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술은 '곡차'라고 할까요
왜 술은 '곡차'라고 할까요
  • 임영수
  • 승인 2014.01.29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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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에게 듣는 '설날'과 '차례'

   설빔은 정초에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유래된 말이다.
유년시절 가장 기다렸던 날들 중에서 생일, 소풍, 설날, 추석 등이 있을 것이다. 그러한 날들에는 어김없이 생각나는 기억들이 있다. 생일에는 어머니께서 생일 떡을 만드셨고 그 날은 주변 사람들이 참으로 잘 해주었던 기억, 소풍 전 날에 창문 바깥을 바라보며 비가 오지 말기를 간절히 빌었던 기억들 말이다. 또한 추석은 풍성한 과일과 음식들이 많아서 배가 남산만하게 될 정도로 먹었던 기억도 있다. 그런데 설날이 그 중 가장 즐거운 기억이 많았던 것은 왜일까?

설날은 명절의 으뜸이요, 한해의 시작을 알리는 날이다. 요즘에는 한해를 시작한다며 양력 1월 1일을 새해라 여기고 해맞이를 가시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선조들은 날짜를 음력으로 세었기 때문에 음력 1월 1일이 한해를 시작하는 날로 여겼다.

설날이라는 말은 「설익다」에서 나온 말이다. 1년이 365일이며 1월 1일은 365일중 첫 번째 날이니 앞으로 364일을 보내야 하기에 어른들은 이것을 「설익다」 즉, 아직 익지 않았다고 표현하여 「설익은 날」을 줄여서 「설날」이라 부르게 된 것이다.

한 해를 시작하려면 남다른 각오가 있어야 한다. 첫날 설계를 잘해야 한 해를 보람있게 보내게 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해야 하기에 새 옷을 입는다. 이를 「설빔」이라고 하는데, 「설빔」을 입고 가장 먼저 하는 것이 조상에게 차례(茶禮)를 지내는 일이다. 우리 민족은 조상에게 맛있는 음식을 차려놓고 감사를 표하며 의지 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설날, 추석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 부른다. 글자를 풀이하면 차(茶)를 가지고 정성을 다하여 제사를 지낸다는 뜻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제사를 지낼 때 차(茶)를 가지고 제사를 지내는 집은 거의 없다. 모두들 술을 따라 제사를 지내니 이것을 한자로 하면 주례(酒禮)라 불러야 한다. 왜 차례(茶禮)가 주례(酒禮)가 되었을까? 이는 우리의 역사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차(茶)는 맛있고 귀한 것이다. 그래서 조상에게 귀한 음식을 올리는 것이 차례이다. 옛날에는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었다. 조상의 제삿날 제사를 지내지 못하면 관아에 끌려갔다. 즉, 차를 구하지 못하여 제사를 못 지내면 관아에 끌려가 볼기를 맞았으니 가난한 집에서는 귀한 차를 장만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가난한 집 제사 돌아온 듯 한다”라는 말이 생겼다.

우리나라 차는 따듯한 남도에서 생산된다. 1년에 생산되는 양이 많지 않아 양반들이 독차지하면 가난한 집은 차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군다나 임진왜란이 끝나고 명나라는 조선에게 도와주었으니 조공을 받치라 하였는데 조공물 중의 하나가 차(茶)이다. 조선의 차는 중국에서 생산하는 차보다 더 상급이었다.

그러니 귀한 차가 명나라로 모두 받쳐지고 조선에서는 차를 구할 일이 더욱 힘들어지자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져 갔고 결국 나라에서는 차(茶)가 귀하니 차(茶) 대용으로 곡식을 발효해서 술을 만들어 그것을 차 대용으로 사용하도록 허락을 하였으니 이를 「곡차」라 불렸다.

지금은 「곡차」라는 말이 스님이 몰래 술을 마시면서 “곡차를 마신다”라고 표현하는 차 대용으로 만든 술을 지칭한다. 곡차가 차의 자리를 차지하였지만 이름은 그대로 차례(茶禮)라 하고 술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이제는 굳어진 풍습이 되어 버렸다.

   임영수 연기향토박물관장

예전에는 차(茶)로 차례(茶禮)를 지낼 때 조상들이 맑은 차를 마시고 후손들을 돌보아 주었다. 즉, 후손들이 어려운 일에 처하면 꿈속에 나타나 조심하라고 알려 주었는데 술로써 제사를 지낸 후에는 조상들이 내려올 때마다 술을 주니 술에 취하여 누가 후손인지 알아보지 못하여 지금은 조상이 돌봤다는 말들이 사라진 것이다. 올해는 주례(酒禮)를 지내지 말고 차(茶)를 우려 차례(茶禮)를 지내보도록 하자. 조상이 후손이 누군지 알아야 돌봐줄 것이 아니겠는가?

어렸을 때 기다렸던 설날을 나이 들어 맞이하니 걱정이 앞서서 그런지 설레임이 사라졌다. 모두들 옛날로 돌아가고 싶은데 세월은 어찌할 수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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