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태종 눈을 쏜 양만춘 기개 대단”

[고구려 안시성에 가다] <6> 압록강과 봉황성을 들러 보며

2017-02-27     김장수 유성태극무술관장

 

해외여행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뉘는데 하나는 패키지 즉 단체여행이고 또 한 종류는 자유여행이다. 자유여행을 하다보면 아무리 계획이 철저해도 현지상황에 따라 변화가 많다. 따라서 여행은 모름지기 주변을 잘 활용하고 주변인에 상황을 잘 활용하면 즐겁고 알찬 여행이 될 것이다.

그리고 여행을 하다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중에 뜻을 같이하다 보면 벗이 생기는데 안상현 수련생이 단동에 거주하는 벗을 만나 우리 일행을 오랜만에 만났으니 하룻저녁 쉬고 다음날 봉황성 관광을 하자고 제의했다. 사양했지만 그냥 가시면 안 된다는 말에 호산산성에서 단동시내로 들어서니 압록강변 주변에 숙소를 마련하고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한국 분들이 단동에 오셨으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면서 우리 일행을 압록강에서 배를 타보자는 것이었다. 관광객 배타는 곳이 두 군데 있는데 하류 쪽에 있는 선착장은 일반관광객들이 타는 곳이고, 상류 쪽으로 올라가 5~6명이 타는 작은 보트가 있는 곳으로 일행을 안내하였다.

압록강 줄기 중앙이 북한과 중국의 경계선이라고 안내하면서 10여 분 간을 보트를 타고 북한 쪽으로 다가가는 북한군초소에서 우리를 주시하는 모습이 남북한에 서로 다른 이념으로 대치하고 있는 분단상황이 실감되었다.

이 순간 나는 문득 조선(朝鮮) 태조 이성계(太祖李成桂)가 요동정벌(遼東征伐)을 하려다가 이곳 압록강(鴨綠江)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이 조선건국의 시작이라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 생각났다. 그 위화도(威化島)가 어디인가를 알아보았더니 압록강 하류 끝에서 상류 쪽 길게는 수 km에 있는 군소 섬들이 위화도라는 것이다. 하류에 있는 큰 섬을 비롯하여 상류 쪽 크고 작은 섬들이 300여개 이상이며 북한 쪽 군소 섬 위화도를 중국의 부자들에게 팔아먹고 있다는 말에 확인 할 수 없었지만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다. 요즈음 우리가 과연 무엇을 어떻게 해야 이 어려운 시기를 해쳐 나갈 것에 고민하는 이가 얼마나 될까라는 질문을 던져본다.

기록에 보면 봉황성(鳳凰城)은 고구려산성(高句麗山城) 가운데 가장 큰 산성의 중 하나로, 압록강 하류에 위치한 중국 요령성(遼寧省) 단동(丹東)시내의 북동쪽으로 60여 km쯤에 자리 잡고 있다. 봉황산(鳳凰山)의 최고봉인 찬운봉(攢雲峰)은 해발 836m이다. 그리고 고구려(高句麗) 때의 이름은 오골성(烏骨城)이지만 명(明)나라부터는 봉황성(鳳凰城)이라고 불려졌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고구려(高句麗)와 당(唐)나라의 전쟁을 다룬 민간전승의 문학작품이 유행을 하였는데 이 책들은 임진왜란 때 조선에 들어왔다고 한다. 책에서는 설인귀(薛仁貴)의 영웅담을 실은 무대로 이곳 봉황산(鳳凰山)이 묘사되어 있으며 역사연의(歷史演義)의 무대인 안시성(安市城)과 안시성주인 양만춘(楊萬春)장군의 활약도 담겨 있다고 한다.

내가 볼 때 성의 특징은 세 가지로 나뉜다. 첫째 대표적인 성이 원통형(圓通形)성이다. 그 중에 가장 잘 알려진 성이 바로 안시성(安市城) 또는 연주성(燕州城)이다. 둘째로는 일자형(日字形)성이다. 일자형 성중에 대표적인 것이 만리장성(萬里長城)과 호산산성(虎山山城)이다. 다음으로 세 번째가 천연(天然)적 지리를 이용한 성이다. 대표적인 성이 오녀산성(五女山城:요령성 환인현에 있는 산성)과 이곳 봉황성(鳳凰城)이 천연적 지리를 잘 활용하여 만들어진 성이다. 천연요새다 보니 입구를 지형에 맞게 잘 되어 있다.

