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에 소원빌어 이루게한 '월성'
[임영수의 세종을 만나다]높은 정이에서 나온 마을 '고정리'
아빠 : 이곳을 범지기라 부른다.
재영 : 범은 호랑이를 말하나요?
아빠 : 그래. 호랑이를 범이라 부르고 있지. 그래서 이곳을 호준이라고도 해.
재영 : 범지기라고 부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아빠 : 마을 뒷산을 보아라. 산의 모양이 호랑이가 쭈그리고 앉아 있는 형국이란다. 옛날 이곳에서는 실제로 호랑이가 살았는데 이 호랑이가 연약한 여자들만 괴롭혔단다. 그래서 마을사람들은 남자를 여자처럼 변장하고 범을 유인하여 잡았는데 범을 잡으려고 지키고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지. 호랑이가 떼 지어 나타나 사람을 해치게 된 것은 이곳의 산에 있는 산신을 잘못 모셨기 때문이라 생각한 주민들은 정성을 다하여 산신제를 지내자 그 다음부터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단다. 이곳의 산제는 약150여 년 전부터 지내오고 있어.
우리가 넘고 있는 이 고개도 이름이 있겠지요?
아빠 : 이 고개를 은고개라 부른단다.
조선말엽에 곽정승(郭政丞)이 이곳에 선친의 묘를 마련하고 돌아갈 때 이곳 고개에서 한 스님을 만났지. 스님이 말하기를 곽정승이 끼고 있는 은가락지를 부처님께 시주하면 자손대대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라 하였어. 곽정승은 은가락지를 빼서 스님에게 넘겨주었지. 그 후 자손들이 잘 살게 되었다는 이야기야. 또 이곳에서는 은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어.
재영 : 이곳 마을에서는 곽씨들이 많이 살고 있나 보지요.
아빠 : 예전에는 많이 살았었는데, 지금은 그리 많이 살지 않아.
재영 : 저기 높은 산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아빠 : 국사봉(國士峰)이라 부르지. 고려말엽에 어지러운 국운을 바로 잡기 위하여 3정승이 국론을 협의한 산이라 하여 국사봉(國士峰)이라 부른다고 했어. 또 이산을 섬기면 그 섬기는 집에서 훌륭한 인물이 배출된다고 하여 마을사람들이 1년에 한번씩 산제를 지내며 국사사(國士師)를 모시고 있지. 옛 지관이 이곳 국사봉 아래에는 8명당터가 있다고 했어. 둔덕산이라 부르기도 하고 봉화를 올린적도 있다고 했어.
재영 : 이곳 마을 이름이 월성이라 부르는데 유래가 재미있을 것 같아요.
아빠 : 반월터라고도 부르는데 마을의 형태가 반달과 같은 지형이지. 옛날 이곳에는 단란한 부부가 살고 있었어. 그런데 그들에게는 자식이 없었어. 자식하나 얻는 것이 소원이어서 항시 고민하고 있을 때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찾아와서 시주를 원하기에 시주를 듬뿍하고 아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묻자 달이 밝게 비치는 밤에 달이 뜰 때부터 달이 질 때까지 기도를 하라 해서 하루는 달 밝은 밤에 기도를 드렸더니 소원을 이루었지. 그때부터 이곳을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되었어. 자 고정2리로 가볼까.
재영 : 이곳을 높은 정이라 부르는데 그 이유가 있나요.
아빠 : 여기에는 어서각(御書閣)이 있는데 높은 언덕에 있어 ‘높은정’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
재영 : 어서각이 뭐예요.
아빠 : 한마디로 임금님의 글씨를 보관하고 있는 곳이지.
재영 : 임금님의 글씨요. 자세히 들려주세요.
아빠 : 어서각의 주인공인 강순용(康舜龍)은 고려시대 문무를 겸비한 사람으로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을 하였는데 원나라에 갔다가 1354년(공민왕3년) 귀국하여 밀직부사(密直府使)로 있다가 7월에 은성부원군이 되어 생활하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가람산 치마대 초야에서 후배양성에 힘쓰면서 살았지. 이 무렵에 이곳에서 이성계(李成桂)가 무술을 연마하다 목이 말라 우물로 물을 마시러 내려왔어.
후에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면서 강순용의 여동생을 성후(聖后) 현비(縣妃)에 책봉하고 그의 아버지 강윤성(康允成)에게 상산분원군(象山府院君)을 봉하였고 남매간인 강순용에게 교지를 친필로 하사하였어. 어서(御書 - 임금님의 글씨)를 후손들이 간직해 오던 중 영조대왕(英祖大王)이 이를 보고 친필로 발문을 써서 어서각을 건립하도록 하였으며 이후 정조대왕은 성덕왕후가 출생한 곳에 비각을 세웠어.
현재의 어서각은 영조 때 사액(賜額 - 왕명으로 현판을 써서 걸음) 하였던 것을 1864년(헌종12) 건립하였다가 고종황제가 이 친필을 보시고 사적을 하사하니 현재 태조, 세조, 영조, 고종의 4임금 어필을 소장하고 있지.
재영 : 지금 이곳에 네 분의 임금님 글씨가 소장되어 있다고요?
아빠 : 그래. 그런데 지금은 그 원본을 규장각에서 보관하고 있어.
재영 : 도난 때문인가요.
아빠 : 도난도 문제지만 그 귀한 것을 잘 보관하려면 이곳보다는 규장각이 더 안전하지. 자 이렇게 오늘까지 남면지역을 돌아보았고 내일부터는 금남면지역 중 세종시에 편입되는 반곡리, 석교리, 봉기리를 돌아볼까.
재영 : 예. 그곳에도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요.
| 임영수, 연기 출생, 연기 향토박물관장,국립민속박물관 전통놀이 지도강사, 국사편찬위원회 조사위원, 이메일: ghmuseum@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