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의 소리 '중고제', 소중하게 가꿔야 합니다"
"충청의 소리 '중고제', 소중하게 가꿔야 합니다"
  • 김중규 기자
  • 승인 2024.09.03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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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인] 소리꾼 박성환 명창, "충청의 정체성 찾고 보급해야…"
서편제가 호남 소리 대변… 고졸,담백한 충청의 소리 계승 필요
중고제 연구와 보급에 평생을 바친 박성환 명창

“충청도에도 고유한 소리가 있다는 걸 중고제를 통해 알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여러 가지 어려운 점은 많지만 중고제 판소리가 충청도의 문화적 자존심이자 뿌리이며 활성화는 정체성을 찾는 길이라는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대학에서 불어불문학을 전공했던 청년이 판소리에 매료돼 소리꾼 인생을 살아온 박성환 명창(56)을 충남 공주 한 음식점에서 지난 달 29일 만났다.

대중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동·서편제를 놓아두고 그는 사라져가는 중고제를 선택, 난이도 높은 인생을 살아오면서도 여전히 충청의 소리 ‘중고제’ 보급을 신념으로 실천해 나가고 있었다.

그의 중고제 인생은 한국외국어대학교 프랑스어과를 졸업하고 소리에 반해 다시 중앙대학교 한국음악과에서 판소리를 전공한 후 1999년 국립창극단에 입단하면서 시작됐다.

“창극단에 입단하니 단원분들이 호남분들이 많았고 다들 서편제 소리를 하고 있었어요. 충남 논산에서 태어나 공주에서 자란 저에게는 충청도 소리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어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중고제가 있다는 걸 알았죠.”

그 길로 서울 북아현동에 살고 있던 정광수 선생을 찾아갔다. 2000년 당시 선생의 나이는 90세였다. 2003년 작고한 정광수 선생은 1930년대 중고제 대가 이동백 선생으로부터 적벽가를 배웠지만 동·서편제가 대세였던 터라 아예 중고제는 부르지를 않았다.

“철 지난 소리로는 못 풀어 먹는다. 쓸모없는 소리라고 말씀하시면서 동편제 수궁가를 배울 것을 권유했어요, ‘아닙니다. 충청도 출신으로 선생님 생전에 중고제를 배우고 맥을 잇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좋다’하고 허락해서 중고제를 3년동안 사사받았어요.”

박성환 명창의 공연 모습

서편제 소리 권유는 수발제자로 들어온 젊은 청년의 앞길을 걱정한 스승의 배려였으리라. 동·서편제가 대세인데 중고제를 배워서는 밥 빌어먹기 어렵다는 걱정이 앞섰던 모양이다.

고졸(古拙)하고 담백(淡白)하다고 표현하지만 사실 소리꾼들 얘기를 들어보면 중고제는 임팩트가 약하다. 감정이 찐하게 들어 있지도 않고 기복이 적어 밋밋하다고나 할까. 게다가 문화재로 지정도 되지 않았다. 폭발하는 임팩트도 없고 심금을 울리는 감정이입도 크지 않은 데다가 문화재로 지정도 안 됐으니 스승의 제자 걱정은 십분이해가 됐다.

고졸하고 담백한 소리, 중고제는 전라도 육자백이가 한을 더하면서 슬픔과 감정을 이입하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고 서편제로 자리잡은 것에 비하면 유행과는 먼 장르였다.

스승 정광수 선생

하지만 박성환의 생각은 ‘왜 충청도에는 소리가 없는가’로 시작된 호기심이 반발심으로 이어지면서 활성화와 함께 충청도 문화적 자산으로 키워야겠다는 사명감으로 발전하게 된다.

충청감영이 있었던 공주에서 자란 박 명창은 공주에 이동백, 김창룡, 황호통, 김석창 등 중고제 명창들이 살았다는 사실을 알고서는 중고제 인생을 운명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전승을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음악적으로는 동·서편제와 차이가 너무 많아서 낯설고 어려웠어요. 소리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소화시키기가 힘들었다는 얘기입니다. 현실적으로는 안정적으로 전승시킬 공간이 없고 지역문화유산을 키우고 가꿀 정책적 지원이 없다는 것도 안타까운 일입니다.” 

공주에서 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 이사장을 맡아 보급과 전승에 애는 쓰고 있지만 개인으로서는 한계가 분명했다. 그렇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보람은 있었다.

“시민들이 좋아하면서 무료강좌에 매번 20~30명씩 찾아준다는 점이 보기가 좋지요. 또, 충청도 소리가 있었다는 점도 차츰 알게 되면서 중고제에 더 애착을 갖고 열심히 배우는 것도 그래요.”

몇몇 수강생들 중에는 대학에 입학해서 전공을 하는 사람들도 생겼으니 계란으로 바위만 친 것 아닐 듯싶다.

세종시에도 중고제 대가가 있었다. 바로 옛 연기군 출신 백점택이다. 춘향가 중 어사가 된 몽룡이 박석고개에서 남원 풍경을 내려다보고 춘향의 집으로 찾아가는 ‘박석티’를 잘 불렀다는 기록이 있다.

강경 소리꾼 김성옥의 아들인 김정근으로부터 중고제를 배웠으며 1850년대 출생인 명창 황호통, 박상도 등과 함께 금강권지역에 중고제를 널리 보급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박성환 명창은 “판소리는 전라도 전유물이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하면서 “중고제를 배우고 즐기는 일은 충청의 문화적 자존심을 세우고 정체성을 찾는 것”이라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중고제를 배우고 있는 공주 시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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