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 강수인
  • 승인 2012.05.08 09:0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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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인의 생활 속 이야기]완벽하지 못한 부모의 조력자는 선생님

   스승의 날, 한 아이를 잘 기르기 위해서는 하나의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부모의 부족한 면을 채워주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귀국하면서 중학생인 첫 아이를 국내 학교로 전학시키기 위해 학교 교무실을 찾았던 일이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 고등학교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뵈었는데 세월이 흘러 교감선생님으로 계셨다.

반 등수만으로도 20등이나 떨어진 나를 정신이 번쩍 들게 혼내셨던 그분, 그 후 대학교 때도 선생님이 어디 계신지 툭하면 전화라도 드리고 안부를 여쭙곤 했는데 결혼이후에는 그것도 뜸해서 어디 계신지 모르고 지내던 터였다.

학교 다니면서 그렇게 열정적으로 나를 생각해준 선생님이 없었고 세월이 흐르면 흐를수록 고마운 생각이 드는 그런 선생님이셨다. 너무 반갑기도 하고 어렵기도 해서 “선생님, 저 기억하세요? 저는 아직도 떨려요. 선생님이 너무 고마워서 사는 동안 잊을 수 없었어요.”라고 말씀드렸던 것 같다.

남편 직장을 따라 이사를 얼마나 자주 했는지 큰 아이에겐 한 학년을 제대로 마친 학교가 없을 정도였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존재가 얼마나 큰지를 잘 알기에 딸아이를 전학시킬 때만 되면 마음이 한없이 무거웠다. 그래도 이번에는 식지 않은 선생님의 사랑과 열정의 눈빛을 느껴서인지 마음이 놓였다.

2007년 이니까 벌써 5년 전의 일이다. 미국에 아이들과 처음 발을 디뎠을 때의 심정은 한국에서의 전학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난감했다. 미국에서 가장 염려했던 것은 아무 것도 없는 세간 사리가 아니고 아이들의 학교 적응문제였다. 매일 가져오는 영어로 된 가정통신문과 과제도 부담스러웠지만 말하지도 듣지도 못하는 아이들이 긴 학교생활을 어떻게 견딜까 하는 생각에 애간장이 녹았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아이들은 첫날 학교를 갔다 오더니 학교가 너무 좋다며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언어가 되지 않는 아이들 입장을 충분히 이해하고 배려해 주었고, 반 아이들도 너나없이 아이들의 적응을 위해 서로 돕겠다고 자원을 한 것이다. 이렇듯 선생님들의 열정적인 관심과 아이들의 배려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었다.

일주일의 마지막 날인 금요일이면 어김없이 한주동안의 상황을 설명하는 선생님의 친필 메모가 있었는데 내용은 부족한 점 보다는 격려와 칭찬이 많았다. 물론 부모인 우리도 아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또는 참고해 줬으면 하는 내용의 메모를 선생님께 답장 형식으로 보내야 했다.

또, ‘패런츠 컨퍼런스 데이’(parent conference day)에는 아이와 부모가 같이 그동안 아이가 해 온 각종 과제물과 테스트 결과를 보며 아이의 현재 상황에 대해 허물없이 상의하기도 했다. 이밖에도 합창발표일, 오케스트라 발표일, 브라운 백 데이(brown bag day) 등 부모가 참여하는 프로그램은 어찌나 많은지 메모를 하면서 챙겨야 할 정도였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통해, 체육과 미술을 통해 선생님의 지휘에 따라 학생 모두가 한 덩어리가 되는 모습은 다소 어설프더라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겨우 두서너 달 배운 악기에서 어떻게 저런 화음이 나올 수 있을까 온 가족은 일어나 환호했고 기뻐했다. 그런 것들이 모여 문화적 충격으로 힘들어 했을 우리 아이들에겐 더없이 좋은 마음의 안식처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들었던 곳을 떠나 귀국한지 두해 만에 선생님과 친구를 다시 찾을 기회가 있었다. 지구 반 바퀴를 돌아 2년 만에 찾은 우리를 멀리까지 달려와서 안아 주던 선생님, 목도리와 모자를 선물로 준비하고 기다렸던 큰아이 친구들, 오자마자 자기 집에서 같이 하루를 지내자고(슬립오버, sleep over) 조르던 둘째아이 친구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다.

   미국에 선생님은 칭찬으로 학생을 가르친다. 가정 통신문 성격의 용지에는 부족함보다 잘하는 면을 부각시켰다.

한 아이를 키우기 위해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많은 생각과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하는 아이를 위해 완벽하지 못한 부모는 다른 조력자를 찾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한다. 그 한 가운데에 계신 분이 바로 선생님인 것 같다.

몸에 좋은 약은 입에 쓴 법이다. 이제 사랑하는 선생님께 말씀드리고 싶다. "선생님, 30년이 지난 저를 기억 못하셔도 좋아요. 살아갈수록 그냥 선생님이 정말 고맙고 좋은 걸요. 우리 아이들에게도 그런 선생님이 계셨으면 좋겠어요."<필자 강수인은 올해 44세로 자녀 둘을 둔 가정 주부이다. 최근 남편을 따라 미국에서 살면서 그곳 학교에서 합리적으로 처리하는 자녀 교육 방식을 전해주고 싶어 글을 쓰게 되었다. 매월 서너번에 걸쳐 잔잔한 가족 얘기를 주제로 한 글을 '세종의 소리'를 통해 연재할 예정이다./편집자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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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뚝이 2012-05-09 15:17:14
왠지 눈물이 핑 도네요. 고마운 맘을 이렇게도 잘 표현하시는 강수인씨가 고맙습니다.

강희숙 2012-05-08 16:57:37
마음에와닿는군요
저희도아이들이 남편 따라다니느라고
초등학교를 3번을 전학시켜서 졸업시켰거든요
강수인씨가전학시킬때마다마음이무거웠다는글을보면서
옛날생각에몇자 적어봈습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