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참 이상해요"
"선생님은 참 이상해요"
  • 성아영
  • 승인 2013.09.27 13: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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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성아영 부강초 교사...아이들과의 이별은?

            부강초 성아영 교사
2월 합격자 발표 날,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던 것도 잠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집 구하랴, 살림살이 준비하랴, 그렇게 덜컥 3월.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2학년 담임이 되어 24명의 아이들, 수십 개의 반짝거리는 눈망울 앞에 서 있었다.

아침에 자명종이 울리면 피로에 절어 비비적거리다가도 아이들 얼굴이 떠올라 눈이 번쩍 뜨이곤 했다. ‘오늘은 또 어떤 재밌는 일이 있으려나?’하는 생각에 콧노래를 부르며 출근하는 그 기분은 아마 선생님이 되지 않았다면 절대 모를 거다.

어느 날이었다. 출근해서 실내화를 갈아 신고 있는데 멀리서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 "으악! 선생님 오신다~!" 못 볼 것이라도 본 목소리다. 처음엔 ‘아니, 내가 뭐라고 하기라도 했나?’ 하며 당황스러웠지만 곧 그것이 반가움의 표현임을 알게 되었다. 소리 지른 그 아이는 내가 언제 오나 목을 빼고 신발장 앞만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한 동안은 잠잠하더니 2학기가 되고부터 다시 시작이다. 이심전심인지 요즘 교실로 들어가는 내 마음도 아이들을 보고 싶은 마음에 괜스레 더 설렌다.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이런 재미도 겪어 본 교사만이 느낄 수 있으리라. 신규교사 티를 내는 것 같지만 난 요즘도 매일 아이들이 예뻐 어쩔 줄을 모르겠다.

처음 2학년 담임이 되었다는 것을 알고는 사실 좀 의아했다. 신규교사가 발령을 받으면 거의 고학년을 맡게 된다는 정보(?)가 있었기 때문이다. 2학년을 맡았다고 말할 때 마다 주위의 반응은 ‘좋은 학년 맡았다’였다. 2학년 정도 되면 아이들이 어느 정도 규칙을 지킬 줄 알거니와 칭찬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예쁜, 말 그대로 손 가는대로 빚어지는 학년이라는 이유이다.

주위의 소위 ‘쉬운 학년’이라는 반응에 더해 대학시절 마지막 교생 실습을 2학년에서 했던 것 때문에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은 완전히 착각이었다. 실습 때의 2학년 수업은 마치 모든 게 다 갖춰진 원룸에 몸만 들어가서 사는 거라면 새로 담임을 맡은 우리 반은 도배부터 해야 하는 텅 빈 집을 만난 기분이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준비를 해야 하는데,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수업은 또 어떻고? 수업을 하다보면 아주 의외의 순간에 아이들 머리 위로 물음표가 뿅뿅뿅하고 솟아오를 때가 있다.

분명 좀 전까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다 알고 있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는데 그 표정에 속은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럴 때면 좀 우울한 기분이 든다. 내가 뭔가 잘못하고 있나 싶기도 하고... 나름 쉽고 재미있는 수업을 한다고 여기저기 찾아보는데 좋은 자료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반대로 열심히 준비한 수업에 폭 빠져 즐거워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날 기분은 정말 최고다. 아이들 반응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걸 보니 나도 2학년이 된 것 같다.

얼마 전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쉬는 시간에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 컴퓨터를 만지고 있을 때였다. 우리 반 태빈이가 다가와 “선생님!”하고 불렀다. 시선을 화면에 고정한 채 “응?”하고 대답했다. 잠깐 아무 말이 없던 아이가 “그런데~ 선생님은 참 이상해요” 한다.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태빈이를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컴퓨터 화면 볼 때는 좀 찡그리고 있는데 애들이 와서 말을 걸면 웃어요!” 하는 게 아닌가?

그땐 “그야 너희들이 하도 예쁘니까 그렇지~~.”하며 심드렁하게 웃어넘겼지만 이 일이 요즘 내 최고의 활력소다. 이 일만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씨익하고 미소가 지어진다. 마치 첫사랑 상대가 내 진심을 알아 준 기분이다. 사실 학교 다닐 때만 해도 아이들이 예뻐 죽겠다는 동기들을 보며 다 거짓부렁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 그렇다. 벌써 9월, 이 아이들과 채 몇 개월도 안 돼 헤어진다 생각하면 코끝부터 찡해진다.

   "아이들이 예뻐 죽겠다"는 말이 거짓말인 줄 알았으나 정착 교단에 서면서 가을이 되자 벌써부터 우리 반 아이들과 헤어짐을 걱정하게 됐으니 그 말이 빈말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문득 작년 이맘때가 생각이 난다. 새벽에 시작해서 새벽에 끝나는 일과에 옆도 뒤도 보지 않고 달렸던 날들, 늦은 여름 태풍이 오는 줄도 모르고 도서관에서 보냈던 일, 여름인지 겨울인지도 구분이 가지 않는 도서관 생활... 힘들었지만 아이들 앞에 설 나를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곤 했다.

그런데 내가 지금 그 자리에 있다. 매일이 짜릿하고 설레고 이상야릇하면서도 후회되기도 하고, 또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게다가 교사로서의 내 글이 신문에 까지 실리게 되다니. 작년의 나를 떠올리면 꿈만 같다. 사실 요즘 힘들고 지친다는 생각을 종종 했다. 어떤 어려움도 교사가 된다면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마음이 벌써 시들 해 진걸까? 오늘은 집에 가서 작년의 일기를 꺼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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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산 2013-10-02 01:02:23
성 선생님의 교단일기를 읽고 61년에 공주사범학교(공주교육대학 전신)를 갓 졸업하고 개화초등학교의 19살 햇병아리 교사로 부임하여 2학년을 맡아서 가르치던 가슴 벅찬 시절이 회상되었습니다. 몇번이나 읽으면서 참으로 감사드리고 정년 퇴직하실 때까지 첫 사랑을 간직하여 존경받는 스승이 되시면 명품인생 아닐까요

이슬 2013-09-30 08:17:09
뿅뿅뿅----
좋은아침에 선생님의글 미소에찬 마음으로 잘 접했습니다
이쁜 선생님의 사고와 철학을 읽을수가 있군요
항상 "처음처럼" 으로의 이쁘신 생각으로 학생들을 지도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