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질고 의로워야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충청무인들, 공맹고도(孔孟古都) 가다 <8> 맹부(孟府)
맹부(孟府)를 아성부(亞聖府) 또는 맹택(孟宅)라고도 하며 이곳은 송(宋)나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공부(孔府)와 마찬가지로 이 지역을 다스리는 관청이었는데 이곳 맹부(孟府)는 조정으로부터 정7품을 하사 받았다. 그 규모는 작지만 공부(孔府)와 비슷하다. 아성부(亞聖府)를 둘러보고 그 다음은 이문(二門)이 나온다. 계속해서 안으로 들어가면 의문(儀文) 나오며 그 곳을 통과하면 대당(大堂)이 나온다. 이 대당(大堂)을 칠편이구(七篇貽矩) 즉 이곳이 맹부(孟府)의 핵심이다. 첫 문(門)인 대문(大堂)에서부터 대당(大堂)까지를 예문의로(禮文義路)라 한다.
대당(大堂)을 둘러보고 나오면 뒤편에는 세은당(世恩堂)이 있다. 이곳 세은당은 대당과 마찬가지로 맹부에서 가장 중요한 곳이라고 한다. 세은당(世恩堂)은 맹자의 후손들이 생활의 공간으로 사용하였다. 맹자 이후 맹씨의 후손들은 한림원 오경박사의 작위를 명(明)나라 때부터 세습을 시작하여 맹자 74대 후손 맹번기(1907~1990 孟繁驥)를 끝으로 중국의 근대사 혼란기인 1949년에 그의 가족과 함께 대만으로 떠나기 전에 사용했던 물건들이 잘 보존되어 있었다.
사서루(賜書樓)를 뒤로 하고 주변을 보는 순간 맹부양생당(孟府養生堂)이라는 곳이 있어 둘러보았는데 오래된 건물을 현대에 맞추어 현판과 내부시설을 꾸며져 있었다. 현재 맹부양생당(孟府養生堂)은 맹자 관련서적과 기념품 등을 파는 곳이며 한쪽 옆에는 양생수련(養生修練)법의 자세 동작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은 현대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맹자 때부터 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이미지를 지울 수가 없었다.
오늘날 양생론(養生論)은 사람의 건강을 한의학적 기초이론에서 우주만물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양생공(養生功) 역시 양생론(養生論)의 바탕을 두고 심신수련법(心身修練法)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무술(武術)과는 좀 다른 법이며 무술에서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양생공(養生功)을 기공법(氣功法)이라 하여 무공(武功)을 높이는데 필수적이라 하겠다.
흔히 중국철학 기반사상의 바탕을 음양오행 팔괘라 한다. 만약에 공자가 양이면 맹자는 음이다. 노자가 양이라면 장자는 음이다. 유가(儒家)에서 공맹을 논하고 도가(道家)에서는 노장을 말한다. 하지만 음양이 오행으로 가기 전에 삼재, 사상, 오행으로 이어져 육합에서 칠성 팔괘로 계속 이어지는데, 우리들은 그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공맹만 알아도 순자를 모르면 유가의 비판에 대비가 부족하고, 노장만 알아도 열자를 모르면 도가수련을 하지 못한다.
이곳 맹부에서 눈으로 보는 곳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곳이라는 것을 알았다. 일행을 안내하던 가이드가 “공림(孔林)을 보았으면 맹림(孟林)은 보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해 아쉬움을 뒤로 하고 태산(泰山)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태산으로 가는 버스에서 ‘맹자왈 공자등동산이소로 등태산이소천하(孟子曰 孔子 登東山而小魯 登泰山而小天下: 맹자의 말씀에 공자가 동산에 올라 노나라가 작으며 태산에 올라서는 천하가 작다고 여기다).’ 라는 구절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