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삼문 모시는 문절사 제향 열려
성삼문 모시는 문절사 제향 열려
  • 우종윤 기자
  • 승인 2013.10.10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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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사이군의 충절정신 되새기며 장렬한 죽음 기려

   매죽헌 성삼문 선생을 기리는 문절사 제향이 10일 오전 11시 금남면 달전리에서 열렸다.
조선 전기 문신이자 사육신의 한사람인 매죽헌 성삼문 선생을 기리는 문절사 제향이 10일 오전 11시 세종시 금남면 달전리에서 유환준 세종시 의장을 비롯한 유림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충청남도 홍성 출신으로 세종 20년(1438)에 과거에 급제, 집현전 학사로 뽑혀 세종의 지극한 총애를 받았던 성삼문의 정신을 기리는 제향에는 연기향교 등 유림대표들이 단종복위운동을 벌이다가 죽음을 맞는 매죽헌 선생의 충렬정신을 되새겼다.

문절사는 1967년 정미(丁未) 3월에 박정희대통령이 사명(祠名)을 ‘문절사’(文節祠)라고 써서 옛 사당 건물을 개축한 후 걸도록 해 오늘에 이르렀다. 이날 제향에는 유환준 시의장이 초헌관, 윤호익 세종시 복지국장이 아헌관, 전우홍 세종시 교육감 권한대행이 종헌관을 맡아 예를 올렸다.

문절사는 달전리 부락의 북쪽에 있으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매죽헌 선생은 명나라에 가서 음운과 교장(敎場)의 제도를 연구, 1446년 10월 9일에 역사적인 훈민정음을 반포하는데 크게 공헌하였다. 또, 단종복위 운동을 계획하였으나 실패하고 세조에게 모진 고문을 받다 능지처사를 당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절신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에게 숭상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육신의 한 사람일뿐 아니라 타고난 자질이 준수하고 문명이 높았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고종황제가 매죽헌이 맞아들인 후손이 있다는 말을 듣고 광무 7년인 1903년 4월 7일에 어명으로 달전리로 옮기도록 했다. 영정과 유품, 친필, 그리고 하사받은 땅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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