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기 넘치는 봄이 세종시에도 어김없이 찾아왔다. 복숭아의 고장, 연기(燕技)에도 그들만의 봄은 내려앉았다. 하얀 벚꽃 족두리 쓴 계절은 겨우내 황량했던 길목을 화사하게 만든다. 복사꽃 피면 그 내음새가 발갛게 일렁이는 시골, 바로 그 고장에 대한민국의 대 역사가 ‘세종시’라는 이름으로 쓰여 진다.
세종으로 향하는 길목.
봉곳이 솟아오른 양지 쪽 흙 속에는 이미 수많은 생명들이 삐딱한 고개를 내밀고 세상 구경을 하고 있다. 그 아래 신작로(新作路)에는 시속 100Km 세상 속도로 차량들이 세종시로 향하고 있다. 저렇게 느릿한 자연은 영원한데 빛의 속도로 달리려는 세상은 왜 이렇게 유한(有限)할까. 덧대어진 태양열 발전기 아래 달리는 자전거가 그렇게 바삐 가는 목적지는 또 어디일까.
이몽룡은 봄볕 아래 ‘춘당춘색 고금동’(春堂春色 古今同)을 시제(試題)로 받았다던가. 그래서 긴 복선은 춘향과의 재회를 시사해주었다. 그런 봄이 있는가하면 슬픈 봄도 있다. 두보(杜甫)는 변방을 떠돌다가 ‘올 봄도 또 지나가는데 ’(今春看又過) ‘어느 해가 내 돌아갈 해요’(何日是歸年)라고 한탄했다. 그야말로 후자는 ‘찬란한 슬픔의 봄’이다.
봄의 전령은 어느 해부터 ‘벚꽃’이 됐다.
피면서 지기 시작한다는 그 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우리 정치에 ‘사꾸라’를 심어주었다. ‘사꾸라’는 아직도 많이 있건만 봄 벚꽃은 왜 이리 빨리 시들어 가는가. 어제 터뜨린 꽃망울이 내일이면 지고 마는 게 그 꽃이다. 김유정은 ‘따라지’에서 ‘인제는 봄도 늦었나보다. 저 건너 돌담 안에는 벚꽃이 벌겋게 벌어졌다’라고 양자의 상관관계를 표현했다. 행복청 내 벚꽃도 이미 그믐이었다.
지난 한 달은...
승자와 패자는 승부만큼이나 인생 4년은 달라진다. 전쟁에 2등은 없다. 정치는 전쟁이다. 오직 1등, 승자만 있을 뿐이다. 그 1등이 전부를 차지한다. 시쳇말로 ‘All or Nothing’이다. 승자는 지금 봄이다. 막 움이 트려고 하는 버들강아지다. 그 승자의 봄이 세종시 출범 준비단 건물 외벽에도 걸렸다. 그 봄 또한 화려하다 못해 눈부셨다. 이해찬, 유한식, 신정균...
‘꽃은 피려하고
버들도 푸르려 한다.
빚은 술은 다 익었네.
벗님네 가세 그려,
육각(六角)에 두렷이 앉아
봄맞이 하리라.’<김수장>
‘삼현육각’(三絃六角)이 아니더라도 봄맞이는 다 되어 있다. 내일이면 세종시는 축제의 장이 된다. 말이 조금은 어렵다. 그냥 ‘복숭아 축제’라면 좋으련만 ‘도원문화제’다. 거기에 고려 충신 임난수 장군을 그리는 ‘독락문화제’가 덧붙여진다. 뿐 만 아니다. 효능이 어마어마했던 ‘전의 초수’에 얽힌 전설을 그린 ‘왕의 물’축제도 대기 중이다.
오늘은 바로 그 축제의 봄날이다. 다른 곳과 비슷하다면 그걸 뉘 골라내 듯 버리고 유별난 것만 즐기면 된다. 그게 투덜이보다는 한결 경제적일 것이다. 복사꽃 아가씨 선발대회도 있고 첫마을에 희망등 달기도 있다.
그런가하면 망국의 한을 달래는 ‘백제대제’는 지난 15일 이미 치러졌고 연기처럼 사라져가는 ‘연기’의 아쉬움을 달래는 ‘연맥서화전시회’는 19일 오후2시에 막을 올렸다. 또, 시대의 흐름을 거슬리지 못한 다문화가정 ‘으뜸 솜씨 경연대회’도 준비되어 있다.세종시 축제와 건설, 모두 봄이다.
봄갈이를 하지 않는 농부에게 가을걷이는 없다. 참으로 당연한 얘기다. ‘춘파’(春播)를 하는 심정으로 세종시를 역사 속에 고이 고이 심어야 한다. 여기에 정치적인 입장이나 특정 집단의 이해득실 개입은 안 된다. 유리병 다루듯이 소중한 대역사(大役事)를 흑룡의 해, 봄날에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