일행은 아침 일찍 일어나 봉황성 관광에 나섰다. 단동에서 출발하여 봉황성을 약 1시간정도 갔는데도 나오질 않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저 앞에 보이는 산이 봉황성이라고 하는데 가도 가도 정문입구는 보이질 않았다. 아침 일찍이라 사람이 없어 다시 한 번 도로 옆 농로길 농부에게 차에서 다 같이 내려 저기보이는 봉황산 정문입구가 어디냐고 묻는 순간 깜짝 놀랐다. 왜냐하면 산 정상에 큰 구멍 같은 동굴이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설에 의하면 저 동굴은 설인귀가 화살을 쏘아서 생긴 것이라고 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우리가 찾아간 곳은 정문이 아니라 봉황산 뒤쪽으로 간 것이었다. 다시 돌아 정문 쪽에 다 달았을 때 전화가 오는 것이었다. 요령성에 있는 여백(汝柏) 사부가 언제 오느냐고 빨리 실력을 겨루어 보자는 내용이었다. 고령에 나이에도 그 기상은 하늘을 찌르는 것이었다.

우리는 봉황성 입구에서 뒤쪽과 정면을 보았으니 봉황성 내부는 다음에 보기로 하고 요령성에 있는 여백 사부를 만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차를 돌려 성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넘었다. 여백(汝柏) 사부에게 전화를 하니 빨리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허겁지겁 나갔더니 우리를 중국전통식당으로 안내하는 것이었다. 한국에 태극무술관 관장님과 나의 제자 안상현님이 오셨는데 겨루는 것은 다음이고, 대접이 우선이라며 오래된 전통식당을 안내하는 것이었다. 귀한 손님에게만 접대한다는 당나귀고기와 그 뼈로 우려낸 국물과 아주 귀한 술(郎酒낭주:중국 10대 명주 중 하나)이라며 우리를 맞이하는 것이 사제지간에 우의를 돈독하게 하는 모습이 감동할 따름이었다.

“실전무술은 중국에서 제일” 요양시에서 여백 사부 만나 교류

 

만찬에서 서로의 무용담을 이야기 하는데 고령의 나이에 실전무술은 당연히 중국에서 제일이라고 자랑하는 것이었다. 착각번자권의 적통 제자라고도 하면서 그의 제자들이 사부를 대하는 모습은 무협지에서 나오는 장면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한 잔씩 오가는 10월의 마지막 날 이곳 만주(요양시)의 날씨는 찬바람이 겨울을 알리고 있음에도 우리의 담소 끝날 줄을 몰랐다.

2015년 11월 1일 4일간의 일정을 모두 마친 우리는 여백 사부의 실력을 겨루어보자는 취중진담이 혹시나 하고 비행기 시간이 11시40분 출발 여유시간에 아침 일찍 우리는 그의 수련장소의 공원에 나갔더니 벌써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의 제자 안상현님에게 그동안 배운 것을 보여 달라는 말씀에 서슴없이 시연을 보이는 것이었다. 다음에 관장님께서도 시범을 보이라는 말에 나 역시 진식태극권을 보였더니 여백사부 말씀에 중국에서도 관장님 정도의 실력은 흔치 않다고 칭찬을 하면서 겨루는 것은 다음으로 하고 그의 제자들을 일일이  인사시키는 것이었다.  "귀한 손님을 더 잘 대접해 줘야 하는데 너무 일방적으로 겨루어 보자는 말이 무례했다"며  "우리 친구처럼 교류를 함께 나누자"는 말과 함께 두 손을 꼭 잡는 것이었다. 여백 사부의 환대에 다음에 또 오겠다는 약속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심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동안 나는 중국무술(中國武術)을 배우면서 흑룡강성(黑龍江城)부터 시작하여 북경체육대학(北京體育大學), 진가구(陳家沟), 석가장(石家庄) 등 그래도 중국 명지(名地)에서 무술(武術)을 배웠다. 그런데 이곳 요양시 작은 시골 도시에 무림고수(武林高手)가 있었다는 것에 감동을 받았다. 여백 사부와 제자들이 명예와 출세의 뜻이 없이 매일 수련하는 모습을 보고, 작금에 우리의 모습은 돈과 출세의 기회를 노리는 자들이 만연되어 있는 요즈음을 비교해보면서, 안시성(安市城) 성주인 양만춘(楊萬春)장군의 화살이 당나라 태종에 눈을 쏠 수 있는 자가 또 누가 있겠는가? 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끝으로 우리의 조상인 고구려(高句麗) 변방(邊防)에 있는 연주성(燕州城), 안시성(安市城), 호산산성(虎山山城), 봉황성(鳳凰城)을 보면서 전쟁(戰爭)의 시기에는 맹장(猛將)이 필요하지만 태평성대(太平聖代)는 맹장보다는 지장(智將)이 났다는 것을 느꼈다. 성을 쌓고 지키는 데는 좋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데 실패의 요인을 보고 나는 깨달았다. 맹장(猛將)은 싸움에 명수며, 지장(智將)은 지혜로 다스릴 때 백성과 나라가 편안하게 유지되는 것이고 현재 오늘날 우리의 정치가 포용과 관용보다는 은혜 및 보답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느꼈다. 따라서 작금에 우리의 상처를 보듬어주기 위해선 그래도 깨끗한 젊은 정치인이 나와 난국을 풀어나갈 것을 기대하면서 이 글을 마감합니다.

