고매하게 하여 티 없이 맑은 그의 웃음,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스님보다 더 스님 같은 사람이 되게 하였습니다.

"해정스님 내가 죽으면 장기와 시신은 병원에 기증하기로 했습니다. 의사와 상의를 했고 집사람과도 의논했습니다. 특히 내 눈을 싱싱한 체로 기증해 주세요. 그리 알고 장례는 생략하고, 사십구제는 스님이 집전해서 해 주세요."

이런 간단한 유언을 남겼고, 그의 유언대로 장기는 모두 기증하고 시신 역시 병원에 기증 했기 때문에 별도의 장례는 없었습니다. 사삽구재를 지내는 날입니다. 평소 알고지낸 스님들이 많아 백명도 넘는 스님들이 참석하고, 절에 신도들도 빠짐 없이 참석을 했습니다.

상당불공이 끝나고 영단을 향해 대중들이 자리잡고 앉았습니다. 분위기는 자못 엄숙했습니다. 해정스님이 법주로서 요령을 잡고 조용히 한번 흔들자 법당 안은 더욱 고요해 졌습니다.

잠시 침묵이 흐르고 다시 한번 해정스님이 요령을 흔들고는 이내 노래를 불렀습니다. 울고넘는 박달재를............

"저승산 높은재를 울고넘는 우리님아ㅡ / 무명옷 두루마기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탐욕이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울었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ㅡ // 솔바람 부는 산골 나를 두고 가는 님아/ 돌아올 인도환생 우리들과 약속하소/ 큰 신심 굳센 원력 다시 한번 도반되어/ 못다 이룬 생사해탈 이룹시다"

노래를 부르동안 모두 소리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해정스님은 그렇게 노래 한 곡으로 사십구재를 끝냈습니다.<효림스님은 불교계에 대표적인 진보성향의 스님으로 불교신문 사장, 조계종 중앙 종회의원, 실천불교 전국 승가회 공동의장을 거쳤다. 2011년 세종시 전동면 청람리로 내려와 경원사 주지를 맡고 있다. 세종시에서는 참여자치시민연대 공동의장을 역임하는 등 시민운동 참가를 통해 진보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