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감영 선화당, 포정사 문루는 어디로 갔을까?
충청감영 선화당, 포정사 문루는 어디로 갔을까?
  • 송두범
  • 승인 2024.08.16 09: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송두범칼럼] 충청감영 복원, 선화당 등 전각 볼 수 있는 모습 기대
일제강점기 선화당

1603년 공주에 충청감영을 설치하면서, ‘공주감영시대’가 열리고 관찰사가 공주목사를 겸직하면서 상대적으로 감영의 역할이 커졌고, 감영도시 공주의 위상이 달라졌다. 특히, 공주는 군사요충지로 중요한데다 조세 등 물산이 모이고 약령시를 비롯해 장시가 발달하면서 명실상부한 호서의 대표 도시로 떠올랐다.

충청감영도 유교국가의 이념을 실현하려는 의지를 건물의 명칭에 담아냈다. 감사의 집무실을 선화당(宣化堂)이라 하였는데, 이때 ‘선화’란 ‘임금의 덕을 베풀어 백성을 교화한다(宣上德而化下民)’라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이 선화당이라는 명칭은 각 도의 감영 본 건물인 정청(政廳)에 모두 쓰였다.

우리 나라 감영중 충청감영(공주), 경상감영(대구), 강원감영(원주), 함경감영(함흥) 등에 선화당 건물에 남아있는 반면, 전라감영(전주)은 선화당을 복원을 했고, 경기감영(서울), 황해감영(해주), 평안감영(평양) 선화당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소실되었다. 감영내 감사와 가족이 거처하던 안채 건물은 ‘세상의 어지러움을 다스려 맑게 한다’라는 뜻을 담아 징청각(澄淸閣)이라 불렀으며 대개 선화당 뒤편에 두었다.

일제감정기 충청남도포정사

충청감영의 징청각은 소실되어 볼 수 없으나, 대구에 있는 경상감영에 가면 징청각을 볼 수 있다. 선화당 북쪽에는 ‘관풍세속, 즉 감사가 건물에 올라 세속을 살핀다’라는 의미를 가진 관풍루(觀風樓)라는 누각을 세웠다. 또한 감영의 정문에는 ‘어진 정사를 베푼다’라는 뜻이 내포된 포정사(布政司)나 포정문(布政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외에도 감영 안에는 선화당을 중심으로 관찰사 휘하 많은 관원의 집무실과 하급관리인 영리, 노비들이 거처하는 곳, 창고 등 여러 채가 배치되어 있었다.

‘충청감영읍지’에는 모두 18동의 관아 건물과 8동의 창고 건물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로부터 약 70년이 지난 1859년에 편찬된 ‘공산지’ 기록에는 관아 건물과 창고가 모두 49동 481칸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렇듯이 감영의 위용은 다른 일반 고을의 관아보다 훨씬 웅장하고 화려한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전각 가운데 오늘날까지 그 자리에 제대로 전해오는 것은 하나도 없다.

공주사대부설중고등학교 앞에 복원된 포정사

충청감영의 중심건물인 선화당과 정문인 포정사 문루는 어디로 갔을까? 선화당은 충남도청이 1932년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철거되었고, 1937년 공주사적현창회를 조직하고, 1940년 중동(현 충남역사박물관)으로 이전하여 1973년 무령왕릉 유물을 전시·보관하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을 신축하기 이전까지 유물전시실로 활용하였다.

국립중앙박물관 공주분관의 신축으로 선화당은 헐리게 되었고 한동안 창고에 쌓여있다 1990년 12월 17일 착공하여 1992년 6월 15일 현재의 위치인 웅진동에 이전 준공하였다

공주박물관전시실로 사용된 선화당(1940년대)

1920년대가 되면서 충청감영 정문인 포정사문루는 근대식 건축물 형태로 바뀌었다. 충청감영시절 만들어졌던 포정사는 일제강점기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남루(錦南樓)로 바뀌었다. 그러나 금남루가 점차 노후 되고 기둥이 있는 정문은 자동차가 드나들기 힘들다는 이유로 1928년 철거가 결정되었다.

대신 석재로 만든 근대식 건물로 대체되었고, 금남루는 일본인에게 매각되어 군청 뒤편으로 이전되어 금남사라는 사찰로 사용하였다. 광복후 감리교회로 사용하다 1977년 공주군에서 매입하여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1985년 건물을 해체하여 보관하여 1993년 현재 국립공주박물관 서편(관풍정, 국궁장 앞)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이전 복원된 선화당

이와 같이 충청감영에 자리잡았던 충남도청이 1933년 대전으로 이전하면서 선화당과 포정사문루가 자리했던 곳에 교육기관이 들어섬에 따라 선화당과 포정사는 해체, 소실, 이전 및 복원 등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다만, 포정사 문루는 2018년 당시의 위치에 복원하였다. 그러나 선화당은 원래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웅진동 국립공주박물관 서편에 자리하고 있다.

충청감영 터에는 공주사대부설중고등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다른 지역 감영들이 하나둘 복원되는 과정을 지켜보면 충청감영이 복원되지 못한 아쉬움도 커져간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충청감영을 복원하여 선화당을 비롯한 전각들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이전복원된 포정사 문루

 

송두범, 행정학박사. 공주학연구원 초빙연구위원, 전)공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장, 전)충남연구원 연구실장, 전)세종문화원부원장, 전)세종시 안전도시위원장, 이메일 : songdb@naver.com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