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견실에서 손님통해 예의범절 배워”

충청무인들, 공맹고도(孔孟古都) 가다 <4> 공자 후손들이 살던 공부(孔府)

2015-11-21     김장수

공부(孔府)는 공자(孔子)의 후손들이 살던 곳이다. 공묘를 둘러보고 출입구 중간지점에 나가는 문이 있는데 그곳이 공부로 가는 길이다. 공부 역시 송(宋)나라 이후에 세워진 곳인데 공자의 직계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공부는 송나라 때는 정3품, 원(元)나라 때는 정2품, 명(明)나라 때는 정1품을 하사하여 곡부(曲阜)의 관청으로 공무집행 장소로 활용했던 곳이다.

공부에 들어가면 성부(聖府) 대문이 나오며 그 대문으로 들어가면 공부 성인지문(聖人之門)과 중광(重光)문이 나온다. 이 중광문은 항상 잠겨 있다고 한다. 이문을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은 황제(皇帝)가 공자의 자손을 접견 할 때만 그 문을 열고 통과하여 접견 할 수 있다고 한다. 한쪽 옆으로 돌아 들어가자 공부대당(孔府大當)이 나온다.

공부대당(孔府大當) 안은 관청 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90년대 포청천이라는 드라마가 있었는데 인기가 대단했다. 포청천의 드라마는 중국역사 무협소설에서 시작이 되었다라고 볼 수 있는데 공부의 관청이 포청천에 나오는 관청과 비슷한 곳이라고 볼 수 있다. 관청 뒤편에 비문이 있는데 수(壽)자와 복(福)자가 있다. 특히 수(壽)자의 비문(碑文)은 청(淸)나라 광서황제(光緖皇帝) 때의 일이다. 광서제의 어머니는 자희태후(慈禧太后)의 언니다. 자희태후(慈禧太后)는 우리가 알고 있는 서태후(西太后)이다. 서태후(西太后)가 공자(孔子)를 존경하는 마음에서 직접 쓴 수(壽)자를 보냈는데 그 수자의 필체가 현재 중국에서 가장 잘 썼던 명필(名筆)이라고 한다. 그 옆에 또 다른 수(壽)자와 복수(福壽)자가 있는데 복(福)자 역시 최고의 필체(筆體)로써 그 복(福)자는 지금도 기념품이나 공예품등을 이 필체를 복사하여 사용한다고 한다. 서예(書藝)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찾아가 보는 것 또한 보람이 아닐까 싶다.
공부에서 잠시 막간 휴식 시간에 중국무술을 하다 보면 의문점이 생기는 외가권(外家拳)과 내가권(內家拳)이 무엇인가? 라는 문제를 토론해보았다. 많은 명사들이 토를 달았지만 외가권과 내가권의 정확한 정의는 아직도 정리중이다. 일반적으로 소림권(少林拳)은 외가권에 대표적이고 태극권(內家拳)은 내가권에 역시 대표적이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가 바로 진식태극권이다, 진식태극권은 내가권이라 하지 않는다. 이것이 문제의 발생 요지이다. 소림권은 지금부터 1500여 년 전에 유래됐고 내가권은 역시 시대를 같이한다. 우리가 보통 내가권(內家拳)하면 태극권(太極拳), 팔괘권(八卦拳), 형의권(形意拳)을 내가삼권(內家三拳)이라고 한다. 여기서의 내가권(內家拳)은 무당권(武當拳)이라 칭하기도 하는데 중국무술을 수련하고 연구하는 분이라면 어느 정도 정리가 필요하다. 따라서 외가권과 내가권을 정리해 보면 중국무술의 역사적 배경으로 녹아난 소림권은 물론이고 태극권 팔괘장 형의권 등을 알아야 최소한에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요즈음 아시안게임이나 전국체전의 우슈(武術)경기도 마찬가지다. 장권(長拳), 남권(南拳) 태극권(太極拳)이 바로 그것이다. 중국무술이 근 현대에서는 남쪽은 남권이고 북쪽은 북권 또는 장권으로 표현한다. 중국무술을 남쪽과 북쪽으로 구분하여 남권북퇴(南拳北腿)라고 분류하여 우슈라고 하였다. 한번쯤은 생각을 하면서 수련에 임하는 것도 자기발전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무술에 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공부대당을 통과하면 육청이 나온다. 이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은 공자의 후손들이 지금도 살고 있는 곳이며 왼쪽에는 당시에 손님이나 친척 또는 관리 등의 접견실이 있는데 예의와 예절을 배우는 곳이라 한다. 주변 객당(客堂) 앞 출입구 한편에 빨래판 같은 모양을 만들어 놓은 석판(石板)이 있었다. 일종에 벌척(伐尺) 같은 것인데 아이들이 못된 짓이나 학생들이 잘못을 하였을 때 무릎을 꿇리고 벌을 주는 곳이라고 하는데 벌을 주는 것 역시 하나의 당시에 기준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변에는 크고 작은 객당이 많이 있는데 저마다 특색 있는 현판이 붙어있다.

현판이 없는 곳은 기념품매장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공부 뒤뜰에는 휴식공간과 텃밭이 있다. 휴식공간은 야외공연을 할 수 있는 공간과 차를 마실 수 있게 탁자가 있으며 텃밭(花園)은 일반적으로 각종 식물들이 심어져 있고 한쪽에는 수경 재배하는 곳이 있었는데 공부(孔府)라는 곳이 단순하게 관청에서 공무수행과 예절과 가르치는 곳뿐만 아니라 풍유는 물론이고 식물이나 과일 등 농산물을 효과적인 재배법을 연구하는 그런 장소이다.

내가 보는 공부는 공묘(孔廟)에 비해 크기나 규모가 소박하다. 허세보다는 실속 있는 장소로 실제 공자사상을 연구하는 분이라면 먼저 이곳을 추천하고 싶다. 공부를 둘러보는 중에 안내를 하던 가이드 말이 우리 선조인 조선(朝鮮)의 태종(太宗) 이방원(李芳遠)이 이곳을 들렸다고 한다. 나는 문득 그가 왜 들렸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조선의 사상기반인 성리학(性理學)을 좀 더 확인하려는 의미에서 들리지 않았을까 라는 말을 일행과 나누면서 우리는 공부를 나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