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험하지 않는 건 단 한줄도 들어있지 않다"
"내가 경험하지 않는 건 단 한줄도 들어있지 않다"
  • 김충일
  • 승인 2024.07.16 08: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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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일 칼럼] 괴테 소설 '선택적 친화력'...경험 토대로 써내려 간 책
결혼이라는 제도 속에서 낭만적, 또는 이성적 사랑 추구 여부 질문
양립할 수 없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망과 결혼의미 깊이 사유한 책

“지금 이 순간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돌려놓는 걸 우리가 막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그것을 받아들일지 말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어요. 당신은 떠나셔야 해요. 사랑하는 당신은 떠나실 거예요. ~우리가 우리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만저는 당신과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있어요.” ( ‘괴테’의 소설 『선택적 친화력』중에서 )

우리가 만지작거리며 읽는 대부분의 소설은 눈에 보이는 일상너머의 감추어진 것들에 대한 관심과 질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는 우리가 마주 보는 모든 사물들 그리고 우리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 또한 어떠한 것 뒤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환기시켜준다.

굳어버린 상식과 고정관념이란 굴절된 생각의 곳곳을 자극하며 삶의 안쪽에서 꿈틀거리는 “이성적 자유”와 “열정적 감성”을 구체적이며 현실적인 경험으로 풀어쓰면서 도덕성과 감각성이라는 인간의 이중적인 조건을 강조한 기다린 줄도 모르고 기다린 책, 요한 볼프강 괴테(Johann Wolfgang Goethe)의 『선택적 친화력(Die Wahlverwandtschaften:1809)』.

이 소설은 괴테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써 내려갔다는 점에서도 특별하다. 추상적 이념보다는 구체적인 삶과 경험에서 진실을 보고자 했던 그는 “내가 경험하지 않은 것은 단 한 줄도 들어 있지 않다”고 고백한 바 있다.

그는 무엇보다도 인간사의 영원한 주제인 ‘사랑과 욕망의 빛과 그림자’, 그것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인 사랑을 다룬다. 그 속엔 숨겨진 인간관계의 근원적이며 결정적인 요소인 ‘삶의 원현상(原現像)’이 들어있다.

이를 당대에 통용되던 화학 용어인 ‘선택친화성’이란 과학적 척도와 저자가 경험했던 생의 여러 순간을 어떤 의미에서는 괴테 자신이라고도 볼 수 있는 다양한 서사 기법을 통해 넓은 진폭의 의미망 속에 풀어 놓는다.

우선 인간의 욕망과 도덕적 금기에 관한 다의적인 이 작품에 접근하기 위해 '선택적 친화력(Elective Affinities)'이란 용어의 선이해가 필요하다. "석회석 한 조각을 묽은 황산 속에 넣으면, 황산이 석회를 붙잡게 되고 그 결과로 석고가 태어나는 겁니다.

반면에 약하고 가벼운 산은 달아나 버리지요. 그러니까 여기에서 하나의 분리와 하나의 새로운 결합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관계가 다른 관계보다, 그리고 어떤 것이 다른 것보다 선호되는 양 실제로 그렇게 보이기 때문이지요.” 즉 각기 다른 두 물질이 만나 상호작용하며 선택에 따라 각기 다른 물질로 변화한다는 화학적 용어다.

괴테는 당대의 과학계를 뒤흔든 이 화학적 용어를 통해 남녀의 치정과 불륜이란 단순하고 밋밋한 이야기를 소설속 ‘등장인물들 간의 사랑과 욕망의 선택 관계’, ‘결혼에 대한 조직적인 은유’그리고 ‘책임과 열정 사이의 갈등’의 구조를 아우르는 서사구조에 투사했다. 이 작품 속에서 인간은 종의 짝짓기와 유사한 화학적 친화력을 통해 애정과 관계가 미리 결정된 화학종으로 묘사된다.

이 때 괴테는 열정, 결혼, 갈등, 자유의지는 모두 화학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인간 종의 생명은 화학종의 생명과 다르지 않게 규제된다는 입장을 피력한다. 그런가하면 화학 이론이 작가가 소설 속의 사건을 예고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장치(선택의 자유)일 뿐이라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단 한 줄의 문장도 체험한 것 그대로 쓰지 않았다”는 소설 속 ‘화학적 친밀함’으로 다가가 보자. 네 명의 등장인물 속 샤를로테(A)와 에두아르트(B) 부부는 오토 대위(C)와 조카 오틸리에(D)를 집으로 초대해 머물게 하면서 갈등이 시작된다. B와 D가 서로 사랑에 빠지고, A와 C 또한 자연스레 끌리게 된다. 각자의 선택은 모두 다르다. 유부남이며 아이들도 있음에도, B는 거침없이 감정을 표출학 행동하고, C는 회피하고 절제하다가 표현하게 된다. A는 C에 대한 마음을 품어 안은 채 드러내지 않고 이 모든 상황을 정리하려다. 때때로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AB + CD → BD + AC. 결국 B는 집을 떠나 전쟁에 참가하게 되고, D는 A의 곁에 머물면서 모든 것을 단념한다. C도 떠난다. 하지만, B가 돌아오면서 상황은 극에 달한다. A와 B 사이에 태어난 아기를 돌보던 D는 실수로 아이를 호수에 빠뜨리게 되고, 그 죄책감으로 물도 음식도 마시지 않고 침묵으로 생활하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B 또한 그녀를 따라 순교한다. A는 D가 그렸던 예배당에 B를 연인 곁에 묻는다. 도덕에 따라 본능을 억제하려는 A와 C, 자연스러운 열정을 탐하는 B와 D의 인연은 마치 화학 원소들처럼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비극을 향해 치닫는 이야기이다.