 

 

翻子拳 古譜(번자권 고보)武穆留下翻子拳, 直出直入妙含玄.(악비장군이 번자권을 남기셨는데, 직선으로 나가고 들어옴이 오묘하다.) 忽进忽退应机变, 亦刚亦柔巧连环.(갑자기 나가고 빠지며 임기웅변하고, 강하고 부드럽고 교묘하게 이어진다.) 动如迅雷难掩耳, 静如泰岳稳如山.(움직임을 번개같아 귀를 막기 어럽고, 멈추면 태산같이 온건하다.) 虚虚实实难招架, 指上打下手飞翻.(허허실실하여 막아내기 어렵고, 위를 향한 듯 아래를 치며 손이 날아 뒤집어 친다.) 旱地行舟是步法, 一步三拳是根源.(보법은 육지에서 배를 모는 듯 하고, 한걸음에 세 주먹이 근원이다.) 车轮功练铁罗汉, 铁臂功深无遮拦. (수레바퀴 돌리 듯 연마가 강철 나한이고, 쇠말뚝공력이 심오하니 막을 자 없다.) 三感五节是要诀, 周身气力发涌泉.(삼감과 오절이 요결이며, 전신의 기력은 용천혈에서 솟는다.) 内有七拳成绝艺, 直劈横崩摔捋缠.(내부의 일곱까지 권법기술을 절기라 하고, 곧고 내리치고 넘기며 지르고 치고 잡고 감는 것이 기술이다.) 直拳打法最简便, 不招不架直向前.(곧게 뼜어 치는 방법이 가장 단순하고, 막을 수 없게 곧장 앞으로 나간다.) 泰山压顶用猛劈, 连劈带挑是截拦.(태산이 정수리를 누르듯 맹렬하게 내려지고, 연속으로 내려치며 올려 막는다.) 横能破竖竖破横, 横出直入暗舒肩.(횡으로 수직을 이기고 수직으로 횡을 이기며, 횡으로 나가고 곧게 들어옴은 어깨가 유연해야 한다.) 崩拳就是挑打式, 连挑带砸防护严.(붕권은 주로 도타식이며, 연속으로 주먹을 내려 찧는 기술으로 방어를 엄격히 한다.) 摔拳本是翻拳变, 上提下滚左右旋.(솔권은 주로 도타식으로 사용하고, 위로는 솔권으로 치고 아래로는 굴러 치며 좌우로 선회한다.) 捋手本是顺手带, 一收一放紧相连.(잡는 기술은 본디 순응하여 자연스럽게 하고, 한번 받고 바로 방출하는 것을 긴밀하게 이어져야 한다.) 缠法要用缠化勁, 缠卽是走非粘連.(감는 기술과 감는 화경을 써야하고, 전법은 곧 감는 것이지 들러붙는 것이 아니다.) 遇敌应知稳准狠, 心慌意乱败之源.(적을 만나면 중심이 온건하고 정확하게 매서워야 하며, 마음이 당황하고 의지가 혼란스러우면 지게 된다.) 最忌一发即深入, 出手等手非真传.(한번 공격을 깊게 들어가는 것은 금기이며. 공격하는데 있어서 상대의 수를 기다리면 참으로 전수받는 것이 아니다.) 拳打架式招打快, 练到无拳是真拳.(권법은 자세를 실전 초식은 빠른 속도로 연습하여, 수련하면 형식이 없는 경지에 올라야 진정한 권법이라 할 수 있다.)

 

 

상기 비전(秘傳)은 여백 사부(汝栢師父)가 제자(弟子) 안상현에게 전하는 번자권고보(翻子拳古譜)를 번역한 것입니다. 글의 번역에 약간의 오역이 있을 수 있고 초보자가 보기에는 난해하며 무술에 어느 정도 기본지식이 있어야 도움이 됩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