우선 계몽의 시대 속에서 ‘교양의 빛’의 굴절된 양상을 A(샤를로테)·B(에두아르트)·C(오토)·D(오틸리에) 사이의 이합집산을 관찰해 가면서 읽어보자. 주인공 네 명을 친밀하게 만들어준 것은 교양이다. 교양은 문명을 습득하고 유지하기 위한 규범으로 정의되지만 A와 C, B와 D 사이에 야릇한 감정을 실어 나르는 메신저의 역할을 한다. 그들은 음악·문학·건축을 화제 삼거나 그것을 즐기면서 불륜에 빠져든다.

우리는 문학이나 음악 이야기를 나누면서 의식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결핍을 드러내게 되고, 상대방의 결핍 또한 간파하게 된다. 하여 문명의 규범인 교양이 불륜의 계기가 되며, 이 때 불륜은 상대의 약점을 이용하는 게임이거나, 상대의 아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이타적 감정의 발로가 되어 ‘교양’의 민낯을 고발하는 ‘인간적인 성숙의 척도’를 가르는 가늠자로 작용한다..

교양으로 불륜의 기초를 놓은 AC 짝과 BD 짝은 어느 날 밤, 배우자를 속여 가며 AB 부부는 조금 전에 헤어진 C와 D를 열렬히 생각하면서 짝짓기를 갖게 되는데 그날 밤의 섹스로 태어난 아이는 AB 부부를 전혀 닮지 않고 C와 D를 반씩 빼닮았다. 이 대목에서 필연을 가장한 오독이 일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욕망 때문이다.

이러한 양상이 가장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은 B와 그의 아내 A사이에서 태어난 아이인 오토(Otto)이다. 아이가 잉태된 잠자리에서 B는 A를 상상하고, A는 C를 떠올린다. 그렇게 태어난 아이는 D와 C의 모습을 닮는다. 결국 오토(Otto)는 네 명의 등장인물의 욕망이 겹치는 지점인 셈이다. 그리고 최종적인 비극은 이 아이가 물에 빠져 죽음으로써 ‘비극적 욕망’의 무거운 그림자가 가장 짙게 드러난다.

이렇듯 사랑은 욕망의 자기 파괴적 질곡인가? 만일 그 무엇도 끊어낼 수 없을 것 같은 완벽한 결합을 이룬 남녀가 바로 그 사랑 때문에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한다면, 이렇게 물을 수 있지 않을까? “개인에 관해 진술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개인의 고유성은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음을 의미한다. 각각의 고유성을 지닌 개인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우선 그 개인들을 구분해 주는 경계이다. 경계는 다름의 표현이다. 하지만 경계는 동시에 서로 다른 것들이 만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경계는 다름의 존중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것이 각각의 고유성을 유지한 채 나란히 존재하도록 하는 것이 경계이다. 경계 넘기는 다름을 제거해서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것들이 자신만의 다름을 지닌 채 중첩되는 것이다. 그런데 B와 D가 하나가 됐다는 말은 경계 넘기를 한 것이 아니라, 경계를 제거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경계를 제거하는 것은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렇기에 경계를 제거하는 것은 파괴적일 수 있다. 진술할 수 없는 개인의 고유성을 깨뜨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를 사랑하는 것은 경계를 기준으로 다름을 인정하고, 다름이 중첩되는 방식으로 그 경계 넘기를 시도하는 것이다. B는 D에게 자신을 투사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기고, D는 B의 거울이 되는 것이 사랑이라고 여긴다. 이러한 사랑에서는 ‘있는 그대로’의 상대와 자신 사이에 놓여 있는 경계가 지워진다. 다름이 없어지고 ‘단지 한 사람’이 된다.

이들의 ‘완벽한 결합’은 그래서 파괴적이다. 이 두 사람이 오직 단 한 명의 사람으로 존재하게 된 직후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오히려 존재를 잃어버리는 것은 바로 이 때문 아닐까? A와 D의 자기 파괴적 사랑은 역설적으로 사랑이 그런 모습이어서는 안 된다고 강변한다. 사랑은 ‘있는 그대로’의 ‘너’가 지닌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고, 그 다름 위에 ‘나’라는 또 하나의 다름을 중첩시키는 것이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 시대의 괴테는 묻고 싶지 않았을까. 낭만적인 사랑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파괴적이고 맹목적인 애정을 제어하려는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 사이에서 낭만적 사랑을 추구할 것인가, 이성적 사랑을 추구할 것인가를. 이처럼 양립할 수 없는 낭만적 사랑에 대한 욕망과 이를 통제하는 제도로서의 결혼의 의미를 깊이 사유한 괴테의 <선택적 친화력>. 그들의 불안정한 관계는 끊임없이 요동친다. 욕망과 관계에 대한 괴테의 냉철한 통찰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오늘날에도 오로지 독자들의 선택과 해석을 기다리고 있다.

김충일, 문학박사, 북-칼럼리스트, 호수돈여고 교장, 건양대, 한남대, 우송대 대우 교수 역임, 대전 시민대 인문학관련 특강강사, 중도일보 '춘하추동' 연재, 대전 연극제, 대전지역 베스트 작품상 심사위원 이메일 : mogwoo63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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